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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주의 한복이 있는 옛 그림 이야기(31)] 이광사 초상(李匡師 肖像)
[백남주의 한복이 있는 옛 그림 이야기(31)] 이광사 초상(李匡師 肖像)
  • 백남주 큐레이터
  • 승인 2020.02.09 06: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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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한평作 '이광사 초상', 1774년, 비단에 채색, 66.8cm×53.7cm, 보물 제1486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신한평作 '이광사 초상', 1774년, 비단에 채색, 66.8cm×53.7cm, 보물 제1486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뉴스퀘스트=백남주 큐레이터】 조선 중기의 양명학자(陽明學者)이자 서예가인 이광사((李匡師, 1705~1777)의 모습을 그린 초상화로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초상화의 작가는 신한평(申漢枰, 1726~미상)으로 본관은 고령이고, 호는 일재(逸齋)로 영조와 정조의 어진 제작에 참여했으며, 초상과 화조, 산수를 잘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는 화원이다.

조선시대 풍속화의 대가로 알려진 혜원 신윤복(蕙園 申潤福: ?~1813 이후)의 아버지다.

조선 시대에 그려진 초상화중 반신상(半身像)은 대부분이 가슴이나 복부까지만 묘사하였는데, <이광사 초상>은 두 다리의 일부까지 그려졌다는 점이 매우 특이하다.

초상화를 살펴보면 이광사는 얼굴을 오른쪽으로 향하고 있으며, 두 손은 소매 속에 넣어 보이지 않지만 마주하여 앞으로 모으고 있다.

머리에는 사방관(四方冠)을 쓰고 몸에는 미색의 도포를 입고 있다. 사방관은 조선 중기에 벼슬을 한 사람들이 평상시에 갓 대신에 즐겨 썼던 위가 막혀있는 사각형 모양의 쓰개이다.

그림 속 사방관은 말총을 성글게 짜서 만들었는데 관속의 상투관과 비녀까지 선명하게 드러나 있다.

얼굴은 붉은 기운이 감도는 살색으로 칠했는데, 윤곽선과 이목구비는 가늘고 예리한 선으로 그렸다. 얼굴의 튀어 나오고 꺼진 부분은 물을 먼저 칠하고, 마르기 전에 물감을 칠하여 번지게 하는 운염법(暈染法)을 써서 농담의 차이를 나타냈다.

움푹 들어간 눈가 주위나 찌푸린 양미간, 팔자주름 주변은 얼굴색보다 짙은 색으로 칠해 그늘진 표정을 연출하였다.

짙은 갈색 선으로 쌍꺼풀을 그린 뒤 검은색 선으로 속눈썹과 눈매를 선명하게 그렸고, 눈 안쪽 끄트머리는 붉은색, 눈동자는 옅은 밤색, 동공은 검은색으로 칠해 눈빛에 슬픔을 담았다.

눈썹이나 수염 같은 털들은 한 올 한 올 섬세하게 묘사하였는데, 먼저 바탕을 칠하고 그 위로 흰색과 검은색을 사용하여 눈썹이나 수염을 그렸다. 굳게 다문 입술은 진한 갈색 선으로 윤곽선을 그린 뒤, 선홍색으로 채색을 하였다.

또 아랫입술 하단을 백색으로 칠해 입술의 볼륨감을 강조하였다. 깃 부분이 목을 다 가리고 턱까지 올라오게 그려진 미색 도포는 윤곽선과 옷 주름을 선으로 그렸고, 몸의 움직임에 따라 달라지는 주름은 농담을 다르게 두어 채색하였다.

초상화 화면 우측 상단에는 이광사가 1762년에 신지도로 이배되었고, 1777년 73세로 사망했으며, 이 초상은 이광사가 70세 되던 해(1774년)에 신한평이 그렸다는 내용이 적혀있다.

이것으로 보아 신한평이 신지도에 유배 중인 이광사를 찾아가서 만난 뒤 초상화를 그렸음을 알 수 있는데, 두 사람이 무슨 관계였고, 어떠한 연유로 신한평이 먼 유배지까지 이광사를 찾아가서 그의 초상을 그리게 되었는지 저간의 사정은 밝히지 않았다.

이광사는 본관이 전주, 호는 원교(圓嶠), 수북(壽北)이고 정종의 10남 덕원군의 후손이다. 소론에 속했던 이광사의 부친은 영조가 즉위한 뒤 노론이 세력을 잡자, 강진으로 유배를 가서 그곳에서 죽었다.

이후 이광사는 역적으로 몰려 출사의 길이 막히게 된다. 이에 따라 그는 근 이십 년간 야인으로 살면서 양명학자인 정제두(鄭齊斗)와 윤순(尹淳)의 문하에서 수학하며 서예를 익혔다.

1755년 소론 일파의 연잉군 제거 역모 사건에 연루되어 옥에 갇혔다가 7년간 함경도 부령에서 유배 생활을 했고, 1762년에는 최남단의 절해고도인 신지도로 보내져 15년 간 유배 생활을 하다가 그곳에서 일생을 마쳤다.

이광사는 계속된 유배 생활 중에서도 원교체라는 독특한 서체를 만들었다.

이로써 이서(李漵, 1662∼1723)가 서법을 정립한, 중국의 서예와 구별되는 조선색이 강한 ‘동국진체(東國眞體)’가 이광사에 이르러 완성되었다.

또한 이광사는 서예 이론서 『서결(書訣)』을 집필하여 조선의 서예론 연구에 귀중한 자료를 남겼다.

【참고문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학중앙연구원, http://encykorea.aks.ac.kr)

한국의 초상화-형과 영의 예술(조선미, 돌베개,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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