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록벙 꽃잎낙화된 리 트엉 끼엣 거리. [사진=석태문 선임연구위원]
화록벙 꽃잎이 떨어져 있는 리 트엉 끼엣 거리. [사진=석태문 선임연구위원]

【뉴스퀘스트=석태문 대구경북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다낭시 리 트엉 끼엣 16번지 1207호. 필자가 1년간 살았던 베트남 집 주소이다.

다낭살이를 한 뒤 한참을 지난 후에 리 트엉 끼엣(Ly Thuong Kiet)은 리(Ly) 왕조의 장군이란 것을 알았다. 

중국의 송 왕조는 베트남 리 왕조의 강성함을 두려워하여 침략 계획을 세웠다. 이를 사전에 파악한 리 뜨엉 끼엣 장군은 1075년 10만 대군을 이끌고 송나라를 선제공격하여 승리했다. 

송의 보복 전쟁이 시작되자, 총사령관이 된 리 트엉 끼엣 장군은 전함 400여척으로 홍 강에서 송군의 도하를 저지하였다.

한 달 여의 대치로 송 군의 전의가 상실되자, 장군은 기습공격을 감행하여 송 군에 대 타격을 입혔다. 이후 장군은 남쪽 참파국의 도발을 격퇴하고, 공격하여 베트남 남진의 기틀을 다진 영웅이 되었다. 

된 리 트엉 끼엣 장군을 기리기 위해 베트남의 여러 지역 도로명에 그의 이름이 붙여졌을 것이다. 다낭시의 대부분의 거리명도 다 영웅의 이름이라고 한다. 베트남 사람들의 영웅 사랑이 남다르다. 

베트남 역사에서 가장 큰 영웅은 누구일까? 도로나 거리명을 영웅에게 헌정하는 베트남의 문화로 보면 더 큰 거리, 더 큰 도로, 더 광장에 붙여진 이름이 더 큰 영웅일 것이다.

1975년 통일 베트남을 이룬 이후 베트남공화국(월남)의 수도였던 사이공 시는 호치민 시로 바뀌었다. 베트남민주공화국을 건국하였고, 통일까지 이룬 민족 영웅 호치민에게 베트남 사람들은 가장 큰 도시인 사이공을 통째로 헌정한 것이다. 

베트남은 영웅을 살리는 문화를 가졌다. 반면에 우리는 영웅을 죽이는 문화를 가졌던 것은 아닐까. 그 진실을 알기 어려우나, ‘모난 돌이 정 맞는다.’란 속담을 보면 괜히 더 씁쓸해 진다. 

참족의 유물(다낭 참박물관). [사진=석태문 선임연구위원]
참족의 유물(다낭 참박물관). [사진=석태문 선임연구위원]

신화가 베트남어를 은유성 깊은 문자로 만들어

베트남은 신화의 나라이다.

그 신화는 중국의 신농씨와 닿아 있어 뿌리도 깊다.

신농씨의 후손들인 락 롱 꿘(Lac Long Quan)과 아우 꺼(Au Co)가 결혼하여 거대한 알, 하나를 낳았다. 알 속에서 100명이 아들이 태어났다.

왕인 락 롱 꿘은 남쪽 물의 종족을, 왕후 아우 꺼는 북쪽 산의 종족을 대표하였다. 왕의 제안으로 그(락 롱 꿘)는 아들 50명을 데리고 바다로 갔고, 아우 꺼는 아들 50명을 데리고 산으로 갔다. 

산으로 간 아들 50명 중에서 가장 강한 자가 왕으로 봉해졌다. 왕을 훙 브엉(Hung Vuong)이라 불렀고, 나라 이름은 반랑(Van Lang)이었다.

반랑국은 베트남 최초의 나라이다. 반랑국은 기원전 3세기 후반 멸망할 때 까지 모두 여덟 명의 왕이 지배했다. 그 왕들을 모두 훙 브엉이라 불렀다.

우리 역사서(?) 환단고기에 나오는 고조선 2098년의 통치 기간에 임금의 호칭인 단군 47명이 실존하였다는 것과 같다. 지금도 베트남 사람들은 훙 브엉 왕들을 기념하여 매년 음력 3월 10일을 국경일로 기념한다.       
개국 신화의 산과 바다 종족 중에서 현대 베트남의 기원은 산의 종족이란 점이 신기하다. 지금 산지, 구릉지에서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소수민족들이다.

지배세력인 비엣(Viet= Kinh)족은 비옥한 평야지와 해안가에 살고 있다. 역사의 어느 지점에서 지배세력이 산림, 구릉지에서 벗어나 살기 좋은 평야와 해변으로 이동하였을지도 모른다. 

베트남 문자에는 6개의 성조가 있다. 베트남어(이하 베어)를 배우겠다고 호기롭게 도전한 사람들이 목표를 잘 이루지 못하는 주된 이유는 높은 성조의 벽 때문이다. 단어 하나에 성조가 붙은 방식에 따라 여섯 개의 다른 단어가 탄생된다. 

베어 배우기에 돌입했던 지난해 3월, 베어는 성조 때문에 알파벳의 경제성이 높은 문자라고 생각했다. 단어 하나에 5개 알파벳을 넘는 경우가 많지 않다. 성조만 붙이면 여섯 개의 다른 단어를 만들 수 있으니, 알파벳이 긴 단어가 필요치 않았다. 

더구나 베어는 모든 단어에 세상에 단 하나 밖에 없는 소리를 담는다. 발음기호를 알고, 알파벳에 붙은 성조에 맞게 정확히 소리만 밸 수 있으면 ‘유일한 단어=유일한 소리’가 나오는 ‘유일한 문자’가 아닐까? 놀랄만한 베어의 과학성이라 말하고 싶다. 

베어를 배우면서 베어가 신화와 섞여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신화란 무엇인가’란 질문에 우리는 어떻게 답할 수 있을까? 많은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나는 ‘존재하지 않은 것에 대한 동경’, ‘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한 은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신화의 핵심이 은어성에 있고, 베어에서 그 은유성을 어렵잖게 찾을 수 있다면, 베트남의 신화와 문자는 서로 닮았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태양, 해는 베어로 ‘맛 쩌이’(mat troi)이다. ‘쩌이’는 하늘, ‘맛’은 얼굴이다. 그러니, 베트남 사람들은 해를 ‘하늘의 얼굴’로 부르자고 했을 것이다. 

달은 베어로 ‘맛 짱’(mat trang)이다. ‘짱’은 ‘달빛’이라고 하는데 달밤에 비치는 빛, ‘밤빛’이다.

그러니 베트남 사람들은 달을 보고 ‘밤빛에 바치는 얼굴’을 떠올렸던 것이다. 당나라 시인 이태백은 달을 따려다 물에 빠졌다.

베트남 사람들은 달을 아예 ‘밤빛에 비치는 얼굴’이라 노래 불렀다. 시인은 달을 연인으로 생각했지만, 베트남 사람들은 달을 아예 시어(詩語)로 만들었다.  

베어 단어 하나를 더 찾았다. ‘푸르다’는 ‘싸인 자 쩌이’(xanh ja troi)이다. ‘싸인 자 쩌이’의 구성을 보면 참 신기하게 만들어졌다는 감탄이 나온다. ‘쩌이’는 앞에서 하늘임을 알았고, ‘자’는 피부, 가죽이란 의미를 가진다. 핵심 단어인 ‘싸인’은 ‘익지 않은’이란 뜻이다. 

세 단어를 종합하면 ‘하늘 피부가 익지 않은’ 색깔이 ‘푸르다’가 된다.

하늘을 사람으로 의인화해서 피부라고 생각하고, 여기에 그 하늘 피부가 익지 않은, 혹은 소년처럼 순수한 그 색깔을 푸르다고 말한 것이다.

시어를 문자에 담은 베트남 사람들의 높은 은유성에 경탄할 따름이다.

신화는 오래 전의 일이지만 베어는 17세기 중반 프랑스 선교사(포르투갈 선교사란 일설도 있음)가 로마 알파벳을 사용하여 만든 문자이다.

베어는 1910년 프랑스에 의해 공식적인 서면 언어가 되었다. 필자는 베트남 신화의 심성이 후세의 문자 속에 들어갔다고 생각한다.

섣부른 생각일지 모르지만, 세상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신화가 베어를 은유성 깊은 문자로 만들어낸 비결은 아닐까? (다음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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