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의례는 공동체가 제공하는 비즈니스

장례 행렬 중 노제를 드리는 장면.
장례 행렬 중 노제를 드리는 장면.

【뉴스퀘스트=석태문 대구경북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베트남의 한 문화인류학자는 죽음을 좀 더 대담하게 해석했다.

죽음은 이승을 떠나는 사람에게 남은 가족과 공동체가 제공하는 마지막 비즈니스라고 했다. 학자는 왜, 죽음을 세상 사람들이 고인에게 행하는 비즈니스라고 해석했을까?

죽음이 비즈니스라면 산자와 죽은 자는 실제로 무엇을 서로 교환한다는 것인가?

베트남의 오랜 장례 문화는 가족의 경제력을 훨씬 뛰어넘는 과잉의 예도 용납하게 했다. 과잉의 형식이 의례가 되고 문화로 굳어진 이유는 무엇일까?

윤회의 의미를 다시 살펴보면 이해할 수 있다.

불교의 윤회와 기독교의 부활은 같은 영어 단어(rebirth)를 사용한다. 하지만 의미는 전혀 다르다. 불교의 윤회는 이 세상을 떠나 저 세상에 다시 태어나되(환생), 아직 어떤 모습이 될지는 알 수 없다.

사람이 축생(가축)이나 벌레가 되기도 하고, 사람으로 태어나도 더 높은, 혹은 낮은 신분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

생각해 보라. 고생 끝에 윤회 과정을 거쳐 새 생명(환생)을 얻었는데 지금보다 낮은 지위를 얻는 것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본인은 이승의 삶에서 부단히 닦은 수양으로, 남은 가족은 고품격의 장례 행위를 통해 환생자의 신분을 높여야 했다. 문화인류학자는 더 좋은 환생 신분을 얻기 위한 고인과 남은 가족의 노력을 합쳐서 비즈니스로 해석한 것이다.

지역이 처해있는 환경과 사람들의 생각에 따라 장례 방식은 조금씩 변형되었다. 시신의 발을 노출시킨 채 매장하는 장례도 있다.

묘지에 관을 두지만 영혼이 드나들 수 있도록 묘지 좌측을 열어놓는 방식의 장례도 있다. 하지만 공통된 장례 원칙이 있다. 베트남 사회의 모든 장례는 가족·친지, 공동체가 함께 고인을 애도하고, 남은 가족을 격려하는 의례란 사실이다.

악기행렬 뒤에 가족들이 따른다.
악기행렬 뒤에 가족들이 따른다.

장례 행렬과 고인에 대한 추모

장례 행렬은 베트남 장례의 특징을 엿볼 수 있는 기회이다. 장남이 선두에 서는 장례 행렬은 일반적으로 크게 네 단계로 구분된다.

첫째, 고인을 애도하는 만장과 같은 각종 깃발, 배너, 음식, 향을 든 행렬이다. 전통악기인 북이나 공(gong)을 들고 행진하며 연주도 한다.

둘째, 흰옷과 흰색 두건을 한 가족과 친지들의 행렬이다. 종이로 만든 돈(재물)을 길에 뿌리거나, 10m나 되는 긴 두루마리 천을 들고 간다. 고인이 낯선 세상인 사후세계에 평화롭게 가기를 염원하는 의식이다.

셋째, 친지 중에서 불을 켜지 않은 횃불을 들고 따르는 행렬이 있다. 사후세계를 여행하는 고인이 길을 잃지 않고 평안히 가도록 배려하는 조명으로 등불 역할을 한다.

넷째, 행렬의 마지막은 고인과 생전에 함께 살았던 공동체 구성원들이 고인을 따르며 애도한다. 행렬 도중에 네거리가 나오면 잠시 운구를 멈추고 길 위에서 제사를 지낸다. 고인이 나중에 후손들이 사는 집을 찾아올 때 헷갈리지 않고 잘 찾아오도록 배려하는 것이다.

하관한 뒤 상주와 친지들이 꽃을 뿌린다.
하관한 뒤 상주와 친지들이 꽃을 뿌린다.

산소에서 장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가족들은 참석해준 마을 주민들에게 감사의 잔치를 벌인다. 공동체가 함께 참여해준 덕분에 장례가 잘 끝났고, 고인도 지금보다 더 좋은 곳에서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게 되었음을 감사하는 것이다.

고인을 산소에 모신 후에도 장례가 끝난 것은 아니다. 보통 3일 간의 장례를 마치면, 다시 3일후에 가족과 가까운 친지는 꽃과 향을 들고 산소를 찾아 고인을 애도한다. 우리의 삼오제 의례이다. 1주일마다 7주간 지내는 49제는 고인을 모신 제단에 매일 향을 피우는 의식이다. 사후 100일이 되면 제단에 음식을 놓는다. 고인은 비록 떠났지만 남은 가족은 여전히 고인이 자신의 삶에 깊은 영향을 끼친다고 믿는다.

장례는 공동체 사회의 질서를 재창조하는 과정이다. 장례 의례를 누가 집전하고, 어떻게 주관하는가에 따라 공동체의 권력자가 누구인지를 알 수 있다. 고인의 권위를 승계하는 새 가족 대표도 자연스럽게 정해진다.

저비용 공동체 의례로 바뀌어 나가길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고 했다.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지나친 것은 좋지 않다.

지난 2003년, 베트남 총리는 장례 절차에 지나치게 많은 돈이 들어간다고 비판했다. 어디에 얼마의 돈이 들어가는 것일까?

최근 자료를 찾지 못하여 2002~05년의 자료를 보았다. 베트남은 이 기간 중 12만개의 신규 묘지를 조성할 계획이었다.

산지와 낮은 구릉지가 대상이 될 신규 묘지 조성 계획은 부족한 땅의 묘지화 문제, 비싼 묘지 조성비로 인한 사회 문제가 포함되어 있다.

베트남에서 묘지 한 곳(30㎡)을 구입하려면 2002년도 기준으로 대략 1만2000달러가 든다. 베트남의 임금조건에서는 거의 5년 치 급여(월 200 달러 기준)에 해당하는 고액이다.

상황이 이러니 ‘베트남에서 죽음은 너무 비싸다’는 풍자가 나온다. 부유층은 가족 묘소를 만드는데 엄청나게 많은 돈을 투자(?)한다.

자손대대로 사용할 수 있는 가족묘지 200㎡를 장만할 경우, 구입비만 8만 달러, 묘지석 설치에도 4만8천 달러나 든다. 이외에 추가로 들어가는 비용도 있으니 단순계산 만으로도 거의 13만 달러(최근 환율로 1억5600만 원)가 든다.

가족묘소가 많은 공동묘지.
가족묘소가 많은 공동묘지.

여기에 장례 행렬에 소요되는 비용까지 포함하면 장례비는 서민들이 도저히 감당 불가능한 수준이 된다. 2018년 1인당 GDP 2500달러인 베트남 사회에서 이런 어마어마한 금액이 들어가는 장례는 빈부격차, 사회적 갈등을 낳는 과잉 의례가 분명하다.

최근 들어 도시 지역은 매장 일변도를 벗어나 화장 방식의 장례도 조금씩 증가하고 있다. 화장 후 사찰 등에 유골을 모시거나, 산이나 강에 유골을 뿌리는 장례가 행해진다. 온라인 조상숭배 서비스도 이루어지고 있다.

수저, 꽃, 화환, 술 등 각종 제물을 클릭만으로 구매하고, 제의를 지낼 수 있다. ICT 기술이 발전하면서 비용은 줄이되 언제든지 애도가 가능한 장례 방식도 등장하였다. 온라인 장례는 아직 초기에 불과하지만 정부가 적극 권장하고 있어 앞으로 확산될 전망이다.

최근에는 인공지능(AI) 아바타 장례도 주목받고 있다. 가족은 클릭 한번만으로 고인의 생전 정보를 모두 물려받은 아바타 AI와 언제든지 소통할 수 있다. 이쯤 되면 장례는 고인을 떠나보내는 형식이 아니라, 온라인에 영원히 살아있는 실존인물을 만들어내는 과정이 된다.

베트남에서 장례는, 고인이 좋은 모습으로 환생할 것을 기원하는 일종의 의식 같은 것이었다. 가족을 잃은 사람에게는 슬픔을 중화하는 장치이며 공동체 구성원의 부조 활동으로 주민 간 연대를 한층 강화하는 이벤트였다.

사회가 발전하면서 우리 사회의 공동체 가치는 갈수록 줄어 들고 있다. 베트남의 장례 문화도 빠르게 변화되겠지만, 미풍양속은 남기되 허례는 배척하면서 지역사회를 통합하고 갈등을 조정하는 공동체 의례로 계속 남아 있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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