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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na 석세스 스토리⑫] 덩샤오핑도 인정한 '해바라기씨 대왕' 녠광주
[China 석세스 스토리⑫] 덩샤오핑도 인정한 '해바라기씨 대왕' 녠광주
  • 전순기 통신원
  • 승인 2019.11.19 14: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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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직영하는 사쯔과쯔 매장 앞에 선 녠광주. [사진=사쯔과쯔]
자신이 직영하는 사쯔과쯔 매장 앞에 선 녠광주. [사진=사쯔과쯔]

【뉴스퀘스트/베이징=전순기 통신원】 중국의 인구는 미국과 캐나다의 북미, 유럽, 러시아, 일본의 인구를 다 합친 것보다 많다.

당연히 내수 시장이 엄청나게 크다.

그래서 속된 말로 중국에서는 바늘을 팔아도 재벌이 되는 것이 가능하다는 말이 있다.

그러니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간식인 해바라기씨를 상품화해 사업이 크게 히트를 치면 재벌 이상이 되는 것도 별로 어렵지 않다.

중국에는 실제로도 이런 사람이 있다.

바로 ‘바보 해바라기씨’라는 뜻의 중국 최고 해바라기씨 브랜드인 ‘사쯔과쯔(傻子瓜子)’의 창업자 녠광주(年廣久. 82)가 주인공이다.

이른바 바보 스타일 경영으로 성공해 해바라기씨 대왕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녠광주는 안후이(安徽)성 화이위안(懷遠) 출신으로 동 시대의 대부분 사람들이 그랬듯 집안 형편이 나빴다.

젊어서부터 길에서 과일 행상 등을 하면서 입에 풀칠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그가 1960년대에 운명의 해바라기씨와도 인연을 맺었다.

씨를 볶아 팔아 생계를 이어간 것이다.

녠광주 최근 모습. [사진=사쯔과쯔]
녠광주 최근 모습. [사진=사쯔과쯔]

그런데 손해를 보지 않을까 우려스러울 정도로 많은 양의 씨를 손님들에게 주는 그의 장사 방식은 정말 독특했다.

바보스러울 만큼 우직했다고 해도 좋았다.

곧 그는 바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또 그의 해바라기씨도 자연스럽게 사쯔과쯔가 됐다.

그러나 엉뚱하게도 바보로 불리던 그의 사업은 날로 번창했다.

얼마 되지 않아 곧 망한다던 그의 점포 앞은 늘 손님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자연스럽게 사쯔과쯔는 초창기 그의 점포가 있던 안후이성 푸후(蕪湖)에서 뛰쳐나와 전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브랜드가 될 수 있었다.

1985년에는 체인점 형태의 브랜드로도 출발하게 됐다.

박리다매 사업 전략이 기가 막히게 맞아 떨어졌다고 할 수 있었다.

‘신중국 최초의 상인’이라는 영광스러운 별명도 얻을 수 있었다.

그는 이후에도 바보답지 않게 기발한 판매 전략을 창안해냈다.

지금은 별 대수로울 것 없는 경품을 내거는 전략이 바로 그것이었다.

이 전략 역시 크게 히트했다.

고객들은 더욱 구름처럼 사쯔과쯔 브랜드를 내건 상점들로 몰려들었다.

그는 ‘신중국 최초의 상인’이라는 별명이 무색하지 않게 회사 간판을 내건 지 몇 년 만에 중국 굴지의 기업인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당연히 그에게도 시련은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지난 세기 80년대와 90년대 초에 각각 직원 불법 고용과 사기 혐의로 투옥된 사건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때마다 그에게는 평소 이 바보 경영인의 사업 수완과 시장경제 마인드를 높이 평가한 개혁, 개방의 총 설계사 덩샤오핑(鄧小平)의 결정적 도움이 있었다.

덩이 자신의 ‘문선(文選)’에서 그를 극찬한 것이 화제가 돼 별로 어렵지 않게 곧 자유의 몸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녠광주의 사무실. 왼편에 그를 화제로 삼은 덩샤오핑 문선의 내용이 보인다. 책의 내용을 크게 확대한 사진이다. [사진=사쯔과쯔]
녠광주의 사무실. 왼편에 그를 화제로 삼은 덩샤오핑 문선의 내용이 보인다. 책의 내용을 크게 확대한 사진이다. [사진=사쯔과쯔]

그는 많이 배우지 못했다.

그렇다고 인물이 출중한 것도 아니다.

네 번이나 결혼한 것에서 보듯 인성도 대단히 훌륭하다고 하기는 어렵다.

조금 악평을 하면 성격 좋지 않은 평범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사업 수단만큼은 대단했다.

뭐가 되려고 그랬는지 덩샤오핑의 시대에 해바라기씨로 사업을 하려고 생각한 것도 그에게는 행운이 아니었나 보인다.

결국 대박을 치고 중국의 개혁, 개방 경제사에 이름을 남기게 됐다.

그의 박리다매나 경품 전략은 요즘 중국에서는 가장 보편적인 영업 전략으로 손꼽힌다.

하지 않으면 업계에서 도태되는 것은 기본에 속한다.

이 점에서 보면 그는 시대를 앞서간 혜안의 소유자라고 해도 좋지 않나 싶다.

그가 2018년 전국공상연합회에 의해 개혁, 개방 40주년을 빛낸 걸출한 민영 기업가 100명에 이름을 올린 것은 이로 보면 너무나 당연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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