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민족의 나라, 용광로 같은 융합의 지혜가 필요

뗏 명절, 꽃밭이 된 베트남 다낭의 한강변. [사진=석태문 선임연구위원]
뗏 명절, 꽃밭이 된 베트남 다낭의 한강변. [사진=석태문 선임연구위원]

【뉴스퀘스트=석태문 대구경북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베트남은 54개 다민족이 함께 사는 나라이다.

해안가, 평야지, 산간지 등 사람들이 사는 지역에 따라 민족도 다르고, 다른 역사를 만들어왔다. 남북의 길이가 1700km나 되는 긴 국토를 가진 나라이니 충분히 다르고도 남을 것이다.

하지만, 수천 년 긴 역사에 비추어 베트남이 오늘의 국경을 갖춘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현재 국경을 갖춘 베트남 최초의 통일왕국인 응우엔 왕조는 1802년 건국하였다. 이때를 기점으로 삼으면 현재의 베트남은 겨우 218년의 역사에 불과하다.

베트남 호치민의 기업체와 오랫동안 협력 관계를 유지하며 사업을 하고 있는 친구의 말이 생각난다.

베트남은 한 나라지만, 사실 한 나라가 아니라고. 북쪽과 남쪽 사람들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민족이 다르고, 사는 지역도 다르다.

얼굴 생김도, 생활 습관도, 생각하는 방식도 다르니, 한 나라라고 생각하고 덤비면 비즈니스를 그르치기 십상이라 했다.

북쪽 사람이 이성적이라면, 남쪽은 감성적이다. 남쪽 사람이 오늘을 즐기는 스타일이라면 북쪽은 내일을 준비한다고 했다.

부자도, 교육 수준도 북쪽이 남쪽보다 더 높다. 우리 입장에서 들으면 지역감정을 조장한다고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베트남과 이런저런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대개 비슷한 판단들이었다.

한국의 베이비부머는 근검절약해서 집 한 채 장만하는 것이 소원이었다. 밀레니얼 세대는 소확행을 추구한다.

단일민족 국가인 우리는 세대차이가 주효하지만, 다민족 국가인 베트남은 동시대에 지역성이란 차이를 보인다.

세대 차이와 지역성 차이는 나름의 장단점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같은 시대를 살면서 지역에 따른 사람들 심성, 혹은 특성의 차이가 있다는 것은 그 사회가 더욱 역동성을 띄는 반증이 될지도 모른다.

1억 인구 돌파를 얼마 남겨 두지 않은 베트남에서 가장 큰 민족은 비엣(Viet), 혹은 낀(Kinh)족으로 전체 인구의 88%를 점한다.

나머지 53개 민족은 소수민족이다. 이 중에서 인구수 50만 이상인 민족은 따이(Tay), 타이(Thai), 흐몽(H’Mong), 므엉(Muong), 화(Hoa), 자오(Dao), 눙(Nung)족 등 7개 민족에 불과하다.

나머지 소수민족은 그야말로 인구수가 얼마 되지 않는다. 소수민족 거주지역은 주로 산간지역이다. 베트남 전쟁 때는 이들 거주지역의 전략적 중요성이 높아서 중앙정부의 지원도 많이 받았고, 정치적 영향력도 컸었다.

그러나 통일 이후, 특히 도이머이 정책 추진 이후 소수민족 정책이 자립을 유도하는 쪽으로 바뀌면서 소수민족의 앞날이 그렇게 밝지는 않다.

베트남에는 거주 지역별로 사는 민족이 다르고, 주된 산업도, 살아가는 방식도 큰 차이가 있다. 문제는 민족별 특성의 차이가 아니다. 거주지역별 교육 기회와 사회간접자본의 차이가 지역과 민족 차이를 더 가중시킨다는 사실이다.

54개 다민족의 장점이 제각기 발휘되어야 한다. 쓰레기 같은 낡은 쇳덩이들을 녹여 강한 철판으로 만들어내는 용광로의 지혜가 지금 베트남에 필요한 시점이다.

중부 훼(Hue)현, 최초의 통일국가 응우엔 왕조의 왕궁. [사진=석태문 선임연구위원]
중부 훼(Hue)현, 최초의 통일국가 응우엔 왕조의 왕궁. [사진=석태문 선임연구위원]

베트남 최대 명절 뗏(Tet, 설날)의 풍경과 문화

금년도 베트남의 뗏 연휴는 1월 23일부터 29일까지였다. 정부의 공식 연휴 기간은 1주일 이지만, 민간에서는 열흘 이상을 쉰다.

뗏 이외의 국경일은 신정(1.1), 훙 브엉 왕들의 기념일(음력3.10), 베트남전 승전일(4.30), 노동절(5.1), 독립기념일(9.2) 뿐이다. 뗏을 빼면 남은 국경일은 다섯 개 뿐이니, 베트남 사람들에게 뗏이 얼마나 큰 국경일인지 알 수 있다.

뗏 연휴를 마치고 1월 30일 출근했다. 쿽(Quoc) 경제팀장이 봉투 하나를 주었다. 뭐냐고 물으니 행운의 돈(lucky money)이라 했다. 우리가 설날 아이들에게 세뱃돈을 주듯, 베트남에서는 절은 하지 않지만, 행운의 돈을 예쁜 봉투에 담아 준다.

필자는 이날 원장과 부원장에게도 행운의 돈을 받았다. 기분에 팀원들에게 차 한 잔 사겠다고 했다. 행운의 돈 보다 커피 값이 더 들었지만, 베트남 사람들에게 뗏은 나눔의 시간, 상호 존중의 시간이었다.

뗏이 되면 베트남 사람들의 꽃 사랑이 절정에 달한다. 베트남에는 꽃도 많이 생산하고, 소비도 엄청나게 많다. 1인당 국민소득 2500달러 수준의 나라에서 이렇게 많은 꽃을 소비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뗏을 앞두면 거의 모든 가게 입구에는 금귤이나 복숭아꽃 화분을 설치한다. 큰 가게는 좌우 양쪽에 놓고, 작은 가게는 하나만 놓기도 한다.

가격을 물으니, 보통 100만동이고, 약간 크기가 있는 화분은 200만동을 넘는다. 하나씩만 갖다 놓아도 우리 돈으로 5~10만원이다. 우리나라 소득 수준으로 보면, 꽃 화분 하나 가격이 거의 50~100만원으로 비싸다.

꽃 화분을 장만하기 어려운 가게는 꽃 그림을 입구 대형 유리문에 그려 넣는다. 붉은색의 복숭아꽃 나무를 그려 넣은 곳이 많았다.

관광도시인 다낭 시는 한강변과 미케 해변, 그리고 주요 도로변을 꽃 천지로 만들었다. 한강변에는 뗏 연휴가 시작되기 거의 20일전부터 꽃단장 작업에 들어갔다. 뗏이 오기 몇 일전 다낭의 한강변은 완전히 꽃 천지로 변했다.

뗏 연휴에 사람들은 꽃을 사고, 꽃들로 장식된 거리에서 사진을 찍는다. 베트남은 꽃 생산량이 많아서 평시에는 꽃을 수출한다.

하지만, 뗏이 되면 국내 생산으론 부족하여 꽃을 수입한다. 베트남 사람들의 꽃 사랑이 참으로 대단하다.

뗏에는 베트남 문화의 정수들이 담겨 있다. 일 년에 한번, 민족의 대 이동이 시작되고, 가족친지들을 만나고, 음식을 나누고, 새 사업을 시작하고, 사람들은 모두 행운을 기원한다. 그래서 뗏을 나눔의 절기, 희망의 시간이 시작된다고 말한다.

베트남 사람들이 사업을 새로 시작할 때, 혹은 직장을 새로 찾을 때도 뗏을 지낸 이후의 일이다. 뗏을 잘 보내면 행운이 있다고 믿는다.

가족, 친지, 낯선 사람도 찾아가 인사하는 것을 예의라고 여긴다. 베트남 사람들은 뗏 첫날에는 아버지에게, 둘째 날에는 어머니에게, 셋째 날에는 선생님에게 인사하는 것을 도리라고 배운다.

새해 인사말은 ‘축 먼 남 머이’(Chuc Mung Nam Moi)이다. ‘happy new year’를 번역한 서양식 인사말인데 최근에 많이 사용한다.

오히려 베트남 전통의 새해 인사말은 ‘꿍 축 딴 수완’(Cung Chuc Tan Xuan)이다. ‘좋은 봄을 보내라’는 뜻이다.

뗏은 겨울이 지나고, 봄을 안내하는 계절이다. 만물이 생동하는 봄에 새 일을 기획하고, 시작하라는 마음을 담은 새해인사로는 ‘꿍 축 딴 수완’이 더 좋다.

뗏의 대표 음식은 바잉쩡(Banh Chung)이란 떡이다. 우리가 설날에 떡국을 먹듯, 베트남 사람들은 바잉쩡을 즐긴다.

녹두가루, 찹쌀, 돼지고기가 주 재료이다. 녹두와 찹쌀을 찐 것을 바나나 잎으로 싸거나, 떡 속에 삶은 돼지고기를 넣어 싼 것도 있다.

뗏에는 악령을 물리치고, 행운을 가져다주는 축제를 연다. 밝은 축제 의상을 입고 거리 행진을 하거나, 사자 춤 놀이가 여기저기서 벌어진다. 사자 춤 놀이는 가게를 돌아다니며 행해지는데, 마치 우리의 음력 대보름날 지신밟기와 비슷하게 느껴졌다.

불꽃놀이도 뗏의 중요한 문화행사지만, 요즘은 많이 자제한다.

뗏 전날, 필자가 사는 아파트에서 좀 떨어진 주택단지에서 산발적인 폭죽놀이가 있었다. 뗏 전날 너무 심한 불꽃놀이로 화재가 빈발하면서 당국이 금지조치를 내렸다.

전통문화도 이러니, 무엇이던 과하면 탈이 나는 모양이다. (다음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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