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진단] 이명박 정부의 정책에서 해법 찾는다

전략부재와 이념편향에 빠져 독자적 역할 상실
몰역사적이며 균형감 상실한 실패한 외교

 
[트루스토리] 이명박 정부의 외교정책은 총체적으로 난맥상을 보였다. 그 가장 큰 원인은 ‘한미동맹 제일주의’가 절대적인 가치로서 중심을 이루고 있었기 때문에 균형 잡힌 대전략이 형성될 수 없었다. 즉, 한미동맹이 한국외교의 근간이 되어야 한다면서 미국과 일본과의 시대착오적인 가치동맹 추구에만 매달린 가운데 북한.중국과의 관계를 희생시켰다.

이전 정부와 차별성을 갖고자 보다 넓은 범위로 ‘글로벌 외교’를 내세우며 “더 넓은 시야, 더 능동적 자세로 국제사회와 함께하고 교류할 것”이라던 이명박 정부의 외교정책은 좁은 시야, 소극적이고 소심하고 편협한 자세, 절대적인 대미 의존적 자세로 일관했다.

그러면서 ‘경제’를 표방했던 실용외교는 실종되었고, 이념외교로 변질되었다. 이후 5년 내내 이명박 정부는 네오콘적 대북강경책을 내보였고, 이러한 결과가 낳은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사건 이후 미국의 동북아 전략에 동참하면서 대규모 전쟁친화적인 방식으로 일관했다. 결국 이명박 정부의 맹목적인 대미편중외교정책은 한반도 주변의 불안정만 강화시켰고, 남북관계 파탄은 물론 중국, 러시아와 같은 주변국가들과의 관계를 크게 훼손시켰다.

한편으로는 이러한 가운데 미국의 요구에 따라 한미FTA 추가양보 협상 등을 비롯해서 자동차산업과 쇠고기 수입개방 압력까지 수용하게 되었다. 한마디로 이명박 정부의 외교정책은 전략부재와 이념편향에 빠진 상태에서 독자적 역할을 상실한 몰역사적이며 균형감을 상실한 실패한 외교였다.

정치·경제적 굴욕 외교..미국쇠고기수입 전면개방

이명박 정부 출범 첫해 대한민국 사회를 뒤흔든 최대 사건이 촛불시위라고 한다면, 이명박 정부의 위기는 외교정책의 실패, 더 구체적으로는 한미동맹 복원에 사로잡힌 정책 판단의 착오로부터 왔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명박 정부는 또한 쇠고기 재협상 요구가 외견상으로 국민 건강권에 대한 전 국민적 우려로만 파악했다.

하지만 그 근본적인 문제는 검역 주권을 포기한 원칙 없는 실용정책에서 비롯된 잘못된 외교정책으로 훼손된 국민적 자존심에 있다는 비판을 귀 기울이지 않은 것이었다. 오히려 외교정책의 힘은 내부로부터, 민주적 시민으로부터 나온다. 바로 이것이 외교정책과 관련한 촛불의 교훈이다. 과거의 기억에 집착한 이명박 정부의 외교정책은 우리가 그동안 애써 쌓아온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지난 2009년 11월19일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동북아 3국 순방 중 마지막으로 ‘잠깐 들른’ 한국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한미정상회담을 가졌다. 앞서 방문한 중국과 일본에선 이렇다 할 성과가 없이 오히려 부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던 오바마 대통령은 한국에 와서는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자동차 분야에 있어 한미 FTA 재논의를 할 수도 있다는 언급을 받는 등의 커다란 성과를 얻고 돌아갔다.

이는 중국이나 일본에서와는 완전히 다르게 전반적으로 미국에 유리해 보이는 결과였고, 이명박 정부
의 대미외교의 실체 내지 현 수준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으로 평가받을만한 것이었다.

자동차 분야는 한미 FTA에서 그나마 한국에게 유리하다고 평가받는 분야였지만 이마저도 사실은 꼭 그렇지도 않았고, 오히려 조선, 기계, 철강, 화학 등은 기대효과가 거의 없거나 불리한 것이었다. 이후 이명박 대통령이 발효 후 90일 이내의 재협상을 약속한 가운데 2011년 6월에 국회에 한미 FTA 비준안이 제출됐고, 11월22일 한나라당 단독으로 처리됐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은 비준안 처리를 위해 재협상을 약속했지만 한국에 불리한 재협상 내용은 국민에게 알리지 않고 국민을 현혹했다.

이명박 정부는 2009년 10월28일 외교안보정책조정회의를 열고 아프가니스탄에 이른바 지방재건팀(PRT)경비를 위한 파병 방침을 정했다. 그러면서 아프간에 파견하는 군대를 ‘보호병력’이라고 부르며 ‘비(非)전투병’으로 규정한다고 했지만, 탈레반 등 저항세력이 공격해 올 경우 전투를 벌일 수밖에 없어 이는 전투병 파병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병력의 형태나 규모 등에 있어선 특전사 요원을 포함해 300여명을 보내는 방안이었기 때문이다.

정부는 아프가니스탄 재파병을 위해 ‘글로벌 코리아’라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지만, 세계 각국의 아프간 파병과 지원 현황을 살펴보면 명분이 약할 뿐만 아니라 도덕성에서도 그렇고 국제정세의 가치판단에 있어서는 더욱 심각한 문제의식을 갖게 한다. 정부는 아프간에 파병한 국가가 42개국에 이른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른바 G20 정상회의를 개최할 만큼 국제적 위상이 드높아진 한국이 43등이 될 수는 없지 않느냐는 논리를 펴는 듯하다.

그러나 이러한 아프간 파병국들은 대부분 아프간과 정치·경제·지정학적 이해관계가 밀접한 미국과 영국 등을 위시한 28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들로서 이들은 미국에서 발생한 9·11테러를 나토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하고 나토 조약의 ‘자동개입’ 조항에 따라 개입한 나라들이었다. 또한 한국의 지원·약정 금액으로서의 9600만 달러는 나토회원국을 합쳐도 16번째에 이르는 금액이었다.

이 같이 재정면으로 보나, 정치적으로 보나, 국제적 역학관계로 보나, 해외파병만큼 심혈을 기울여야 하는 사안은 거의 없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절박한 국가적 이해관계가 걸려있는 것도 아닌 상황 속에서 한국군 재파병은 이명박 정부 외교정책의 도덕적, 정세적 판단의 과오 및 오류인 것이었다.

2010년 2월3일 방한 한 커트 캠벨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기자 간담회에서 ‘(전작권 전환에 관한 한국 내부의)우려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됐다. 또한 2010년 1월20일 김태영 국방부 장관은 “군은 가장 나쁜 상황을 고려해 대비하는 것으로 2012년 전작권이 넘어오는 게 가장 나쁜 상황”이라고말한 바 있다.

결국 이 같은 상황의 진짜 원인은 바로 이명박 정부 내부에 있는 것이었다. 보수세력이 주장하는 전작권 환수 연기 혹은 백지화 주장을 이명박 정부가 사실상 받아들여 왔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가 이런 태도를 보인 것은 전작권 환수에 대한 왜곡된 시각에서부터 비롯된다. 전작권 환수를 마치 ‘노무현 반미정부의 그릇된 자주의식이 낳은 잘못된 합의’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5년 2월25일 취임 2주년 국정연설에서 “우리 군대는 스스로 작전권을 가진 자주군대로서 동북아의 균형자로서 동북아 지역의 평화를 굳건히 지켜낼 것”이라는 비전을 밝혔는데 이는 취임 2주년을 앞둔 현재의 이명박 정부의 전작권에 대한 자세와 극명히 대조되는 바였다.

그럼에도 이명박 정부에 대한 중간평가 성격을 띠는 지방선거가 다가오면서 정부와 여당은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수단으로 ‘전작권 마케팅’을 계속 높여 나갔다.

김승조 진보정책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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