【뉴스퀘스트=김재준 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앞에서 계속)

11시 40분경 다시 선운사에 들러 동백나무 천연기념물 숲을 만난다.

대웅전 뒤로 병풍처럼 둘러져 있는데 500년쯤 되겠다. 선운산 동백은 4월이면 홍등을 켠 듯 아름답다.

동백 꽃말이 신중, 기다림, 고결한 사랑 등등 많기도 하지만 시들기 전 통째로 떨어지므로 나는 자존심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버리는 거룩한 꽃이라고 생각한다.

피는 시기에 따라 춘백(春栢), 추백(秋栢), 동백(冬栢)으로 불린다. 선운사 동백은 춘백으로 키 5~6미터, 3~40센티 굵기인데 우리나라 최북단 군락지다.

동백나무.
동백나무.
꽃무릇.
꽃무릇.
상사화.
상사화.

동백꽃 지면 상사화 피고 이어 꽃무릇

선운사는 동백꽃으로 유명하지만 정작 처서(處暑) 지나 찬바람이 불면 꽃무릇 붉은 꽃이 핀다.

꽃무릇은 수선화과의 여러해살이풀로 만날 수 없는 애절한 화엽불상견(花葉不相見)으로 꽃이 지면 잎이 나온다.

잎이 지고 꽃 피는 상사화와 헷갈리지만 꽃 무릇은 자줏빛인데 상사화는 연보라나 노란색이다. 꽃피는 시기도 상사화는 7월 말, 꽃무릇은 9월 중순경이다.

우아한 연꽃과 달리 화려한 색깔이 절집과 어울리지 않을 것 같지만 단청할 때나 탱화에 꽃무릇 뿌리를 찧어 바르면 독성이 있어서 좀이나 벌레가 생기지 않는다.

꽃말은 이룰 수 없는 사랑으로 꽃과 잎이 만나지 못한 것처럼 옛날, 처녀에 반한 스님이 시름시름 앓다 죽은 자리에서 피어난 꽃이라 한다.

꽃송이를 들여다보면 긴 속눈썹을 치켜 올린 듯 한껏 치장한 모습이 요염하고 화려하지만 어딘가 외롭게 보인다. 어쨌든 최대의 꽃무릇 군락지다.

선운사 가는 길목, 선운리삼거리.
선운사 가는 길목, 선운리삼거리.

12시경 주차장으로 다시 돌아왔으니 4시간 조금 넘게 걸린 셈이다.

공기 세척기에 등산화 먼지를 털고 화장실에서 땀에 젖은 옷을 갈아입었다. 부안면 소재지까지 잠시 달려, 점심으로 꽃게 정식.

어떻게 된 일인지 왔던 길로 다시 오게 됐다. 선운리 도로 이정표에 상하, 정읍·흥덕이 표시되어 있다. 그렇지, 서울 형수님 고향이 근처구나. 고창군 상하면 송곡리, 복분자 원액의 알싸한 그 맛을 여기서 다시 느낀다. 고속도로를 찾는 길에 안내판이다.

“손화중 피체지.” 붙잡힌 곳이라 하면 될 것을 굳이 피체(被逮)지라 하는가? 윤동주 시인이 비교되므로 인촌1) 김성수(金性洙) 생가만 들러 나왔다.

1880년대 그의 할아버지로부터 지은 본채에 딸린 아래채가 여럿 있어 호남 토호의 집으로 알려졌다.

호남고속도로 정읍을 달린다. “행상하는 남편이 돌아오지 않자 밤길을 걱정하며 안타까운 마음을 나타낸 노래가 정읍사, 한글 기록으로 가장 오래된 백제가요입니다.”

정읍사(井邑詞)에 대해서 사설을 늘어놓는데,

“남편이 행상 안 하니 걱정할 일 없다.”

“…….”

“달하 노피곰 도다샤 , 어긔야 머리곰 비취오시라,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11)

<주석>

10) 고창 출신(1891~1955), 아버지 유산으로 호남의 거부로 일컬음. 동아일보, 고려대, 삼양사, 경방 설립자로 부통령을 지냈다.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알려짐.

11) 출전 악학궤범(樂學軌範) : 1493년(성종) 왕명에 따라 제작된 악전(樂典). 궁중악·당악·향악에 관한 이론 및 제도, 법식 등을 그림과 함께 설명하고, 동동(動動), 정읍사(井邑詞), 처용가(處容歌), 여민락(與民樂), 봉황음(鳳凰吟), 북전(北殿), 문덕곡(文德曲), 납씨가(納氏歌), 정동방곡(靖東方曲) 등의 가사가 한글로 실려 있다.

글 김재준(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탐방길

● 전체 8.1킬로미터, 4시간 25분 정도

주차장 → (5분)송악 → (15분)선운사 입구 → (20분)도솔휴게소 → (15분)참당암 삼거리 → (10분)장사송 → (5분)도솔암 → (10분)마애불 → (10분)내원궁 → (10분)마애불 갈림길 → (15분)천마봉→ (5분)낙조대 → (25분)소리재 갈림길 → (20분)견치산·국사봉 → (20분)선운산 정상 수리봉 → (30분)마이재 갈림길 → (20분)선운사 → (20분)주차장

* 4명이 걸은 평균 시간(기상·인원수·현지여건 등에 따라 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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