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마다 여성 특유의 직관력으로 돌파...금강산 관광 언제든 재개 준비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과 현대그룹 사옥. [사진합성=뉴스퀘스트, 자료사진=현대그룹, 연합뉴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과 현대그룹 사옥. [사진합성=뉴스퀘스트, 자료사진=현대그룹, 연합뉴스]

【뉴스퀘스트=김선태 기자】 메리 케이 애쉬는 오늘날 미국인들로부터 높은 존경을 받는 몇 안 되는 여성 사업가 중 한 사람이다.

남편과 결별하고 아이 셋 키우느라 25년 동안 외판사원으로 '일벌처럼' 일하던 애쉬는 1963년 단돈 5000달러로 메리 케이 코스매틱스라는 화장품 회사를 만들어 일약 글로벌 기업으로 키워냈다. 

애쉬가 이 회사의 상담사 세미나에 참여하기 위해 한 호텔 복도를 걸을 때였다.

멀찌감치 두 여성이 낮은 목소리로 대화하고 있었는데 이를 보던 그녀가 달려가서 대뜸 말했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제가 뭘 좀 도와 드릴까요?"

세미나에는 이름표를 달도록 했는데, 이들은 그걸 잃어버린 것이다.

애쉬는 즉석에서 문제를 해결해주고 계속 걸어갔다.

지켜보던 남자 사원이 말했다.

"정말 대단하세요. 그분들에게 도움이 필요하다는 걸 어떻게 아셨죠? 저희는 그냥 지나쳤는데…"

애쉬는 당시를 회상하면서 "여성들은 사람들이 보내는 미묘한 신호에도 매우 민감하게 반응해서 남성들이 무심코 지나쳐 버리는 것들도 찾아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것이 곧 직관력이다"라며 "이는 하느님이 여성에게 준 특별한 재능 가운데 하나다"라고 강조한다.('열정은 기적을 낳는다'=매리 케이 애시 저, 정미홍 역, 나무와 숲, 191-194쪽)

직관력을 지닌 현명한 사람은 이유 있는 뚝심을 발휘하는 반면, 그렇지 못한 평범한 사람은 이유 없이 고집을 피우게 마련이다.

우리는 그 사례를 아래에서 보게 될 것이다.

◇ 고 정주영 명예회장, 첫눈에 '며느리 낙점'

한국 재계에서 애쉬처럼 거의 우연히 경영 일선에 뛰어들어 타고난 직관력으로 위기를 헤쳐나간 여성 경영자로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을 꼽을 수 있다.

현정은 회장은 어린 시절 개방적인 가족 분위기에서 총명한 아이로 자랐다.

부친 현영원은 한국은행 도쿄지점 계장으로 일하다 딸이 열 살이던 1964년 신한해운을 설립했는데 딸과 아내의 이야기를 경청해 가족 분위기가 늘 화기애애했다.

"딸만 있는 집에서 자란 현 회장은 어려서부터 남녀차별 같은 것은 전혀 모르고 자랐다. 무엇보다도 아버지는 무슨 일을 결정할 때 반드시 어머니의 의견을 미리 물었다"('이기지 못할 도전은 없다'=임희정 저, 메디치 간, 20쪽)

이런 가정환경에서 정은은 경기여중과 경기여고를 졸업하고 이화여자대학교 사회학과에 진학한다.

그녀가 대학 4학년이던 1975년 여름 아버지와 함께 여행 삼아 울산에 내려갔다.

현대조선이 '알디어호'라는 23만톤짜리 대형유조선을 건조해 전국을 떠들석하게 했는데 그 명명식에 부친이 초청을 받은 것이다.

당시를 현 회장은 이렇게 기억한다.

"배에 도착하자 한 어른이 직접 가방을 받아주며 안내하기에 그냥 회사 관계자인 줄만 알았다. 그런데 저녁 리셉션에서 그 어른이 정주영 회장이란 소개를 받고 깜짝 놀랐다"('이기지 못할 도전은 없다')

한 영화의 대사처럼 "그게 다 부친에게 계획이 있어서였다"는 것은 나중에서야 알았다.

어쨌든 정주영 회장은 이 젊고 재기발랄한 아이를 보자마자 맘에 들어 했고 곧바로 아들 몽헌에게 그녀와 연애할 것을 지시했다.

몽헌은 데이트를 하고 나면 아버지에게 매번 경과를 보고했는데, 정 회장은 한 술 더 떠 "오늘은 청혼했느냐"고 다그쳐 물었다.

이렇게 해서 두 사람은 교제 1년 만인 1976년 7월 혼례를 올린다.

당시 몽헌은 28세, 정은은 21세 학생 신분이었다. 

그녀는 결혼 후 이대 대학원에 진학한 데 이어 미국 페어레이디킨슨대학교 대학원에서 인성개발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런데 막상 결혼하고 보니 그녀에게 시댁은 낯설어도 너무나 낯선 세계였다.

"처음 시댁에 들어갔을 때 자신이 자란 가정환경과 너무 달라서 당황했다. 밖에서 일어난 일을 집에서는 전혀 말하지 않는 것을 비롯해서 남자들 위주의 사고방식에 적응하느라 한참 애를 먹었을 것이다"('이기지 못할 도전은 없다')

훗날 그녀가 시삼촌 나아가 시동생과 예기치 않은 경영권 분쟁에 휩싸이게 된 데는 현대가의 이런 가풍이 크게 작용했음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이처럼 학업과 가정생활을 중시하며 살아가던 그녀는 2003년 떠밀리 듯 현대그룹 경영의 전면에 나서게 된다.

남편 정몽헌 회장이 "김대중 정권의 남북정상회담 성사를 위해 4억달러를 북한에 지원했다"는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다 8월 4일 타계했기 때문이다. 

그해 10월 현정은은 그룹 회장에 취임하게 되었는데 그 과정은 순조롭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9월 30일 오후 청와대에서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19기 현정은 서울 부의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9월 30일 오후 청와대에서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19기 현정은 서울 부의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직관력과 뚝심으로 거듭 경영권 방어

남편 사망 당시 정주영 회장의 동생이자 그룹 지분 일부를 가지고 있던 시삼촌 정상영 KCC 회장이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 전인 2001년 정몽헌 회장이 기업 부채를 갚기 위해 정상영 회장에게서 290억원을 빌렸는데 이 때 담보로 장모 김문희 여사 명의로 된 현대엘리베이터 주식 70만주와 성북동 자택을 제공했다. 

그런데 2년 뒤 정몽헌 회장이 유명을 달리하면서 삼촌인 정상영 회장이 현대엘리베이터 주식을 발판 삼아 현대그룹 경영권을 노리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현대그룹 상속을 포기하라는 시삼촌의 집요한 요구 속에 현대가(家) 누구도 현 회장을 도우려 하지 않았다. 

자칫하면 알거지가 될 상황에 직면하면서 현 회장은 중간에 뜻을 꺾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현 회장은 "현대그룹을 인수하면 대북 사업을 전면 재검토한다"는 정상영 회장측 주장을 두고 볼 수가 없었다.

대북 경협은 시아버지인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유지이자 이를 이어받은 남편의 유언이기도 했다. 

그런 탓에 사장단 회의에서 KCC 측과 타협하자는 건의도 나왔지만 현 회장은 "그 문제는 제가 알아서 할 테니 더 이상 다른 얘기는 하지 마세요"라며 못을 박아 버렸다.

결국 현 회장이 현대그룹 국민기업화를 선언하면서 여론의 지지를 얻는데 성공했고, 여기에다 KCC가 지분 공시 의무를 어기는 악수를 두면서 승리는 현 회장에게 돌아갔다.

그룹이 잠시 안정을 찾아가는가 싶더니 그도 잠시, 2006년 4월 시동생인 정몽준 의원의 현대중공업이 현대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현대상선 지분을 대거 사들인다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현대중공업 측은 "현대상선에 대한 외국인의 적대적 인수합병 위협이 높아지고 있어 이를 방어하자는 취지"라면서 백기사를 자처하는 듯했다.

하지만 현 회장은 백방으로 연락을 취해도 정몽준 의원 측이 응하지 않는 것을 보고 그 반대임을 직감했다.

다시 한 번 정씨 가문과의 경영권 분쟁이 이어졌다.

치열한 지분 확보 경쟁이 벌어져 한때 현대그룹을 제외한 범 현대가의 지분이 현대그룹을 넘어설 정도까지 되었다. 

이에 현대그룹은 스왑거래 방식으로 현대상선 주식을 대거 확보하는 묘수를 발휘해 다시 한 번 경영권 방어에 성공했다.

이후 그녀에게 '현다르크', '오뚝이' 같은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정상영, 정몽준 두 기업인들이 경영으로 잔뼈가 굵은 인물들임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반대로 현 회장은 여성 특유의 직관력을 지니고 있었다.

두 시댁 남성들이 조바심 탓에 지분 확보에 몰두해 변수를 읽지 못할 것이라 보고, 예상 밖의 수를 던진 뒤 뚝심으로 이를 밀어붙여 승리를 쟁취한 것이다.

현 회장의 위기극복 능력을 본 임직원들이 업무에 집중하면서 현대그룹 매출은 2003년 5조원에서 2012년 12조원으로 10년 사이 2배 이상 늘었다.

2011년에는 파이낸셜타임스(FT)가 발표한 '세계 50대 여성기업인'에 올랐고, 2012년과 2015년 포브스(Forbes)가 선정한 '아시아 파워 여성기업인 50인'에 들었다.

2014년과 2015년 포춘(Fortune)이 선정한 '가장 영향력 있는 아시아태평양 지역 여성기업인 25인'에 2년 연속 포함되기도 했다.

다만 현대그룹의 외형은 지난날과 달리 크게 줄었다.

정주영 시대를 지나면서 현대그룹이 여러 독립그룹으로 나누어진 탓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결정적으로 그룹의 성장동력이던 남북 경협이 중단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경협과 관련해서 현정은 회장은 그룹의 핵심 경영자인 김윤규 부회장을 내보낸 데 이어, 북한 측의 비협조와 남북 관계 경색이라는 넘을 수 없는 벽에 부딪혀야 했다.

고 정몽헌 회장 추모식을 위해 지난 2018년 8월 3일 오전 방북한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강원 고성군 동해선남북출입사무소를 통해 입경해 차량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고 정몽헌 회장 추모식을 위해 지난 2018년 8월 3일 오전 방북한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강원 고성군 동해선남북출입사무소를 통해 입경해 차량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공정하지 않다면 일등공신도 필요 없다"

2005년 8월 19일 현대그룹은 이사회를 열고 "(현대아산을) 김윤규·윤만준 공동대표 체제에서 윤만준 단독 대표이사 사장체제로 재편한다"고 발표했다. 그 동안 대북사업을 총괄해 온 김윤규 부회장을 경영일선에서 물러나게 한 것이다. 

현대그룹 경영전략팀이 내부 감사를 통해 밝힌 바에 따르면 김윤규 부회장은 대북사업 추진 과정에서 10억원 이상의 공금을 유용했다.

북한측의 금강산 사업 회사인 '금강 총회사'에 지급한 공사비를 허위 기재하는 등으로 조성한 비자금이 8억원, 현대아산 협력업체를 통해 챙긴 비자금 1억2000여만원, 그밖에 법인카드와 회사 대여금을 유용한 내역이 확인됐다.

현대 측에 따르면 김윤규 부회장은 회장 공백이 생긴 2003년 8월 이후 본격적으로 비자금 조성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정몽헌 회장이 김 부회장에게 대북사업을 부탁하는 말을 남기기도 한 터라 아쉬움이 큰 대목이었다. 

현대그룹 정기감사 결과 김 부회장은 비자금 70만3000달러를 조성하면서 '금강산 만물상 도로포장 공사' 등에 지원된 남북협력기금 5억원도 가로챈 것으로 밝혀졌다. 

김윤규 부회장은 정주영 명예회장의 가신이자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이 핏줄처럼 믿었던 현대그룹의 핵심 인물이었다.

그는 고 정주영 전 명예회장을 보좌하면서 역사적인 1989년 소떼 방문을 뒷받침하고 현대아산 설립을 주도하는 등 현대그룹 대북사업의 기반을 닦았다.

1998년 1월 현대 남북경협사업단 단장을 맡았고, 2001년 잠시 물러나기도 했지만 2003년 8월 정몽헌 회장 사후 북한 김정일 위원장의 협력의사를 이끌어내면서 화려하게 재기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북한과 오간 공정하지 못한 거래는 현대로서 이만저만한 두통거리가 아니었다.

결국 현정은 회장은 2005년 10월 5일 현대아산 임시이사회를 열어 김윤규 부회장을 해임했고 이어 22일 임시주총을 열어 등기이사직에서도 해임했다.

'시설철거 최후통첩' 속 우울한 금강산관광 21주년을 맞은 지난해 11월 17일 현대아산 사옥 로비 모습. [사진=연합뉴스]
'시설철거 최후통첩' 속 우울한 금강산관광 21주년을 맞은 지난해 11월 17일 현대아산 사옥 로비 모습. [사진=연합뉴스]

◇ 남북관계 격랑 속 '경협' 12년째 중단

이제 현정은 회장은 시아버지와 남편의 숙원 사업인 대북 사업을 스스로의 결정으로 끌고 나가게 되었다. 

1998년 11월 시작돼 2003년 9월 육로관광으로 확대된 금강산관광은 외견상 2008년 말까지 193만여 명의 관광객을 유치하는 등 지속적인 성장세를 보였다.

하지만 김윤규 부회장이 남긴 그늘은 쉽사리 걷히지 않았다.

당장 북한으로부터 상당한 압력과 견제가 들어왔다.

현대아산의 대북 창구 역할을 하던 김윤규 부회장을 북측과 상의 없이 쳐냈다는 괘씸죄가 작용했고, 김 부회장과 달라도 너무 다른 현정은 회장의 투명경영 의지가 양측의 갈등을 키웠다.

그러던 중 2008년 7월 11일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금강산 관광에 나섰던 박왕자씨 피격 사망사건이 터졌다. 

사건 직후 북한은 금강산 관광을 전면 중단시켰고, 이듬해 현대아산 직원들이 137일 동안 북한에 억류되는 일도 벌어졌다. 

그 와중에도 현정은 회장은 꾸준히 북한을 방문해 뒤엉킨 실타래를 풀고자 했다.

2009년에는 2박3일 일정으로 방북했는데 북측이 김정일 국방위원장 면담을 허락하지 않자 체류 일정을 연장한 끝에 기어이 면담을 성사시켰다.

이 밖에도 정몽헌 전 현대그룹 회장 추모식 참석과 금강산 관광 기념행사 등을 포함해 수차례 북한을 방문했다.

이런 결과로 현대그룹은 북측으로부터 대북사업의 단독 운영권을 확인받는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북측은 여전히 앙금을 풀지 않고 있었고 후계체제인 김정은 정권이 안정세에 접어든 2015년 금강산관광사업을 독자적으로 시행하겠다고 발표하기에 이른다.

불운은 그치지 않아 당시 남북관계가 날로 경색되던 가운데 2016년 2월 박근혜 정부는 "북한이 핵과 미사일 개발을 멈추지 않는다"는 이유로 개성공단 가동을 일거에 중단시켰다.

이에 북한이 공단을 폐쇄하고 남측 인원을 철수시키면서 최소한의 남북간 왕래마저 단절되고 말았다.

현대그룹은 이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당사자 중 하나다.

그동안 현대 측이 개성공단 시설에 투자한 금액이 400억원대, 현대아산의 관련 매출이 연간 100억원대였다.

한국토지주택공사와 함께 250만평 규모로 개발하고 있던 2단계 사업도 백지화됐다.

현대아산 관계자는 "지난 10년 간 연평균 30만명이 금강산을 방문한 것으로 가정할 경우 기회비용 손실액은 대략 1조6000억원에 달한다"고 추정했다.

[사진제공=현대그룹/연합뉴스]
[사진제공=현대그룹/연합뉴스]

◇ "우리에게는 신뢰라는 자산이 있다"

남북 관계 해결에 현대그룹과 같은 민간기업이 끼어들 여지는 없다.

하지만 어떤 사태도 대북사업을 향한 현정은 회장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

지난날 재계 서열 1위이던 현대그룹의 위상이 2020년 현재 50대그룹 밖으로까지 떨어진 상태지만, 그 누구도 시아버지와 남편의 숙원을 풀고자 하는 현 회장의 의지까지는 포기시키지 못했다.

개성공단 가동 중단 2년 여 뒤인 2018년 5월, 현대그룹은 현 회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현대그룹 남북경협사업 태스크포스팀'을 발족시켰다.

당시 남북 해빙 무드가 조성되면서 경협 재개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현 회장이 지휘하는 가운데 현대그룹 계열사 대표들이 자문역을 맡고 현대아산 현대경제연구원 등 계열사 유관부서들이 힘을 합쳐 실무를 맡았다.

장차 도래할 남북 경협 사업의 전략과 로드맵을 짜자는 것이다.

현 회장은 남북경협과 관련한 대외행보에도 활발하게 나섰다.

지난해 11월에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금강산 남측 시설 철거'를 지시하자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김연철 통일부 장관을 만나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김연철 장관은 "기업의 재산권 보호를 최우선시 하면서 합의점을 모색할 것"이라며 "현대와 정부가 긴밀하게 소통하면서 해법을 찾고자 한다"고 말했다.

현정은 회장은 올해 1월 2일 그룹 시무식 연설에서 자신의 의지를 거듭 피력했다.

이날 그는 "우리에게는 그동안 쌓은 신뢰라는 든든한 자산이 있다"며 "이를 동력으로 희망을 잃지 말고 더욱 당당하고 적극적 자세로 임하자"고 말했다.

현대그룹의 한 관계자는 뉴스퀘스트와의 통화에서 "남북 경협이 오랫동안 멈춰 서면서 이를 추진해 오던 많은 임직원들이 지칠 만도 한 때"라며 "그럼에도 회사는 마지막 남은 불씨 하나라도 살릴 수만 있다면 최선을 다 할 것"이라고 현 회장의 의지를 재확인했다.

특히 남북 협력은 온 국민이 염원하는 대역사인 만큼 만에 하나 올지 모를 기회를 놓치지 않고자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대그룹의 대북 사업과 관련하여 현정은 회장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평통) 활동에도 의욕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평통은 평화통일에 관한 국내외 여론을 수렴하고 관련 정책을 대통령에게 건의할 필요에서 조직된 법정 단체다.

의장인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한 운영위원 가운데 정세현 수석부의장을 비롯한 25명의 시도 부의장이 있고, 현정은 회장은 서울시부의장을 맡고 있다.

지난 6일 평통은 정세현 수석부의장 주재 하에 2020년 2분기 정책 건의 방향을 논의하는 기획조정분과위원회의를 가졌다.

이날 회의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아 남북관계 해빙을 앞당기기 위한 실질적 협력 방안을 논의했고 그 결과 ‘한반도 평화담론 재구성’을 골자로 하는 정책건의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정세현 수석부의장은 "이번 2분기의 역사적 주요 일정은 6.15 공동선언 20주년"이라며 "이를 토대로 그간의 대북정책 기조가 어떤 범위와 방향으로 입안되어 갔는지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대그룹의 한 임원은 현정은 회장에 대해 "왕회장(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담담함을 이어받았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현대그룹의 운명이 달린 남북관계에 언제 봄날이 올지 누구도 알 수 없지만 적어도 현정은 회장은 지금까지 그래왔듯 담담한 마음으로 그날을 준비하며 보낼 것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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