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의 어린이날이 있는 베트남

베트남 초등학생들이 다니는 작은 사설학원. [사진=석태문 위원]
베트남 초등학생들이 다니는 작은 사설학원. [사진=석태문 위원]

【뉴스퀘스트=석태문 대구경북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베트남에서 어린이날은 여성의 날과 마찬가지로 사실상 두 번이다.

6월 1일은 국제 어린이날이다. 음력 8월 대보름인 추석은 작은 어린이날에 해당한다. 6월 1일 어린이날은 사회주의권역 나라에서 공동으로 기념하는 날이다.

5월말 여름방학이 시작되니, 어린이날을 시작으로 아이들은 수업과 숙제에서 벗어나 자유의 몸이 된다.

어린이날은 오롯이 어린이를 위해 가족행사를 하거나 공동 축제를 한다. 아이들은 공휴일이지만 부모는 출근하는 날이다.

자녀를 위해 헌신하려면 부모는 당연히 이 날 하루, 휴가를 받아야 한다.

어린이날을 기념하는 행사도 다양하다.

가족단위로 하는 행사는 부모가 자녀들을 위해 무언가 특별한 것을 베풀어 준다. 가족 소풍을 가든, 장난감을 아이에게 선물하든,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을 부모가 해주는 날이다.

회사나 시민단체, 마을에서 공동으로 어린이날을 축하하는 행사도 개최한다.

필자의 사무실에서도 자녀들을 초청하여 선물과 다과를 마련한 뒤, 아이들을 격려하는 행사를 열었다. 행사를 마치면 자연스럽게 자녀들은 부모가 일하는 사무실 체험을 하는 시간이 된다.

회사에서 개최하는 어린이날 행사는, 부모에게는 회사일의 중단 없이, 자녀를 돌보고, 아이들에게는 부모 일을 체험하는 일석삼조의 효과를 가지는 셈이다.

이날 저녁에는 마을공동체에서 어린이날 행사를 하는 장면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도시의 마을공동체란 대문은 하나인데 2~3층 주택들이 여러 채 모여 사는 작은 마을이다.

보통 20~30호가 같이 산다. 같은 주소를 사용하고, 아파트식 일련번호로 개인 가구를 구분한다. 일련번호가 25번까지 있다면 ‘한 대문 25가족 공동체 마을’인 것이다.

이 공동체에서 저녁에 어른, 아이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상을 나눠주었다. 부모들이 갹출해서 거둔 돈으로 장만했을 상들이니, 상은 모든 아이들에게 골고루 돌아갔을 것이다.

어린이날, 마을공동체의 어른들이 자녀들에게 공동으로 상을 주니, 어린이들은 공동체에 대한 소속감, 자긍심을 가지며 성장할 것이다.

또 한 번의 어린이날은 추석이다. 음력 8월 대보름, 이 날도 베트남의 국경일이 아니다. 어른들은 출근하지만 학생들은 공휴일이다. 베트남에서 명절은 음력 1월 1일인 설(뗏, Tet)이 가장 큰 명절이고, 두 번째가 추석이다.

그런데 베트남에서 추석은 조상을 위한 제사를 지내지 않고 단지 어린이를 위한 명절로 보낸다. 미래세대를 위한 명절이란 설정은 이방인에게는 참 그럴듯하고, 특이하게 여겨졌다.

두 번의 어린이날이 있고, 어린이에게 두 번의 공휴일을 주는 유일한 나라가 베트남이 아닐까.

추석은 어떻게 베트남에서 어린이날이 되었을까?

베트남에는 많은 신화가 있다. 추석과 관련된 여러 전설 중에서 꾸오이(Cuoi) 전설은 추석이 어린이날로 바뀐 배경이다. 꾸오이의 아내는 실수로 신성한 반얀 나무(banyan tree)에 오줌을 쌌다.

반얀 나무는 마술처럼 땅 위로 쏟은 후 달나라로 날아가 버렸다. 남편 꾸오이는 달로 간 반얀 나무를 찾으려 나섰지만, 그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매년 추석이 되면 아이들은 밝고 화려한 등불을 들고, 꾸오이의 귀환을 빌었다. 꾸오이가 쉽게 집으로 돌아오도록 아이들이 등불로 밤길을 밝히는 것이다.

베트남의 추석은 이렇게 꾸오이의 귀환을 염원하는 아이들이 중심이 된 명절로 바뀌었다. 베트남인들은 어린이를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존재로 여겼다.

추석은 1년 중 달의 힘이 가장 센 날이다.

다산과 풍성한 수확을 상징하는 이 날은 농작물과 가축의 풍성함만이 아니라, 더 많은 자녀 탄생을 염원하는 날이 되었다. 베트남의 추석이 조상숭배에서 어린이를 위한 날로 바뀐 연유이다.

두 자녀 정책과 그 명암

도이모이(쇄신)정책으로 세계 시장에 첫 발을 내디딘 지 4년만인 1990년 9월, 베트남은 어린이와 관련한 주목할 조치를 취했다.

베트남은 아시아 최초, 세계 두 번째로 유엔아동권리협약에 가입하였다. 2019년 현재 196개국이 비준한 이 협약은 인권사각지대에 놓인 아동의 권리를 보장하는 국제협약이다.

아동은 단순한 보호대상이 아니라, 권리를 가진 인간이라고 하였다.

베트남의 어린이 정책에서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은 두 자녀 정책(Two-Child Policy)이다. 이 정책은 선·후진국을 막론하고, 산업화를 추진하던 모든 나라의 관심사였다.

멀게는 맬서스의 인구론이 제기한 ‘식량은 산술급수, 인구는 기하급수로 증가한다.’는 인구폭발의 함정에 빠져들지 않기 위함이었다.

가깝게는 다자녀출산으로 엄마가 가사노동에 얽매이는 나라일수록 후진국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이론도 한몫 했다.

1980년대 베트남의 생애 자녀출산 수는 5명을 넘었다. 자연출산율 수준이 2.1명이니, 이렇게 높은 출산율로는 경제성장이 불가능했다.

1983년 최초로 두 자녀 정책이 시작되었다. 1985년에는 위반 가정에 처벌까지 부과하였다. 1986년에는 가임연령(여성 21세, 남성 24세 이상), 자녀출산 간격(3~5년)까지 제한하였다. 국가는 무상으로 피임장치도 공급해 주었다.

1993년에는 2015년까지 출산율을 2.1까지 떨어뜨리는 목표를 설정하였다. 두 자녀정책으로 합계출산율은 1979년 5.6에서 1993년에는 3.2로 크게 떨어졌다.

이를 통해 베트남은 황금인구구조, 소위 노동인구가 가장 많은 인구구조를 가졌고, 경제성장에 매진할 수 있었다.

그러나 두 자녀 정책은 또 다른 문제를 낳았다. 지역별 출산율과 성비(gender) 차이는 물론, 황금인구구조가 붕괴하면서 급격한 고령화의 충격이 예고된 것이다.

지구촌이 공통으로 겪고 있는 인구 문제는 한번 하락 국면에 접어들면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2018년 세계 최초로 0.98의 초저출산율을 기록했다. 금년에 더 하락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베트남의 출생율도 2018년 7월 기준 자연출산율 2.1보다 낮은 1.79로 떨어졌다. 2017년에 베트남 정부가 서둘러 두 자녀 정책을 포기한 이유이다.

베트남의 가족계획, 인구정책이 급격히 바뀌었다. 양과 질 두 측면 모두 인구감소에서 증가정책으로 전환되었다.

자녀출생 수는 2.1명을 유지하고, 2030년 총인구는 1억4백만 명까지 끌어올린다. 성비 불균형도 자연 성비인 105(여성 100명, 남성 105명)로 시정할 계획을 내놓았다.

이런 목표들이 어느 정도 실현될지는 알 수 없다. 변화된 인구정책은 자녀교육과 어린이정책에 대한 부모와 사회의 관심도를 크게 바꿀 것이다.

크리스마스 선물코너에서 포즈잡은 베트남 어린이들. [사진=석태문 위원]
크리스마스 선물코너에서 포즈잡은 베트남 어린이들. [사진=석태문 위원]

마무리 – 어린이는 마땅히 존중받아야

아이는 태어난 지 100일을 축하하는 파티부터, 진정한 가족의 일원이 되는 돌잔치를 거친다.

14세가 될 때까지 매년 두 번의 어린이날 축하를 받으면서 윗세대들의 사랑과 보살핌을 받으며 성장한다.

정부에서 시행하는 어린이 관련 정책도 쏙쏙 성과를 보이고 있다.

2000년도에 시작한 초등학교 의무교육이 2003년에는 문해력 94%를 넘기는 성과를 거두었다. 세계 최고 수준의 문명율이다. 2020년에는 중학교 의무교육이 시행된다.

그러나 도시와 농촌, 평지와 산간지 어린이의 생활, 교육 격차는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소수민족별 격차는 훨씬 더 심하다.

생물학에 최소율 법칙이 있다.

가장 약한 고리가 그 사회의 수준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베트남 어린이에 대한 제반 수준이 최소율 법칙에 의해 제한되어선 안 된다.

저소득층 어린이 거주지역의 교육 수준을 올리기 위한 투자를 획기적으로 늘려야 할 것이다. 사회적 평형성 우려를 야기했던 일부 선진국의 교육 폐해를 베트남이 답습해선 안 된다.

고소득층 자녀에 대한 극한의 사교육비 지출, 사교육을 통해 명문대 진학과 사회적 부의 세습이란 등식을 이루기 위한 교육 집착이 베트남 사회에서 재현될 조짐이 보인다.

베트남은 극한 지출과 교육 집착을 방지할 사회적 합의를 사전에 도출해야 한다. 어린 자녀를 사교육의 굴레에 가두고, 부모의 야망과 자녀의 편익이란 원초적 욕망의 틀 속에 가둬선 안 된다.

베트남은 두 자녀 정책을 과감히 포기했다.

총인구가 1억 명이 넘어서면 그에 상응한 경제효과가 날 것이란 자신감도 붙었다. 베트남이 인구의 양적, 질적 성장을 시도하는 이유이다.

베트남은 20세기의 굴레를 벗어던졌다. 베트남은 이제 신세대들이 책임질 21세기를 살고 있다.

총인구의 23%를 넘는 14세 이하의 어린이는 모두 21세기에 이 땅에 왔다. 전쟁을 모르고 어려움도 많이 사라진 상대적 풍요의 시대를 사는 세대이다.

경제성장과 더불어 개인경쟁도 치열해질 것이다.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베트남은 유엔아동권리협약에 앞서 가입했던 어린이 존중 정신을 상기해야 한다.

어린이는 미래를 책임질 세대이다. 어린이가 본래부터 가진 권리를 최대한 보장하는 것이 베트남은 물론 지구촌의 모든 어른이 해야 할 일이다. 어린이는 한없이 그리고 마땅히 존중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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