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무형문화재 제 29호 서도소리 예능보유자 김정연. 그는 평안도 민요 ‘긴아리’를 잘 불렀다.
국가무형문화재 제 29호 서도소리 예능보유자 김정연. 그는 평안도 민요 ‘긴아리’를 잘 불렀다.

【뉴스퀘스트=하응백 문화에디터】 평안도 민요 중에 <긴아리>라는 것이 있다.

‘아리’는 아리랑과 거의 어원이 같은 것으로 보여 지니, 평안도 아리랑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평안도 용강 강서 지방의 민요로서 일명 <용강 긴아리>라고도 한다.

일종의 푸념과도 같으며 이 고장의 노동요라고도 할 수 있는 이 노래는 김맬 때 혹은 조개를 캘 때 불렀던 노래로 여겨진다.

목청을 뽑아 부르면 우아하면서도 매력적이다.

노랫말은 민요가 대개 그렇듯이 지은이가 알려져 있지 않고 상황에 따라서 보태여 지기도 하고 새롭게 창작되기도 한다.

그런데 알려져 있는 일부 노랫말은 기가 막히게 시적(詩的)이다. 그 중 몇몇 노랫말을 음미해 보자.

뒷문 밖에야 시라리 타레

바람만 불어도 날 속이누나

‘시라리’는 ‘시래기’의 평안도 방언이다.

뒷문 밖에 시래기를 말리려고 메달아 놓은 것이 ‘시라리 타레’이다. 그런데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이것이 사각사각 거린다.

그 소리는 마치 님 오시는 소리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니 ‘나를 속이누나’라고 표현한 것이다. 님을 기다리는 애절한 마음이 절묘하게 표현되어 있다.

김소월의 유명한 시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살자” 라는 구절과 비교해보면 이 <긴아리>가 김소월 시의 원본임을 단번에 알 수 있다. 김소월의 고향이 평안도 영변이니, 아마도 김소월도 이 소리를 듣고 자랐을 것이다.

물 위에 계시기 물 아래 살지

할레도 두 번씩 들셀물 있구나

‘할레도’는 ‘하루에도’의 평안도 방언, ‘들셀물’은 들물(밀물)과 썰물을 말한다.

이 노랫말에서 님은 물 위에 있고 (나는) 물 아래에 있다. 그러니 만날 수 없다. 만날 수 없기에 하루에도 두 번 씩 밀물과 썰물이 교차한다.

아득한 그리움이고 영겁의 사랑이다. 한 편의 현대시로도 손색이 없는 아니 오히려 어떤 현대시도 구사하기 힘든 압축미가 있다.

비야 뭐 올래면 소낙비 좋지

실실이 늘여서 내 속을 왜 얽나

아마도 가는 비가 실실이 오는 모양이다.

확 소나기가 오면 차라리 시원할텐데, 왜 가는 비가 청승맞게도 오나. 그리니 심사가 뒤집어 지지. 못다 한 사랑을 해 본 사람은 이 노랫말을 지은 사람의 마음을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김소월의 시 <왕십리> “비가 온다 오누나/오는 비는 올지라도 한 닷새 왔으면 좋지”의 구절과 내용적으로 상통한다.

내 심어 놨는데 나팔꽃 심사(心思)

담 넘어 남의 집 뜰 안에 피네

(내가) 나팔꽃을 우리 집 뜰에 심었다. 그런데 이놈의 나팔꽃이 담을 넘어 이웃집 뜰 안에 핀다. 이 무슨 경우인가. 해학적이면서 비틀린 심사를 압축적으로고 표현하고 있다.

없는 정(情) 있는 척 웃어 달라네

울지도 못하는 이 맘인 것을

이 노랫말은 해설이 필요 없다. 들으면 무슨 말인지 알겠는데, 해설을 하려니 차라리 사족(蛇足)같이 느껴진다. 이런 가사는 너무 절대적이어서 그냥 외어버리면 언젠가는 자신의 마음을 달랠 수 있다.

꽃이란 혼자도 떨어지는 걸

구태여 보시락 비가 웬말가

이 노랫말도 재미있다.

꽃이란 혼자서도 언젠가는 떨어진다.

보시락 비는 왜 또 내려 (나를) 울리나. 참 절절하다. 우리 민요 속에 이런 언어의 보석들이 숨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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