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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응백의 국악인문학⑫] '청구영언' 속의 에로틱한 가곡가사(2)
[하응백의 국악인문학⑫] '청구영언' 속의 에로틱한 가곡가사(2)
  • 하응백 문화에디터
  • 승인 2019.12.04 07: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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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국립한글박물관]
1728년(영조 4) 김천택이 편찬한 시조집 '청구영언'.  [사진=국립한글박물관]

【뉴스퀘스트=하응백 문화에디터】 김천택의 『청구영언』(진본)에는 580수의 시조가 수록되어 있다.

이 시조들은 현대의 편집체계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되어 있다. 또한 지은이가 알려진 것은 친절하게도 지은이에 대한 설명도 곁들이고 있다.

이를테면 ‘이수대엽’ 항목 제일 첫째 나오는 시조는 목은 이색의 시조로

이다. 여기에 “李穡 字穎叔 號牧隱 登第元朝授翰林知製誥 恭愍朝門下侍中 文章伎術爲縉紳領袖 入本朝封韓山伯 謚文靖”라는 일종의 주석을 달아놓았다.

번역을 하면 “이색은 자는 영숙이고 호은 목은, 원나라 과거에 급제하여 한림지제고를 제수받고, 공민왕 때 문하시중을 지냈으며, 글 솜씨는 선비 중 제일이다, 조선조에 들어와서 한산백에 봉해졌고 시호는 문청이다”라는 뜻이다. 간략하게 핵심을 간추려 목은 이색의 약력을 서술하고 있다.

이렇게 대개 평시조 464수에 대해 정리를 한 다음 특이하게도 김천택은 ‘만횡청류(蔓橫淸類)’조를 만들어 116수를 따로 정리했다. 이 만횡청류 앞에는 따로 다음과 같은 만황청류에 대한 설명을 달아 놓았다.

“蔓橫淸類 辭語淫哇 意旨寒陋 不足爲法 然其流來也已久 不可以一時廢棄故 特題于下方”

번역을 하면 만횡청류에 속하는 시조는 노랫말이 음란하고 그 의미가 썰렁하고 미천하여, 법도에 맞지 못한다. 하지만 그러한 노래들도 이미 그 유래가 오래되어 일시에 없애버릴 수 없는 까닭에 따로 모아둔다“

비록 음란한 내용일지라도 그 연원이 있기에 버릴 수가 없어 모아둔다고 한 것이다. 음란한 내용의 시조가 많기 때문에 김천택은 따로 이러한 변명을 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하더라도 김천택은 자신의 만황청류를 포함한 편집체계가 과연 당시의 양반 사대부 층이 어떻게 받아들일까 상당히 고민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음란하고 비루하여 당시 주류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당대의 주류 인사에게 발문을 받으면 해결될 문제다. 비록 만청횡류가 들어갔다 해도 당대의 평판이 무난한 인사가 좋다고 하면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요즘 말로 하면 세속의 검열을 피하기 위해 평판 좋은 인사에게 발문을 부탁해 책의 권위를 높이고자 한 것이다.

그 인물이 바로 호를 마악노초(磨嶽老樵)라고 하는 이정섭(李廷燮,1688~1744)이다.

이정섭은 선조임금의 자손으로 당시 명망있는 왕족이었다. 영조 대의 『승정원일기』 기록에 이정섭은 임원군(林原君) 이구(李枸)의 아들로 “학문과 식견이 있어서 근래 사자(士子)들 중에 가장 뛰어난 사람”이라는 평가가 있고, “이정섭은 글을 많이 읽고 행의(行誼)가 있는데도 과거에 응시하지 않았으니, 참으로 뜻이 있는 선비”라는 평가도 있다.

이정섭은 당시 세자를 보좌하는 임무를 맡겼으나 병을 핑계로 출사하지 않았다(조선왕조실록에 1766년 한 사건에 연루되어 고문 끝에 죽은 이정섭은 동명이인으로 임원군 이구의 아들과는 다른 사람으로 보인다).

즉 이정섭은 당시 왕족의 후예로 평판 역시 좋았고 풍류를 즐기며 정치에는 관여하지 않았던 인물로 김천택이 발문을 부탁하기에는 적임자였던 것이다.

이정섭은 다음과 같은 발문을 써서 김천택에게 주었다.

김천택이 하루는 청구영언 한 책을 가지고 와 내게 보여주면서, “이 책은 실로 많은 우리나라의 선배 명공 위인들의 작품들을 널리 모은 것입니다. 민간의 음란한 이야기와 상스럽고 외설스러운 가사도 있습니다. 노래는 정말 보잘 것 없는 예술인데 더욱이 이것에 누를 끼쳤으니 군자가 이것을 보고 병으로 여기지 않겠습니까.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라고 말했다.

나는 “괜찮다. 공자께서 시경을 편찬하시면서 정풍·위풍을 버리지 않으신 것은 선과 악을 갖추어 권장하고 경계하는 뜻을 두신 까닭이다. 시가 주남의 <관저>뿐이며, 노래가 어찌 순임금의 <갱재> 뿐이리오. 성정에서 떠나지만 않으면 그런대로 괜찮은 것이다.”라고 말했다.(조규익, 『만청황류의 미학』에서 인용)

정리를 하면 김천택은 『청구영언』을 편찬하면서 외설적인 내용이 있는 장시조도 수록하고자 했다. 그러나 사람들이 보고서 ‘병’이 아니냐고 하는 게 두려웠다.

그래서 당대의 풍류객이자 왕족의 후예이며, 평판이 좋은 이정섭에게 가서 의논했더니, 이정섭은 공자께서도 『시경』에 음란한 내용이 담긴 시를 담아 편찬하셨으니, 자네도 괜찮다, 시가 어디 고아한 것만 있겠느냐, 라고 했던 것이다.

이에 힘을 얻은 김천택은 『청구영언』 말미에 만횡청류 편을 달아 음란한 시도 함께 편집하였다.

김천택의 만횡청류에 실린 116편은 모두 사설시조 혹은 장시조다. 지은이가 없이 민간에서 떠돌던 시조였지만, 재미있는 가사가 많다.

현대적 관점으로 보면 외설에 해당하는 시는 모두 16편 정도 된다. 예나 지금이나 노래는 놀이판에서 많이 부른다. 그때 부른 노래는 지배 계층의 사상을 반영하는 내용이 물론 주를 이루지만, 그것이 재미있었을 리는 없다.

놀이판에서는 늘 재미를 추구한다. 그 재미를 담보하는 게 바로 외설적 내용이 담긴 만청횡류의 노래였던 것이다. 그 재미를 위해 김천택은 고민하다가 마침내 해결책을 찾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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