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퀘스트=김재준 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앞에서 계속)

한 시간 반 정도 올랐을까?

해발 944미터 억산 정상이다(석골사2.8·운문산4.2·범봉2.6·팔풍재0.6킬로미터).

동쪽 운문산 밑에 상운암이 동남방으로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일찍 올라온 덕택에 이 산에 우리가 첫 손님, 하긴 석골사 입구에 8시 조금 지나 도착했으니 억산정상은 10시쯤이다. 억산의 조망은 건너편 암릉에서 보는 것이 훨씬 낫다.

억산 정상. [사진=김재준 시인]
억산 정상. [사진=김재준 시인]
왼쪽부터 억산, 범봉, 운문산. [사진=김재준 시인]
왼쪽부터 억산, 범봉, 운문산. [사진=김재준 시인]

억산 정상은 탁 트인 조망이 일품

바위에서 조심스레 내려오다 보니 쇠물푸레나무 한 무더기 뿌리째 넘어져 있다. 일으켜 세우다 힘이 부쳐 할 수 없이 지날 수밖에……. 절벽을 돌아 진달래 군락지 아래로 가파른 내리막길인데 나무계단이 놓여 덜 위험하다.

팔풍재(석골사2.7·억산0.6·대비사2.6·운문산3.7·딱밭재1.9킬로미터)에서 한 시간 정도면 석골사, 대비사로 내려갈 수 있지만 우리는 동쪽 능선을 향해 내닫는다. 잠시 후 도착한 범봉은 해발 962미터로 억산보다 더 높지만 장중함에 눌렸는지 위용은 없는 산이다.

“푸 후 ~”

덥고 숨이 차서 연신 숨을 몰아쉰다.

물 한 잔 들고 다시 운문산을 향해 무거워진 걸음 옮긴다. 닥나무 밭이 있었던가? 딱밭재 갈림길(운문사4.5·석골사2.6·운문산1.8킬로미터) 너머 흐릿한 운문, 여기서 갈 수 없는 곳이다. 안내판에는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지정됐다지만 운문사에서 운문산 등산은 10년 전부터 지금까지 실패했다.

“출입금지.”

운문사는 신라 진흥왕 때 지었고 근처의 가슬갑사에서 원광법사가 세속오계(世俗五戒)를 전한다. 일연스님이 잠시 머물렀으며 고려 왕건 때 크게 고쳐지었으나 임진왜란 때 불탔다.

여자승려 비구니 승가대학으로 유명한 절이다. 이쯤에서 출입금지 팻말에 막혀 더 이상 기록할 수 없으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고려 무신정권의 강탈에 못 견딘 농민들은 험한 산을 근거지로 도둑이 되기도 했다. 이들을 초적(草賊)이라 불렀는데 주로 운문산이나 황해도 구월산, 서울 관악산 등 공물(貢物)1)을 운반하는 지역으로 습격하기 쉽고 산에 오르면 관군도 접근하기 어려운 곳을 택했다.

구름이 머문다 하여 운문산

특히 운문산은 폭압에 운문적(雲門賊)으로 불리던 김사미의 난이 일어난 곳이다. 조정의 수탈에 백성들이 시달리자 1193년 7월 농민들과 반란을 일으켜 1년간 힘을 떨쳤다. 울산의 효심과 같이 이의민을 왕으로 만들려했다는 얘기도 있다.

그의 이름 사미(沙彌)는 승려가 되기 전의 수행자를 이른다. 앞서 1176년경 공주 명학소의 망이·망소이의 난 등 수많은 민란이 일어났다.

딱밭재에서 운문산까지 힘을 많이 썼다. 석골사에서 바로 올라오지 않고 억산으로 7~8킬로미터 돌아왔으니 그럴 수밖에……. 스틱(stick)을 힘차게 딛고 점차 숨소리도 가늘어졌다.

“한참 쉬었다 가자.”

운문산 팻말도 지쳐 떨어져 있다(억산3.6·석골사4·딱밭재1.6·상운암0.5·운문산0.5킬로미터). 12시 10분쯤 정상에 도착하니 뙤약볕에 날은 뜨겁고 구름은 간 곳 없다. 이름이 아깝다.

“글자는 시원하게 팠네.”

운문산(雲門山) 1188미터.

먼저 올라 온 이들에게 사진 한 번 부탁했더니 잘 나온 것 골라 쓰라며 두 번 찍어준다. 산에 오르면 누구나 순하게 된다. 갇힌 것들을 열어주고 부드럽고 맑게 하며 흐린 것과 욕심도 발아래 둘 수 있다.

시달린 이들에게 하늘을 구름을 보여준다.

바라보면 그저 산일 뿐, 나무와 부딪히고 산바람 맞으며 계곡의 물을 마셔야 무엇인가 느낄 수 있다. 새소리에 귀 기울이고 흙에 미끄러지고 뒹굴 수 있어야 비로소 산은 가까이 산으로 다가온다. 신갈·쇠물푸레·주목·고로쇠·소나무들이 어울려 자란다.

범봉과 운문산 정상 표석. [사진=김재준 시인]
범봉. [사진=김재준 시인]
범봉과 운문산 정상 표석. [사진=김재준 시인]
운문산 정상 표석. [사진=김재준 시인]

구름 머무는 운문산은 운문사에서 따온 이름인데 청도 운문면과 밀양 산내면 경계에 있다. 가지산(1241m), 천황·사자봉(1189m), 신불산(1159m), 영축·취서산(1081m), 고헌산(1034m), 간월산(1069m) 등과 함께 영남알프스라 불린다.

이곳에서 동북쪽으로 뻗은 가지산은 5.4킬로미터(석골사4.5, 억산4.1).

맏형격인 가지산은 고헌산에서 간월산, 신불산으로 지나가는 낙동정맥2)의 분기점이기도 하다. 부근에는 통도사, 석남사, 운문사, 표충사의 오래된 절이 있다.

날은 덥고 정상에 그늘은 없지만 키 작은 참나무 옆에서 배낭을 푼다. 푸성귀, 마늘줄기, 오가피순 장아찌에 밥 한 덩이, 그야말로 배고플 때 조금 먹는 점심(點心)이다. 20분 내려서니 구름위의 암자 상운암. 하산 길은 계곡 물소리가 시원하다.

(다음 회에 계속)

글 김재준(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주석>

1) 왕실이나 조정을 위해 거둬 내게 한 물품.

2) 태백 구봉산(九峰山)에서 부산 몰운대(沒雲臺)에 이르는 산줄기 약 370킬로미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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