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를 아내로 삼고 학을 아들로 삼다

김홍도作 '취후간화-중국고사도팔첩병', 조선18세기, 견본담채, 98.2x48.5cm, 국립중앙박물관.
김홍도作 '취후간화-중국고사도팔첩병', 조선18세기, 견본담채, 98.2x48.5cm, 국립중앙박물관.

【뉴스퀘스트=최혜인 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 연구원】 소박한 서옥 안에 담소를 나누는 두 고사들이 보인다.

그 주변을 감싸듯 자란 대나무 숲 옆에서는 학들이 한가롭게 노닐고 있고, 앞마당에는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며 서있는 매화나무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서옥의 큰 창에서 바라보는 매화의 자태가 어떨지 궁금하다. 그리고 매화나무 아래서 차를 준비하는 다동이 있다.

대롱으로 불을 지피는 모습을 보아하니, 찻물을 끓이고 있는 듯하다.

송풍회우(松風檜雨)같은 찻물 끓는 소리를 들으며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 담긴 이 그림은 조선 후기 김홍도(金弘道, 1745~1806?) 가 그린 <취후간화도> 이다.

이 그림은 《중국고사도8첩병풍》중 하나인데, 병풍에는 <취후간화도>를 포함하여 〈적벽야범도(赤壁夜泛圖)〉, 〈운대주면도(雲臺晝眠圖)〉, 〈동산아금도(東山雅襟圖)〉,〈현수경구도(峴峀輕裘圖)〉, 〈지단관월도(指端觀月圖)〉, 〈이교수서도(圯橋受書圖)〉, 〈동정비검도(洞庭飛劒圖)〉가 함께 구성되어 있다.

각 그림은 고사인물화(故事人物畵)이며, 전체적으로 여백이 많고, 차분한 분위기를 띄고 있다.

<취후간화도>는 북송대 문인 임포(林逋, 967~1028)에 대한 이야기를 그린 것이다. 임포는 온화한 성격에 형식이나 영리에 얽매이는 것을 싫어했다고 한다.

관직에서 물러난 후 그는 절강성(浙江省) 서호(西湖)의 고산(孤山)에 홀로 초옥을 짓고 지내기 시작하였다. 임포가 은거지로 선택한 서호는 사계절마다 독특한 아름다움을 갖고 있어 많은 문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곳이었다.

그래서였을까, 그는 20년간 세상 밖으로 나오지 않았으며, 이따금씩 찾아오는 벗들과 노닐 뿐 이었다.

그곳에서 평생 재물에 대한 욕심 없이 유유자적하며 살았기에 ‘고산처사(孤山處士)’라는 별칭이 붙었으며, 지속되는 벼슬길 요구에도 외면하고 은거했던 인물로 후대에 전형적인 은일지사(隱逸之士)로서 추앙을 받았다.

임포와 관련된 유명한 일화는“매처학자(梅妻鶴子)”이다. 매화를 아내 삼고[梅妻], 학을 아들로[鶴子], 사슴을 심부름꾼[鹿家人]으로 삼아 평생을 유유자적하며 보낸 임포를 당대 사람들이 일컫던 것이다.

그림을 보면, 매화 한 그루와 학 두 마리가 상징적으로 그려져 있는데, 이로 인해 은일자 임포의 모습을 잘 담아내고 있는 듯하다. 흥미로운 포인트는 임포의 이야기와 관련이 없는 차를 준비하고 있는 다동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김홍도가 살았던 조선 후기 차에 대한 인식을 엿 볼 수 있는 중요한 시각자료이다.

서유구(徐有榘, 1764~1845)가“조선 사람들은 차를 많이 마시지 않아 나라 안에 본래 차 종자가 있는데도 아는 자가 드물다.(東人不甚啜茶, 國中自有茶種而知者亦鮮)”고 할 정도로 당시 차 문화는 사회 전반적으로 성행되지 못하였으며, 찻잎은 약재로서만 종종 활용되어 질뿐이었다.

최혜인 연구원.
최혜인 연구원.

그러나 일부 문인들은 차가 단순히 갈증을 해소하거나 몸을 치료하는 데 쓰는 약재가 아니라, 내면을 맑고 고요하게 만들어 주는 정신음료로 인식하고 있었다.

이러한 인식을 <취후간화도>를 통해서 엿볼 수 있는 것이다.

즉, 은일지사 임포의 유유자적한 생활과 그 정취를 강조하고자 ‘차를 준비하는 다동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이 그림을 그린 이와 감상한 사람들 모두 차는 세속에서 벗어나 한적한 삶에 필수요소였다.

차 마시는 시간을 일상의 휴식처럼 생각하고, 차를 통해 편안함을 얻는 우리의 모습은 <취후간화도> 속 인물들과 다르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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