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적 불매' 예상 뛰어넘어 계속...올해 무역적자 16년만에 최저

[사진=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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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퀘스트=최석영 기자】 ‘독립운동은 못했지만 불매운동은 한다.’

지난 6월 일본 정부의 반도체 핵심 부품 수출규제에 대한 대응으로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벌이고 있는 일본산제품 불매운동이 예상을 뛰어 넘어 계속되고 있다. 일부에서는 다소 감정적이라는 지적도 나오지만 5개월째 이어지고 있는 불매운동은 아예 일상에 녹아들어 고착화 되고 있는 양상이다. 

이에 올해 우리나라의 일본에 대한 무역수지 적자가 16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글로벌 업황 부진으로 반도체 기업의 장비 수입 감축과 국제유가 하락에 따른 석유화학 수입액 감소 등의 큰 영향을 미쳤고, 일본제 불매 운동으로 소비재 수입이 줄어든 것도 상당한 요인이라는 분석이다. 

◇ 한산한 일본맥주 전문점에서 본 ‘불매운동’

지난 15일 저녁 기자가 찾은 서울 중구 무교동의 일본맥주 ‘A사’의 전문점 풍경은 ‘한산’이라는 말로 표현된다. 주말을 앞두고 있는데다 연말이어서 주변 호프집들은 자리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북적였지만, 30여개의 테이블이 있는 이곳은 세 테이블 정도에만 손님이 앉아 조용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특히 이곳을 찾은 손님들도 일본산이 아닌 국산 맥주를 마시고 있을 뿐 일본 맥주병이 있는 테이블은 찾아 볼 수 없었다.

전문점 사장은 “지난 7월부터 월 30~40% 가량 손님이 줄었다”며 “오시는 손님들도 국산 맥주를 주문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본사와의 계약 때문에 장사를 계속하고 있지만 간판을 바꿔야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실제 지난 7월부터 편의점 등에서는 일본맥주를 아예 진열대에서 내리면서 불매운동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 8월 일본맥주 수입액은 22만3000달러로 1년 전보다 무려 97% 줄었다. 지난 9월에는 6000달러 수입에 그치면서 전년 대비 99.9% 감소했다. 사실상 수입이 중단된 셈이다. 

국가별 맥주 수입 순위에서 부동의 1위였던 일본은 28위로 추락했다.

일본 여행도 마찬가지다.

최근 한 소셜커머스의 항공권 예약 데이터에 따르면, 8~9월 두 달 동안 발권된 일본 항공권은 지난해 같은 기간 보다 78%나 줄었다.

불매운동이 본격화된 즈음 10명 중 8명이 일본 여행을 포기한 것이다.

또 한국인이 관광객 대다수를 차지하는 대마도의 경우 페리 승선권 매출이 92% 감소했다.

이와 함께 일본제 불매운동으로 자동차, 의류, 전자제품 등 주요 소비재의 수입도 큰 폭으로 줄었다. 지난 7월 이후 일본 브랜드 자동차 판매는 지난해 같은 기간의 절반 수준에도 못 미쳤다.

[사진=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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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까지 대일무역적자 전년비 20% 줄어

18일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무역협회 등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달 말까지 대일(對日) 무역수지 적자는 163억6600만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206억1400만달러)보다 20.6%나 감소했다.

역대 1~10월 기준으로 따지면 2003년(155억6600만달러) 이후 가장 적은 적자다.

이런 추세라면 역시 2003년(190억3700만달러) 이후 16년 만에 처음으로 연간 대일 무역적자가 200억달러를 밑돌게 된다. 역대 최고치였던 지난 2010년(361억2000만달러)의 절반 수준에 그치는 셈이다.

올들어 대일 무역역조가 ‘개선’된 것은 수입 감소폭이 수출을 크게 웃돌았기 때문이다.

성윤모 산업부 장관도 최근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한 자리에서 “(일본의 수출 규제 이후) 우리가 일본으로 수출하는 물량이 줄었지만 일본으로부터 수입하는 물량이 훨씬 더 많이 줄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지난 10월까지 대일 수출액은 237억4600만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5% 줄었지만, 수입액은 401억1100만달러로 1년 전보다 무려 12.8% 감소했다. 올해 일본산 수입 감소율은 2015년(14.7%) 이후 최고치를 기록할 전망이다.

◇ '대일 무역기조' 근본 바뀌나

올해 대일 무역적자가 큰 폭으로 감소한 것은 주요 소비재의 불매운동 영향도 있지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글로벌 메모리 업황 부진을 반영해 시설 투자를 조절하면서 일본산 반도체 부품·장비 수입을 대폭 줄인 게 주된 요인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내년 반도체 업황이 회복될 경우 대일 무역적자는 다시 증가세로 돌아설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한다.

그러나 중·장기적으로는 대일 무역기조가 지금까지와는 다른 양상을 보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한국 정부가 일본의 수출규제를 계기로 추진 중인 ‘소재·부품·장비(소부장)’ 분야 경쟁력 강화 대책이 성공할 경우 장기적으로 대일 무역역조의 큰 흐름이 바뀔 수 있다는 기대다.

무역협회 문병기 수석연구원은 “일본 수출규제로 소재·부품·장비 산업의 중요성에 대한 정부와 민간의 인식이 높아졌다”며 “단기간 내에 큰 성과를 기대하기는 어렵겠지만 이를 기회로 삼아 고질적인 대일 무역역조의 흐름이 바뀔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 관계자는 “현재 상황으로 보면 일본의 수출 규제는 한국에 좋은 계기가 됐고, 일본은 '제 발등을 찍은 셈'이 됐다”며 “다만 여전히 불확실성이 크기 때문에 차분하게 대응하면서 산업 경쟁력 제고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온라인커뮤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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