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로리냐 학교 준공식후 현지 참석자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는 일행들.
팔로리냐 학교 준공식후 현지 참석자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는 일행들.

[글=이춘희 대건28봉사단장, 사진=이수형]

7. 팔로리냐 학교 준공식을 하다(2020. 1. 21. 화)

비몽사몽간에 이수형이 문밖에서 다 모여 있으니 빨리 나오란다.

화들짝 놀라 짐 챙겨 나가보니 꼴찌는 아니지만 이미 식사 중이다.

손 여사가 준비한 계란 2개와 라면을 먹고 길을 나서니 06:30이다.

준공식 행사가 10:00로 예정되어 있으니 시간은 넉넉하다.

이제는 제법 익숙해진 길을 따라 다시 보트를 타고 나일강을 건너 지프 2대에 분승, 학교로 향한다.

김희수는 조수석에서 행인들을 사진 찍기에 바쁘다.

물 길어 오는 어린이, 아낙. 괜찮은 사진이 나올 것 같다.

학교현장에는 여전히 공사가 진행 중이고, 중앙에는 텐트가 쳐져있다.

의자도 준비되어 있다.

팔로리냐 학교 준공식후 기념촬영.
팔로리냐 학교 준공식후 기념촬영.

베터 월드 담당자들이 나와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교문 기둥에는 어제 지정한 곳에 어설프게나마 현판이 걸려있다.

교문 앞 어설프던 풀들은 태워버렸고, 마당도 조금은 고른 듯하다.

전체적으로 어제보다는 많이 정비되었다.

행사에 앞서 교장, 교무부장과 환담하는 시간을 가졌다.

교장은 나이 짐작은 잘 되지 않지만 대략 40대 초반 쯤 되려나 모르겠다.

조용한 말투에 기가 많이 죽어있다.

남수단에서 왔는데, 인근에 중고등학교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난민들은 학비 때문에 갈 수가 없어 2017년에 중고등학교를 시작했고, 앞 초등학교 교실을 빌려 수업해 왔다고 한다.

지금은 4학년은 졸업했고, 통상 재학생이 400여명 정도 되는데, 올해 건물이 들어서고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준다는 소문이 나서 올해는 600명 정도로 늘어날 것이라고 한다.

갑자기 걱정된다. 그러면 교실이 많이 모자랄 텐데.

학교장은 애로사항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내 귀에는 애절한 간청으로 들린다.

부모 없는 60여 명의 학생들이 연간 10만원의 수업료를 내지 못해 어려움이 많다는 점, 멀리서 오는 교사들과 학생들이 기숙사가 없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 수도가 없어 걱정이라는 점.

팔로리냐 학교 준공식후 학교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는 일행들.
팔로리냐 학교 준공식후 학교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는 일행들.

정 목사가 답한다.

첫 번째, 두 번째 요청은 장담할 수 없다.

그러나 최선을 다해 보겠다.

세 번째 요청은 코이카 사업으로 하는 금년도 급수 사업에 포함시켜 해결해 주겠다.

정 목사는 사람들이 몰려오기 전에 미리 학교 사진을 찍고, 현판 제막식과 테이프 커팅까지 마쳐야 한다며 서두른다.

10시에 행사를 시작하고, 마치면 곧 바로 출발해야 하니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교문 현판을 제자리에 위치시키고 대표단과 교장 등 교직원, 학생, 주민 등이 모여 기념촬영을 하니 지난 3년의 역사가 떠올라 잠시 울컥하다.

돌아가며 한 사람씩 사진촬영을 한다.

역사의 한 장면을 남기고 싶은 것이다.

테이프 커팅을 위해 교문에 베터 월드를 대표한 정 목사, 학교장, 후원자 대표인 나, 대건고등학교를 대표한 김기동 선생 등 여러 명이 모였다.

역사의 현장을 봉사단원들에게 생생하게 전하고 싶다는 뜻에 김 선생은 커팅한 테이프 몇 조각을 챙긴다.

당초 봉사단은 준공기념으로 학생들에게 무엇을 선물할까 고민했었다.

그러나 수업료가 없어 중도에 학교를 그만두어야 하는 학생들, 돈이 없어 졸업을 하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가장 큰 선물은 장학금이라는 정 목사 말에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3색 필기구 하나씩 선물하기로 했다.

팔로리냐 학교 준공식후 현지 참석자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는 일행들.
팔로리냐 학교 준공식 모습.

대건고학생들도 모금한 돈으로는 장학금으로 지급하고 별도로 10개의 축구공과 학용품도 함께 선물하기로 했다.

후원자 대표로서 장학생 대표에게 장학증서를 교부하고, 기념품을 전달하니 어린 중학시절, 재미교포 안재홍 박사의 장학금을 받고 기뻤던 기억이 떠오른다.

김 선생은 대건고 학생들이 준비한 장학금과 축구공을 전달한다.

총 82명의 학생들에게 1년 치 학비에 해당하는 10만원씩의 장학금이 전달되었다.

부디 이 봉사금이 파롤리냐 학생들의 행복에 도움 되기를 빌어본다.

'아프리카 우간다 멀고 먼 파롤리냐

강 건너 황토길 이름하여 난민촌,

먼지 덮인 거리에 초록생기 사라지고

소녀들 눈망울에 절망만 가득하네.

태초의 인연 있어 작은 학교 세우니

희망의 씨앗 되어 부디 새벽 밝히기를.'

10:00, 본 행사가 시작되었지만 생각보다 빈자리가 많다.

방학 중이라 학생들도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주민들과 학생들이 모여 들더니 거의 자리가 가득 찬다.

대략 200여명 되려나?

팔로리냐 학교 준공식에 참석한 현지인들.
팔로리냐 학교 준공식에 참석한 현지인들.

사회자는 젊고 다소 몸집이 굵은 흑인 남성이다.

익숙한 솜씨로 행사를 시작한다.

학교장 인사, 학부모 인사, 학생대표 인사, 스쿨 메니저 인사에 이어 지역 전통춤 공연이 있다.

여성 여러 명이 줄지어 돌면서 발을 맞추어 춤을 춘다.

TV에서 본 적이 있는 듯한 춤이다.

곧 이어 베터 월드 대표로 정 목사가 인사말을 한다.

영어를 참 잘한다는 생각이 든다.

모습이 당당하고 힘 있다.

팔로리냐 학교 준공식후 현지 참석자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는 일행들.
팔로리냐 학교 준공식후 현지 참석자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는 일행들.

마지막으로 후원자 대표로 인사할 차례다.

회갑을 맞아 무엇인가 의미 있는 일을 하기 위해 학교를 건립하게 되었다는 것, 주민들의 헌신으로 사업을 완수하게 되어 고맙다는 것, 대건고등학교와 좋은 관계를 이어갔으면 좋겠다는 것, 열심히 공부하여 지역사회와 세계를 위하여 큰 인물이 되라는 취지의 이야기를 했다.

물론 영어로. 가끔 박수가 나온 것을 보면 알아듣지 못할 발음은 아니었나 보다.

행사를 마치고 서둘러 학교를 떠난다.

오늘 아주마니에서 가방을 챙겨 싣고, 글루를 거쳐 수도 캄팔라(Kampala) 근처까지 가야하기 때문이다. 

먼 일정이기도 하지만, 행사 후 주민들 점심 식사가 있는데 자칫 식사를 함께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 위생문제가 있을 수 있어 서둘러 떠나는 것은 아닐까 지레 짐작해 본다.

우간다는 한반도보다 조금 큰 면적에 인구는 4500만 정도라고 한다.

캄팔라가 우간다 남단에 있고, 팔로리냐가 최북단에 있으니 결국 2번 종단하는 셈이다.

팔로리냐 학교 준공식후 현지를 떠나기전 학생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팔로리냐 학교 준공식후 현지를 떠나기전 학생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제 떠나면 언제 다시 올 수 있을까. 다시 한 번 뒤돌아보며 길을 떠난다.

아주마니 호텔에서 짐을 싣고 글루로 출발하려니 여종업원 두 명이 김희수에게 보이프랜드(Boy friend)라고 하면서 각별한 정을 보인다.

그냥 남으라고들 하지만 김희수는 굳이 차에 오른다.

이제는 제법 익숙해진 글루 시내 서양식 식당에서 예약된 점심을 한다.

군데군데 백인들 모습이 보인다.

외국인들이 많이 오는 곳이라고 한다.

TV나 영화를 보면 백인들이 아프리카에서 모여 식사하는 장면들이 나오던데, 바로 이런 곳이겠지. 커피가 유별나게 맛있다.

보이차는 좋아하지만 사실 커피는 그다지 즐기지 않는다.

아니 몇 해 전만 해도 아예 마시지도 않았다.

반면 집사람은 커피를 즐길 뿐, 보이차는 아예 거들떠보지 않았다.

결국 타협하여 소위 ‘돈내기’로 함께 마셔주기로 했다.

그렇게 몇 년, 가끔 커피를 마시게 되었지만 흉내뿐이다.

그런데 우간다 커피가 맛있다기에 여행 중 가끔 마셔보니 과연 맛있다.

팔로리냐 학교 학생들.
팔로리냐 학교 학생들.

분위기 탓인가.

글루에서 캄팔라로 가는 길은 포장도로이고, 파진 곳도 없다.

가장 도로다운 길이다.

수도로 다가갈수록 제법 숲도 보이고, 인공 조림한 소나무도 보인다.

이 나라도 나무를 심을 생각을 하긴 하는 모양이다.

편도 1차선, 통행량 많은 노변으로 행인들이 많다.

위험해 보인다.

UNRA라고 기재된 흰색 시멘트 팻말이 도로변에 일정한 간격으로 서 있다.

우리의 접도구역 표시임이 거의 분명해서 무엇인지 물어보지는 않았다.

부분을 전부로 일반화시킬 수는 없지만, 가까이서 본 주민 몇 사람은 공통적으로 눈동자가 혼탁하고 핏줄이 서 있는 듯하다.

원래 그런지, 병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영양실조인지 모르겠다.

전봇대는 둥글다.

어느 나라던가 뱀이 기어 올라가 합선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사각으로 만든 전봇대도 있던데, 우간다는 뱀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나 보다.

군데군데 흙더미 같은 개미집이 보인다.

*165#라고 표기된 노란 간판이 곳곳에 있다.

무슨 체인점인가 했더니 온라인 송금을 대신해 주는 업체 광고란다.

금융기관이 일반화되지 못하다 보니 수수료를 받고 온라인 송금을 해 준단다.

우간다가 온라인 송금이 일찍 발전한 나라 중 하나라고 하니 과연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인가 보다.

우간다를 남북으로 종단하고, 다시 남으로 내려오는 길.

대도시부터 난민촌까지 온갖 것을 다 보았으니 차창 밖 풍경이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다.

환호성도 사라지고, 카메라 셔터 누르는 소리도 잦아진다.

고요가 차안을 지배하는 즈음, 정 목사는 우간다 지가가 엄청 저렴했었는데, 최근 경제성장률이 6%대로 높아지면서 부동산 가격도 많이 올랐다고 한다.

문득 대건 파롤리냐 중고등학교 부지가 떠오른다.

6에이커(약 7000평)의 부지를 지역의 어느 문중이 희사했다고 하던데 그 가치는 얼마나 될까. 인사 나누었던 그 문중 노인의 작은 몸집이 생각난다.

우간다의 휘발유 값은 리터당 3,900∽4,000실링 정도인데 지방으로 갈수록 비싸다.

1실링은 우리 돈의 1/3 수준이니 리터당 1,300원 정도다.

우리 휘발유 가격이 리터당 1,500원 수준임을 감안하면 엄청나게 비싸다.

그러다 보니 휘발유 도둑이 많단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크고 동그란 나무가 이국적이다.

망고 나무인데 야생 망고는 비교적 덜 달고 맛이 없단다.

우리가 먹는 달고 맛있는 망고는 개량종이란다.

영국 식민지에서 독립한 국가답게 온통 영어 간판이다.

공용어도 영어인 것 같다.

지저분한 거리이지만 그 위로 석양은 붉게 빛나고 있다.

못 먹어서인지, 체형이 원래 그러한지 주민들은 하나같이 늘씬하다.

Ziwa Rhinos Santuary 안에 자리 잡은 아무카 롯지(Amuka Lodge)는 18:00까지 정문을 통과해야 한다.

그 시간을 넘기면 사전 예약된 경우 21:00까지 입장은 되지만 추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21:00가 넘으면 입장 불가하다.

쉬지 않고 달려왔지만 20:00가 되어 정문에 도착하니 입장은 가능하나 추가요금을 내야 한다.

이곳에 투숙키로 한 것은 코뿔소를 구경하기 위함이다.

어두운 길, 별빛 가득한 도로를 따라 한참 들어가니 숙소가 나타난다.

이담과 함께 배정된 방은 시건장치가 안 된다.

옮긴 방은 2층 침대로 침대가 4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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