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자산 사회적책임투자 적용이 원칙...'나쁜기업'에는 이사 해임 등 요구 철퇴

[사진=뉴스퀘스트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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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퀘스트=최석영 기자】 국내의 '착한기업'에 대한 투자는 국민연금이 앞장서고 있다.

세계 최대 규모 기관투자가 가운데 하나인 국민연금은 지난 27일 기금운영위원회를 열고 국민연금의 경영참여 목적의 주주권행사 대상 기업과 범위, 절차 등을 규정한 가이드라인을 의결했다.

2020년부터 ESG(환경, 사회책임, 지배구조) 투자 비중을 늘리고 투자대상 기업들의 ESG평가를 강화한다는 내용이다.

다만 ESG 평가로 경영권 개입에 나설 경우 기업들의 상황 등으로 고려해 방어권은 적극 보장해 주기로 했다. 경영계의 반발을 고려한 조치다.

국민연금은 물론 다른 공적 기관투자가들도 이같은 흐름에 동참하고 있는데 사학연금과 우정사업본부, 공무원연금, 교직원공제회 등도 ESG투자를 지속적으로 늘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움직임은 해외에서도 비슷했다. 앞서 일본에서도 지난 2015년부터 공적연금(GPIF)이 사회적책임투자를 중시하고 ESG 상장지수펀드(ETF)를 투자 대상 자산으로 적극 편입하자 많은 기업이 ESG에 전향적인 자세로 빠르게 돌아섰다. 

◇ 국민연금 전체자산에 사회적책임투자 적용

국민연금이 투자대상을 선정할 때 ESG 요소를 적극 반영하기로 한 것은 기업들이 옳은 방향으로 가도록 이끌어 장기적으로 수익을 거둘 수 있도록 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겠다는 취지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가 마련한 책임투자 활성화 방안을 보면 국민연금은 기금 전체 자산군에 사회책임투자를 적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국내외 주식과 채권에 우선 도입하고 자산군과 운용방식별 특성을 고려해 책임투자 전략을 적용하기로 했다.

사회책임투자는 투자자산을 선택하고 운용할 때, 수익을 제고하고자 재무적 요소뿐 아니라 환경(E), 사회(S), 지배구조(G) 요소를 종합적으로 살펴서 투자하는 방식을 말한다.

이미 유럽연합(EU)을 중심으로 주요 선진국 연기금들은 기업의 거버넌스(지배구조) 개선, 주주권 행사 정책, 기후변화 정책, 지속가능 개발을 위한 투자 정책, 주주 관여 정책 등 다양한 정책을 평가해 특정한 기준에 도달하지 않으면 적극적인 대화를 통해 개선을 요구하거나 아예 투자를 하지 않고 있다.

국민연금은 지난 2015년 ESG 평가지표를 마련했고 매년 2회 800여개 투자기업을 대상으로 6개 등급으로 평가를 하고 있다.

국민연금 ESG 평가지표는 산업별 특성과 기업 재무성과와의 연계성 등을 고려해 52개 세부지표로 구성돼 있다.

다만 그동안 국민연금은 ESG 지표 중 지배구조에 보다 집중해 온 경향이 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이에 재계에서는 정부의 입김이 작용하는 국민연금이 기업들의 경영권에 개입한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이런 목소리를 불식시키고자 국민연금은 향후 투자의사 결정과정에서 지배구조 뿐 아니라 환경과 사회책임 관련 지표에 대한 영향력을 더욱 확대하겠다는 계획이다.

기금운용위는 사회책임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해 적용 대상을 현재 일부 투자기업에서 기금 전체 자산군으로 점차 확대키로 했다.

먼저 국내외 여건을 감안해 국내외 주식과 회사채 등 채권에 우선 적용키로 했다.

사모펀드나 부동산, 인프라 등 대체투자의 경우 국민연금법상 적용 가능성과 구조적 특수성 등을 고려해 도입 시기를 추가 검토키로 했다.

기금운용위원회 의장을 맡고 있는 박능후 복지부 장관은 "국민연금이 수탁자책임원칙 따라 주주활동을 충실히 이행한다면 국민연금의 주주활동에 대한 시장 예측가능성이 높아진다"며 "이에 따라 기업들도 건전한 방향으로 성장해가게 될 것이고 우리나라 자본시장에 대한 대외 신뢰도도 한 단계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 위원장인 박능후 보건복지부장관이 지난 10월 11일 2019년도 제7차 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보건복지부]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 위원장인 박능후 보건복지부장관이 지난 10월 11일 2019년도 제7차 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보건복지부]

◇ 불법으로 기업가치 하락땐 이사해임 등 요구

국민연금은 지난 27일 최고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히를 열어 경영참여 목적의 주주권 행사 대상 기업과 범위, 절차 등을 규정한 가이드라인을 의결했다.

가이드라인의 핵심은 국민연금이 횡령·배임·사익편취 등으로 기업가치가 추락했는데도 개선 의지가 없는 투자기업에 대해 이사해임과 정관변경 요구 등 적극적 주주활동에 나선다는 게 요지다.

국민연금은 적극적 주주활동 대상 중 '중점관리사안'으로 ▲지나치게 낮은 기업의 배당정책 ▲지나치게 높은 임원 보수 ▲횡령·배임·부당지원·경영진 사익편취 등 법령 위반으로 인한 기업가치 훼손 및 주주권익 침해 사안 ▲지속해서 반대의결권 행사 사안 등을 규정했다.

이 가운데 법령 위반과 관련된 경우 국민연금은 1, 2심을 거쳐 3심인 대법원 확정판결까지 기다리지 않고 기업가치나 주주권익이 훼손됐다고 판단할 경우 적극적 주주활동을 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다만 산업과 기업의 상황을 반영해 주주제안을 철회할 수 있도록 하는 단서조항을 두고 '중점관리사안'으로 주주활동을 펼치는 등 기업의 방어권도 보장하기로 했다.

이에 주주활동 대상으로 '예상하지 못한 우려사안'으로 분류했던 ESG 평가 등급 하락 사안을 '중점관리사안'으로 변경하기로 한 것 등이 포함됐다.

예상하지 못한 우려 사안은 ▲기금운용본부의 ESG 평가 등급이 2등급 이상 하락해 C등급 이하에 해당하거나 ▲ESG와 관련 예상하지 못한 기업가치 훼손이나 주주권익을 침해할 우려가 발생한 경우를 뜻한다.

이와 관련 박 장관은 "경영계의 요청에 따라 국민연금의 주주활동 목적은 기금의 장기 수익과 주주가치 제고라는 점을 명확히 규정하고 주주활동 대상을 선정할 때 해당 기업의 산업적 특성 및 기업 여건 등도 종합적으로 고려하도록 했다"고 말했다.

박 장관은 "앞으로 국민연금은 이번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시행하는 과정에서 추가적인 개선이 필요한 경우에는 기금운용위원회를 중심으로 소위원회를 구성해 논의하는 등 지속적으로 보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 국내 ESG 투자규모 7조원대 성장

국내 ESG투자 시장은 약 7조원 규모로 성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가운데 대부분은 국민연금의 투자 위탁운용액으로 6조2000억원(지난해 7월 기준)에 달한다. 지난 2007년 4000억원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10년새 15.5배나 늘어난 수치다.

금융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ESG 투자는 2000년대 중반에 시작돼 현재 국민연금, 사학연금, 공무원연금 등 국내 3대 공적연기금이 주도하고 있다.

국민연금 ESG 책임투자 펀드 위탁 운용액이 6조2000억원으로 가장 많고, 사학연금 1329억원(2018년 기준) 등이다.

국민연금 ESG투자 위탁 규모는 2007년 4000억원, 2012년 5조4000억원, 2017년 7월 6조2000억원으로 성장했다.

민간 기관들의 ESG투자도 증가하고 있다.

현대캐피탈은 올해 4월 국내 기관투자자 대상 5~10년 만기 원화표시 그린본드 3000억원, 12월 2000억원 규모로 발행했다. 이 자금은 현대·기차아 전기차와 수소차, 하이브리드 차량 등 친환경 차량 할부 금융 서비스에 활용된다.

해외투자에 주력하는 KIC도 올해 전체 포트폴리오 및 투자프로세스에서 ESG 통합체계를 구축해 ESG 평가를 투자에 적용하고 있다.

금융연구원 여은정 연구원은 "사회적책임투자는 그동안 미국, 유럽 등에서 급성장했는데 최근 아시아에서도 주목받으며 성장하고 있다"며 "일본이 2017년 공적연기금에 ESG 원칙을 도입하면서 주목을 받았고, 우리나라은 아직 미미한 수준이지만 최근 활발한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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