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퀘스트=김재준 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앞에서 계속)

병꽃·누리장·모감주·광대싸리·팽·광·생강·사람주·사스레피·물푸레·갈참·졸참·붉나무, 모시풀·자리공……. 유달산은 난·온대 수종이 함께 자라는 식물 창고다.

어느 해 여름날 산 아래 바라보니 지붕위에 커다란 신안군청 글자가 시원하게 들어왔다.

“시내도 잘 보이고 정말 멋진 산이다.”

“산도 좋지만 문화가 있어서 더 좋아. 노적봉, 삼학도, 목포의 눈물…….”

유달산 정상, 해발 228m. [사진=김재준 시인]
유달산 정상, 해발 228m. [사진=김재준 시인]

정겨운 우리식물들과 압해도 게

나무 이름 묻는 일행과 이야기하면서 오르는 바위산은 햇볕에 한층 뜨겁다.

온 산에 사람주나무, 절벽 아래 아득한 다도해가 사람주나무 이파리 위로 출렁인다. 1시 35분 유달산 정상(일등봉 228미터)에 오르니 눈이 시원하다. 담쟁이넝쿨 바위에 기어올라 운치를 더하고,

“저게 무슨 나무지?”

“벽, 오동.”

“푸를 벽(碧)자, 푸른 오동나무.”

벽오동은 상전벽해(桑田碧海)를 알고 있을 것이다. 압해도(押海島)를 연결하는 다리가 놓여 지붕위의 명물이던 신안군청이 옮겨갔고 아파트도 많이 들어섰다.

도시락 점심 먹고 이등봉 가는 길, 쇠물푸레, 광대싸리, 참싸리, 청미래덩굴 섞인 숲에 기세 좋은 박주가리 생채기진 잎은 하얀 유액(乳液)을 뚝뚝 흘린다.

이등봉 바위에 사람주·광나무, 팥배나무는 벌써 꽃이 지고 팥 크기의 연록색 열매가 빼곡히 달렸다.

자생 멸종위기식물 왕자귀나무. [사진=김재준 시인]
자생 멸종위기식물 왕자귀나무. [사진=김재준 시인]

아카시아, 실거리나무, 족제비 싸리와 깃 모양이지만 다행이 자귀나무보다 잎이 두텁고 커서 구분되는 왕자귀나무를 만난 건 행운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자라는 곳이다.

왕자귀나무(Albizzia coreana Nakai)는 유달산 특산으로 만나기 어렵다.

자귀나무(Silk tree)처럼 해 지면 수분증발을 막기 위해 잎이 마주 붙어 합환수(合歡樹), 부부의 금슬을 상징한다. 소가 잘 먹는다고 소 쌀나무, 귀신처럼 잔다고 자귀나무라 한다.

연분홍 꽃은 6∼7월에 피고 껍질은 신경쇠약·불면증에 쓰기도 한다.

그러나 꽃 색깔이 흰빛을 띄고 족제비싸리 비슷한 왕자귀나무는 유달산 일부에 자라는 멸종위기식물이니 모처럼 귀한 분을 만난 셈이다. 식물도감에 이렇게 시작된다.

콩과식물로 “잎은 우수(偶數)2회 우상복엽(羽狀複葉)으로 소엽(小葉)은 대생(對生)…….” 왜 어렵냐고 할지 모르지만 풀어 쓰면 이렇다.

“잎은 짝수 2회 깃 모양, 여러 개 달리는 잎으로 작은 잎은 마주난다.” 알량한 지식층(知識層)을 위한 서술방식이 읽는 사람을 얼마나 고민하게 만들었던가?

우리 조상들은 식물 이름 하나라도 어렵게 짓지 않았다. 냄새, 맛, 색깔 등 오감을 총동원하여 옛날부터 불러온 것을 함부로 버리지 않고 이름 붙였으니, 뿌리에서 노루오줌 냄새 난다고 노루오줌, 며느리 볼일 보고 닦으라고 며느리 밑씻개, 노란똥색 애기똥풀, 사위가 어깨에 지는 사위질빵, 생강냄새 나는 생강나무, 개 불알 닮은 개불알꽃……. 해학과 애환이 녹아있는 정겨운 식물 이름들이다.

자연과 사람의 관계, 사위와 장모간의 사랑, 고부갈등이 숨어있어 당시의 문화도 엿볼 수 있다. 양반들은 굳이 산에 갈 일이 없었으니 대다수 나무꾼, 아낙네, 머슴들이 불러준 것들이다.

망초, 개망초, 명아주, 자귀·아카시아·비자나무, 오래된 광나무, 은행나무와 헤어져 조각공원으로 내려오니 어느덧 오후 3시 넘었다.

빗주기·아왜·생달·푸조·천선과·다정큼·붓순나무 등 온갖 식물이 자라는 유달산은 그야말로 천연식물원이라 해도 손색 없겠다.

오후 3시 30분 도로변 달성공원 주차장, 목포시사단을 지나 15분쯤 내려가니 원점회귀 지점이다.

바다를 누르는 듯한 섬, 압해도(押海島) 선착장에서 유달산을 배경으로 찰칵, 길옆의 낙우송은 아예 물을 대놓고 키운다.

하기야 낙우송과인 메타세쿼이아, 낙우송, 삼나무, 금송은 습기를 좋아하지만 수생식물처럼 키우고 있으니, 땅 위로 불쑥 올라온 낙우송의 공기뿌리(氣根)가 신기할 따름이다.

메타세쿼이아와 낙우송 구분은 좀 애매한데 중국 공산당처럼 일사불란하게 잎이 마주나는 것에 비해 낙우송은 어긋난다.

미국인 같이 자유분방하다. 그래서 원산지는 각각 중국과 미국이다.

메타세쿼이아 가지는 위로, 낙우송은 옆으로 뻗고 기근이 발달돼 있다. 질펀한 습지에 공기가 잘 통하지 않아 숨 쉴 수 있도록 뿌리를 땅위로 내보낸 것이다. 새의 깃털 같은 잎이 떨어지는 소나무(落羽松)다.

“게가 도로를 가로질러 갔어요.”

갑자기 차장을 바라보던 일행이다.

“에이~ 거짓말.”

게가 어떻게 길로 올라올 수 있느냐는 것이다.

길 위에 올라 온 압해도 게. [사진=김재준 시인]
길 위에 올라 온 압해도 게. [사진=김재준 시인]

개펄 옆에 선 노향림 시비를 둘러보고 오는데, 정말 도로에 바닷게가 길 위로 슬금슬금 기어 다닌다.

길 위에 올라 온 압해도 게의 눈빛이 초롱초롱하다.

아마 지렁이 같은 먹이를 찾아 나왔을까? 잡식성 개펄 게는 바다 가까운 논두렁에 구멍을 뚫고 민물과 바닷물을 서로 오가며 산다. 일행들은 내일 올라갈 월출산을 위해 영암으로 달리는데 모두 힘 드는지 조용하다.

“여행은 호기심, 체력, 배려가 기본입니다. 제 말에 동의하는 분들만 박수.”

탐방로

● 전체 4.8킬로미터, 3시간 40분 정도

노적봉 주차장 → (10분)오포대 → (10분)유선각 → (25분)마당바위→ (10분)홍법대사·부동명왕 → (20분)일등봉(유달산 정상) → (1시간 20분*식물관찰 시간 포함)이등봉 → (20분)식물원·조각공원 → (15분)달성공원 → (10분)목포시사 → (5분)노적봉 주차장

* 바위길 느리게 걸은 10명의 평균 시간(기상·인원수·현지여건 등에 따라 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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