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의제 꺼내 놓고 "당장은 어렵다" 이재명 "경기도 실험 성공중"

원주시가 한 시민에게 긴급재난지원금 선불카드를 전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원주시가 한 시민에게 긴급재난지원금 선불카드를 전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뉴스퀘스트=김선태 기자】 국회 개원으로 갈등중인 정치권이 난데없이 한 가지 정책에 비상한 관심을 보이는 중이다.

그것도 당장 실현할 것도 아닌 정책을 두고서다. '기본소득' 이야기다.

◇ 김종인, '1호 의제'라면서도 "당장은 요원"

먼저 군불을 지핀 쪽은 미래통합당의 당권을 장악한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다.

그가 비대위원장에 내정 되면서 미래통합당 첫 번째 정책 의제로 기본소득이 거론되기 시작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 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통합당 초선 모임에서 "물질적 자유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기본소득이 필요하다"며 공론화를 시도했다.

당장 당내에서 이런저런 이야기가 쏟아졌다.

장제원 의원은 김 위원장의 주장이 '좌클릭'이라며 "(김종인 위원장의 주장은) 통합당이 추구해온 자유의 개념을 폄훼한 것"이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김 위원장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다음날 그는 예정에 없던 기자간담회까지 열어 기본소득에 대해 열강을 펼쳤다.

그는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사실상 공황 상태가 계속되고 있으므로 이로 인해 파생되는 기본소득 문제를 근본적으로 검토할 시간"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현재와 같은 적자 재정 상황에서 기본소득은 환상이라며 실제 도입은 상당히 요원하다"는 단서를 달았다.

대세에 민감한 김현아 비대위원이 "기본소득제 도입과 관련해 테이블에 못 올릴 게 없다"며 맞장구를 쳤다. 

일부 의원은 기본소득 관련 법안의 발의까지 준비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미래통합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4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입장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미래통합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4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입장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까지 끼어들었다.

그는 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한국형 기본소득 도입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안 대표의 기본소득론은 "기본소득이 퍼주기 경쟁이 된다면 나라를 파탄의 길로 이끌 수도 있으므로 정부의 가용 복지 자원이 어려운 계층에게 우선 배분되도록 하자"는 주장이다.

어쨌거나 이슈를 툭 던지기만 했는데도 너도나도 다 관심을 보이니 김 위원장으로서는 데뷔작으로 상당한 성공을 거둔 셈이다. 

그런데 당장 도입할 것도 아니면서 이를 '국회 개원 1호 의제'로 꺼냈다니, 김 위원장의 말은 어딘가 수상쩍어 보인다.

당 바깥을 향해서는 의제 선점 차원에서, 당 내부를 향해서는 '나폴레옹 체제' 굳히기 차원에서 꺼낸 카드일 수 있다.

어떤 경우든 진지한 정책 제안이라 보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전 의원이 이를 놓치지 않았다.

그는 페이스북에서 "김종인식 기본소득 개념은 보수적 개념이자, 기존의 복지를 줄이고 국가를 축소해 그 재원으로 기본소득을 지원한 후 사회보장서비스를 시장에서 구매토록 하자는 발상이다"라고 공격했다.

통합당이 우선 '전 국민 고용보험' 도입 같은 사회안전망 강화에 협력한 다음 기본소득을 검토해도 늦지 않다는 게 요지다.

그럼에도 4일 민주당 더불어민주당 김두관 의원은 "(기본소득) 논의는 불가피할 것이라고 본다"며 이 주제의 시의성을 인정했다.

다만 이낙연 의원 측은 김종인표 기본소득 제안에 아직까지 이렇다 할 반응을 내놓지 않고 있다. 

◇ 이재명 "재난지원금 정례화하면 기본소득"

기본소득 논의에서 이재명 경기도 지사가 빠질 수 없다.

이 지사는 우리 정치권에서 가장 먼저 그리고 줄기차게 기본소득 도입을 주장해 왔고 부분적으로 이를 실천에 옮겼다.

최근에도 그는 "코로나19가 종식되더라도 경제는 상당기간 나빠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연내 두 세 번 정도는 재난기본소득을 지급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국민 1인당 20만원씩 2차 재난지원금을 지급하자"는 의견을 청와대에 건의하기도 했다.

이 지사는 사실상 지자체 최초의 기본소득 실험에 해당하는 청년 기본소득제도를 경기도에서 시행중이다.

2019년부터 2022년까지 4년에 걸쳐 도내 만 24세 청년(2019년 약 17만5000명) 개인에게 분기당 25만원, 연 100만 원을 지역화폐로 지급하는 정책으로 총 소요 예산은 6866억원 가량이다. 

반응도 좋다. 경기연구원이 펴낸 '경기도 청년기본소득 정책효과 분석' 논문을 보면, 특별히 청년기본소득의 노동 동기와 관련된 효과가 긍정적으로 나타났다는 점이 눈에 띈다.

이재명 경기지사가 4일 오후 경기도 시장군수협의회와 함께 경기도청 브리핑룸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이재명 경기지사가 4일 오후 경기도 시장군수협의회와 함께 경기도청 브리핑룸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즉 "청년기본소득을 지급받은 취업 청년의 주당 노동시간이 지급받기 전에 비해 크게 증가했으며, 미취업 상태에 있는 경기도 청년의 주당 구직활동기간과 주당 직업훈련시간도 더욱 증가했다"는 게 결론이다.

이는 청년기본소득을 수령한 청년들의 활동량과 의지가 늘어난 선례로 삼을 수 있다.

게다가 조사 대상의 62.29%가 "국가·지자체 역할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으로 변했다"고 응답했다니 정치권에서 관심을 가질 만도 하다.

이런 자신감에서 이 지사는 지난 5월 24일 자신의 사회관계망(SNS)에 "재난기본소득은 복지정책이 아니라 경제정책이고, 정례화하여 기본소득을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

빌 게이츠, 마크 저커버그 같은 세계적인 CEO들이 기본소득을 지지한다는 사실도 빼먹지 않았다.

실제로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는 "기본소득은 머지않아 필수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 "다른 나라 선례 없다면 우리가 만들어갈 수도"

그럼에도 이들 모두가 기본소득 도입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데 동의한다.

무엇보다 전 세계적으로 완전한 의미에서 기본소득을 도입한 국가가 없다.

실험적인 사례가 있을 뿐인데, 대표적으로 2017~2018년 두 해 동안 핀란드 정부에서 실시한 기본소득 실험이 있었다.

당시 정부와 함께 이 일을 수행한 핀란드 사회보장국(KELA)은 사후 조사보고서에서 "기본소득 수령인들은 삶에 대한 만족이 더 컸고 정신적 압박을 덜 느낀 대신 대체로 고용효과는 작았다"는 평가를 내렸다.

기본소득 도입이 불가피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 없었다는 말이다.

국내 학자들도 비슷한 결론을 내리고 있다.

'지역자치단체의 소득지원 방안 연구'(사회과학연구 제26권 제4호, 은민수, 2019-12.)에 따르면 "4차 (산업)혁명과 디지털 자본주의 도래, 줄어드는 고용기회와 짧아지는 고용기간 등으로 인해 보수와 진보를 떠나 기존 사회보장시스템의 대안을 기본소득에서 찾고 있다"고 한다.

연구는 다만 "이상적이고 완벽한 무조건적인 기본소득 모델은 당분간 실현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이 점은 기본소득 개념의 제창자들조차 인정한다.

이 분야의 선구자 중 한 사람인 필립 판 파레이스는 그의 주저 '21세기 기본소득'에서 "기본소득이란 재산 조사나 노동할 의사에 대한 조사 없이 사회 내 모든 개인에게 정규적으로 지급하는 현금"이라는 유명한 정의를 내렸다.

그러면서 "이는 분명히 유토피아적인 개념"이라고 썼다.

그렇다고 도입을 먼 훗날로 미루자는 것은 아니다.

가령 파레이스는 "발전된 복지국가라면 소득세로 재원을 마련하여 먼저 부분적 기본소득을 도입한 뒤, 이를 공공부조와 사회보험의 추가액들로 보조하는 방식으로 문제 해결에 다가설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한국 사회가 '발전된 복지국가'라고 규정하기에 무리가 있으므로 이 전략도 당장은 유토피아적일 수 있다. 

결국 파레이스조차 "정문을 통해서가 아니라 뒷문을 통해 슬며시 (기본소득을) 들여와 모두가 변화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자"며 일종의 '꼼수'를 제안한다.

그만큼 도입에 많은 장애가 도사리고 있다는 뜻이다.

다만 파레이스는 "19세기만 해도 노예제를 폐지하는 일은 유토피아에서나 가능하리라 여겨졌지만 오늘날 이를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인다"며 "무조건적 기본소득 또한 가까운 미래에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 되어 있을 것"이라 장담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경우도 마찬가지 사정일까?

우리는 코로나19 팬데믹 속에서 완전한 기본소득은 아니지만 전 국민이 재난지원금을 수령해 사용한 경험을 갖고 있다.

이런 경험이 조금 더 현실화된 기본소득 개념을 이끌어낼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가령 뇌공학자인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는 "이번 코로나19 위기로 인해 사회적 접촉을 극도로 줄이고 디지털에 의존해온 지난 수개월의 경험이 우리 사회에 재난 대책에 대한 다양한 논의거리를 제공해 주었다"고 말했다.

초유의 경험하지 못한 셧다운의 공포 속에서 우리 국민들이 재난지원금 사용을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행위'로 인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기본소득 도입 논의가 정치권의 아무 말 대잔치로 끝나면 곤란할 것이라 생각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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