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도作 '우물가', 18세기 후반, 종이에 먹과 옅은 채색, 28cm×23.9cm, 보물 제527호, 단원 풍속도첩,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김홍도作 '우물가', 18세기 후반, 종이에 먹과 옅은 채색, 28cm×23.9cm, 보물 제527호, 단원 풍속도첩,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뉴스퀘스트=백남주 큐레이터】 <우물가>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 중인 《단원풍속도첩》에 실려 있는 풍속화로, 단원 김홍도가 동네 우물가에서 일어난 일을 포착하여 재미있게 그려낸 작품이다.

그림 속에는 아낙네 둘이 물을 긷고 있고, 지나가던 남자 한 사람이 물을 얻어 마시고 있다. 이 남자는 갈증이 심한지 두레박 채로 물을 벌컥벌컥 마시고 있는데, 챙이 넓은 갓을 들고 있는 것으로 보아 신분이 낮아 보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웃옷을 다 풀어 헤쳐 가슴 털을 고스란히 노출시키고 있다.

이 사내가 입은 옷은 철릭으로 왕을 비롯하여 문관이나 무관 모두 융복(戎服)으로 착용하였으며, 하급 관료·악공·무당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층에서 겉옷으로 즐겨 입었다. 조선 후기의 철릭은 포의 끝자락까지 주름을 잡은 형태여서 주름치마와 유사하였다.

사내에게 두레박을 건네주는 고운 얼굴의 여인은 차마 사내와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얼굴을 돌렸고, 다른 여인도 우물에만 시선을 고정시켜 남성의 행동을 일부러 외면하고 있다.

내외법이 엄한 조선 사회임에도 불구하고, 은밀하고 사적인 공간이 아닌 우물가라는 공적인 공간에서 신체의 일부를 노출한 채 여성에게 접근하고 있는 남자는 배짱이 두둑해 보인다. 무례해 보이는 남자의 요구를 들어주는 여성 역시 상대에 대한 관심을 은근하게 드러내고 있다.

여인들은 모두 장식이 없는 깃 폭이 넓은 민저고리를 입고 있어 여염집 부인들로 보인다. 우물에서 물을 긷고 있는 젊은 여인 둘은 낯선 남자의 행동이 그리 싫지 않은 표정을 짓고 있는 반면,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몸을 돌려 돌아가려다 멈춘 듯 보이는 노파는 젊은 남녀 간의 수상한 행동이 매우 괘씸한지 노골적으로 얼굴을 찌푸리고 있어 대조를 이룬다.

이 작품은 주인공들의 심리 상태를 차별화된 시선 처리만으로도 잘 드러내고 있어 단원 김홍도의 기량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단원은 이 작품에 아무런 배경도 그리지 않았으나, 등장인물의 시선만으로도 한편의 드라마를 연출하였다.

한편 그림 속에 등장하는 여인들은 물을 담을 물동이와 물을 퍼 올리는 두레박을 각각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 공동의 두레박을 사용하기보다 휴대용 두레박을 가지고 다닌 것으로 보인다.

지금처럼 집집마다 수도 시설이 없었던 옛날, 우물가는 동네 여인들이 주로 모여 많은 시간을 보내던 장소였다. 그러다보니 우물가는 온갖 소문의 진원지이자, 정보의 교류가 이루어지던 곳이었다.

또, 남녀가유별 했던 조선 시대지만 우연처럼 만난 남녀의 애정사가 발생하는 공간이기도 했다.

그래서 우물가에서 발생한 남녀상열지사는 고전문학이나, 전설의 단골 소재로 사용되었다. 고려가요 중 하나인 「쌍화점(雙花店)」에도 우물가에서 벌어진 남녀상열지사를 소재로 한 가사가 전해진다.

두레 우물에 물을 길러 갔더니만

우물 용이 내 손목을 쥐더이다.

이 소문이 우물 밖에 나며 들며 하면

다로러거디러 조그마한 두레박아 네 말이라 하리라

더러둥셩 다리러디러 다리러디러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그 잠자리에 나도 자러 가리라

위 위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그 잔 데 같이 답답한 곳 없다.

―「쌍화점」, 현대어 번역은 문화콘텐츠닷컴, http://www.culturecontent.com에서 인용

「쌍화점」에는 우물가에 물을 길러간 여인이 화자로 등장하는데, 여인은 우물가에서 우물 속의 용을 만나 비밀스런 관계를 맺었다.

그런 다음에 여인은 이 사실이 남에게 알려질까 걱정을 하고 있다. 여인은 이 작품에서 만약 자신이 용과 맺은 관계가 소문이 나면, 목격자는 두레박 너 밖에 없으니 두레박이 낸 것이라고 말하겠다고 한다.

풍속화가인 신윤복이 그린 <정변야화(井邊夜話)>란 작품 역시 우물가에서 만난 남녀를 소재로 그린 풍속화이다.

보름달이 환하게 뜬 어느 날 밤, 우물가에 물을 길러 온 여인들을 담장 너머에서 바라보고 있는 나이 지긋한 양반 남성의 모습을 그렸다.

물을 다 길은 여인들은 수다삼매에 빠져있고, 남자는 양반의 체통도 잊고 달빛에 빛나는 여인들의 자태를 훔쳐보고 있다. 어쩌면 그는 여인들이 우물가에 온다는 것을 미리 알고서 담장 뒤에서 여인들을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백주 대낮에도 남녀의 만남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은 곳이 우물가인데, 밤이 이슥해지면 우물가에서는 은밀한 만남의 기회가 더 많았을 것이다.

신윤복作 '정변야화', 종이에 채색, 28.2cm×35.6cm, 국보135호, 혜원전신첩, 간송미술관 소장.
신윤복作 '정변야화', 종이에 채색, 28.2cm×35.6cm, 국보135호, 혜원전신첩, 간송미술관 소장.

김홍도는 조선 후기의 화가로 김해 김씨이고, 호는 단원이다.

그는 조선 시대를 통틀어 가장 뛰어난 화가 중 한 사람으로 산수화·인물화·도석화·풍속화·영모화·화조화 등 회화의 모든 분야에서 뛰어난 기량을 발휘했다. 김홍도의 풍속화에는 특히 예리한 관찰과 정확한 묘사력, 서민들의 생활에 대한 깊은 공감이 잘 드러나 있다.

백남주 큐레이터

【참고문헌】 단원 김홍도 연구(진준현, 일지사, 1999)

문화콘텐츠닷컴(한국콘텐츠진흥원, http://www.culturecontent.com/)

조선 풍속사1-조선 사람들 단원의 그림이 되다(강명관, 푸른역사, 2016)

풍속화(둘)(이태호, 대원사, 1996)

저작권자 © 뉴스퀘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