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별세한 故 구자경 LG 명예회장. [사진=LG그룹]
지난 14일 향년 94세의 나이로 별세한 故 구자경 LG 명예회장. [사진=LG그룹]

【뉴스퀘스트=최인호 기자】 故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이 17일 영면에 들어간다.

이날 이른 아침 서울의 한 대학병원 장례식장에서는 지난 14일 숙환으로 별세한 구 전 회장의 발인식이 엄수된다.

지난 1925년 경남 진주에서 태어난 고인은 구인회 LG 창업주의 장남으로, 그룹 창업 초기이던 1950년 락희화학공업주식회사(현 LG화학)에 입사해, 1970년 럭키금성그룹(현 LG그룹) 회장에 올라 1995년 그룹 명예회장으로 물러나기까지 45년간 기업경영에 전념해 왔다.

고인은 입사 초기 '이사'라는 타이틀을 달았으나, 직함에 어울리지 않게 손수 가마솥에 원료를 붓고 불을 지펴 크림을 만들고 박스에 일일이 제품을 넣어 포장해 판매현장에 들고 나가기는 소탈한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고인은 특히 회장 취임 후에는 두 차례의 석유파동과 나라 안팎의 어려운 경영환경에도 화학·전자 산업 강국을 위한 도전과 21세기 선진 기업 경영을 위한 혁신의 시대를 펼쳤다.

고인은 또 화학과 전자 분야의 연구개발에 열정을 쏟아 70여 개의 연구소를 설립했으며, 수많은 국내 최초 기술과 제품을 개발해 LG그룹의 도약과 우리나라의 산업 고도화를 이끌어 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 ‘강토소국 기술대국(疆土小國 技術大國)’

고인은 생전 “우리나라가 부강해지기 위해서는 뛰어난 기술자가 많이 나와야 한다”, “세계 최고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가서 배우고, 거기에 우리의 지식과 지혜를 결합하여 철저하게 우리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하며 ‘강토소국 기술대국(疆土小國 技術大國)’의 신념을 강조해 왔다.

고인의 이 같은 의지로 LG전자(구 금성사)는 국내 최초로 19인치 컬러TV, 공냉식 중앙집중 에어컨, 전자식 VCR, 프로젝션 TV, CD플레이어, 슬림형 냉장고 등을 개발하며 국내 최고 가전 회사로서 입지를 다졌다.

고인은 생전 당시를 회고하며 “1970년에 냉장실과 냉동실을 분리한 2중 구조의 ‘투 도어 냉장고’를 개발한 것과, 74년에 개발한 가스레인지, 77년 19인치 컬러TV를 생산한 것 등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고 밝히기도 했다.

LG그룹에 따르면 고인이 25년 간 회장으로 재임하는 동안 LG그룹의 매출은 260억원에서 30조원대로 약 1150배 성장했고, 임직원 수도 2만명에서 10만명으로 증가했다.

◆ ‘자율경영’ ‘책임경영’ ‘고객경영’의 선구자

고인은 1980년대를 지내면서 ‘글로벌 경쟁 체제’를 예견하고 깊은 위기감을 느낀다. 이에 그는 1988년 21세기 세계 초우량기업으로 도약을 목표로 한 ‘21세기를 향한 경영구상’이라는 변혁방향을 발표한다.

이는 사업전략에서 조직구조, 경영스타일, 기업문화에 이르기까지 그룹의 전면적인 경영혁신을 담은 것으로 특히 회장 1인의 의사결정에 의존하는 관행화 된 경영체제를 과감하게 벗어 던지고 선진화된 경영 체제를 정착시키기 위해 ‘자율과 책임경영’을 절대절명의 원칙으로 내세운 것이다

그가 주창한 ‘자율과 책임경영’은 고객과 사업을 잘 아는 전문경영인이 권한을 갖고, 자율적으로 사업을 수행하며 그 결과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라는 것으로, 현재는 보편화됐지만 당시로는 파격이었다.

그는 또 1990년에는 ‘고객가치 경영’을 기업 활동의 핵심으로 삼은 새로운 경영이념으로 ‘고객을 위한 가치창조’, ‘인간존중의 경영’을 선포했다.

‘고객가치 경영’은 당시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생소한 개념이었지만 과감한 선택을 단행한 것이다. LG가 도입한 ‘고객경영’은 시장개방이 본격화되던 90년대 초중반 주요 대기업을 중심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고인은 이외에도 ‘LG 인화원’ 개원해 인재 육성을 위해 노력했다.

고인은 지난 1988년 인화원 개원식에서 “기업은 인재의 힘으로 경쟁하고 인재와 함께 성장한다. 기업의 궁극적 목표인 인류의 번영과 복지도 인재의 빛나는 창의와 부단한 노력에 의해서만 이룩될 수 있다. 인재 육성은 기업의 기본 사명이자 전략이요 사회적 책임이다”라고 강조한 바 있다.

이후, LG인화원은 교육 하드웨어는 물론 소프트웨어 측면을 강화해 실무 실행력 증진에 초점을 맞추며 기존의 이론 교육 중심 체계를 혁파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2001년에는 기업 교육과정의 우수 사례로 영국 파이낸셜타임즈가 뽑은 세계 12대 기업 대학에 선정되기도 했다.

고인은 또 지난 1995년 2월 회장직에서 물러나면서 국내 최초의 대기업 ‘무고(無故) 승계’로 기록을 남겼다. 당시 그는 은퇴를 거론할 나이가 아닌 시기에 경영진의 세대교체가 필요하다고 결심에 따라 후계 승계를 결정한 것이다.

당시 그는 “그간 혁신을 성공시킬 수 있는 기반을 다지는 노력을 충실히 해 왔고 그것으로 나의 소임을 다했으며, 이제부터는 젊은 세대가 그룹을 맡아서 이끌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한편, 고인은 지난 1995년 스스로 회장의 자리에서 물러나 임종을 맞을 때까지 자연인으로서 소탈한 삶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고인의 뜻을 기려 4일장으로 치러진 장례는 가족장으로 최대한 조용하고 차분하게 치러졌으며, 별도의 조문과 조화를 정중히 사양하고, 빈소와 발인 등 구체적인 장례 일정도 공개하지 않았다.

고인의 슬하에는 장남 故 구본무 LG 회장을 비롯해 구훤미씨,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 구본준 LG 고문, 구미정씨, 구본식 LT그룹 회장 등 4남 2녀를 두었다. 부인 故 하정임 여사는 지난 2008년 타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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