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퀘스트=김재준 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2차선 고속도로의 추월할 수 없는 불만에 산과 나무들이 위안을 준다.

차창을 열면 아직 맑고 깨끗한 편이다. 가조 휴게소를 지나 달리면서 박유산(朴儒山)이 구름에 떠 있는데 그야말로 장관이다.

라디오 볼륨을 더 높였다.

“술 마시고 소리 지르는 것을 무엇이라고 합니까? ‘가’자로 끝나는데.”

“미친 건가, 누구인가.”

아닙니다. 정답은 “아빠인가.”

“…….”

요즘 아버지들의 수난시대다.

이런 걸 라디오 프로그램에 내보내고 있으니 고함이라도 질러야 할 판이다.

거창읍내 지나면서 산비탈 쪽에 강을 바라보는 호텔이 있는데 비 오는 날 하룻밤 지내고 싶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0여 분 더 올라 수승대를 지나간다.

수승대는 위천면 황산리 거북 바위일대다.

나제 국경이었던 이곳은 신라로 가는 백제 사신을 근심으로 보냈다고 해서 수송대(愁送臺)였으나, 퇴계가 안의(安義)처가에 왔다가 풍경을 예찬하며 수승대(搜勝臺)로 바뀌었다 한다.

거창은 어디든지 계곡이며 정자

거창은 어디든지 계곡이며 정자다.

빼어난 곳은 단연 남덕유산에서 발원한 월성계곡으로 수승대 상류를 이룬다. 북상면 소재지를 지나 우린 왼쪽으로 간다. 거창 신씨와 쌍벽을 이룬 은진 임씨 갈천(葛川) 임훈(1500∼1584)의 본향이다.

비안현감, 광주목사를 지내다 덕유산에 숨어들었다. 주변 갈계숲은 수백 년 되는 느릅·물오리·느티·소나무가 자란다. 갈천서당과 옛집이 많다.

차를 세우고 뒤쪽 산마루를 올려다보면 두 개 겹쳐진 사모(紗帽)바위. 사모는 관복의 모자인데 혼례 때 신랑이 쓴다.

사모바위에 날개가 없는 것은 벼슬아치와 효자·열부가 많이 나온 것을 시기한 사람들이 깨뜨렸다고 한다.

수승대 거북바위.
수승대 거북바위.

길 왼쪽 강선대에서 산속으로 조금 올라가면 모리재(某里齋아무개 마을). 길가의 서숙 밭은 햇살에 알곡이 잘 여물었다.

새들에게도 좋은 먹잇감으로 노랗게 익은 열매를 보노라면 문득 할머니 생각나는 곡식이다.

서숙은 조(粟)의 사투리인데 흉년 때 굶주림에서 구해 주는 일년생 벼과 구황작물(救荒作物 조·피·기장·메밀·감자·고구마 등)이지만 지금은 거의 심지 않는다.

가난할 때 줄기를 버무려 떡을 해먹었다.

가축먹이, 지붕 이으는데, 땔감으로 썼고 배 아플 때, 코피, 숙취에 좁쌀뜨물을 끓여 먹었다고 했다.

꺼풀을 비벼 좁쌀을 만들었는데 생각대로 잘 안 돼 마음 졸인다는 조바심이란 말이 생겼다. 바심은 타작의 옛말.

조(粟), 예전엔 서숙으로 불렸다.
조(粟), 예전엔 서숙으로 불렸다.

동계 정온(1569~1641)은 갈천의 문인인데 본관이 초계(草溪), 성품이 강했다.

모리재에 들어와 거친 땅에 조를 심어 먹으며 일흔 넘도록 살았지만, 대제학을 지내며 최명길에 맞서 척화를 주장하다 인조의 삼전도 굴욕(청태종 앞에서 이마를 바닥에 대고 기던 일)에 할복했다.

경상좌우도의 퇴계·남명을 비롯해서 갈천·요수가 연배(年輩), 동계가 후학인데 모두 학식과 덕행이 덕유산처럼 높고 월성·송계의 물처럼 길게 이어졌으니, 산고수장(山高水長)이 어찌 산과 물로만 헤아릴 것인가?

다시 북덕유산으로

9시 25분 송계지구 탐방안내소를 지나 횡경재로 오르는 등산로 입구다.

8월의 계곡물소리 요란하고 시원한 숲길은 입구부터 반갑다. 하얀 물빛이 안개처럼 바위에 흩뿌리니 이끼들도 제철을 만났다.

군데군데 서어·층층·당단풍·물푸레·고로쇠·생강나무들이 산길에 섰다. 고로쇠나무 이파리 햇살에 반짝이며 팔랑거리는데 다섯 개의 결각(缺刻 가장자리 패인 곳)을 확실히 알겠다.

될 수 있으면 골짜기 맨 꼭대기까지 올라가 물통을 채울 요량이지만 중간에서 한 번, 10시경 개울 건너면서 마지막으로 채운다.

산이 깊어 갈증이 더 할 것 같아 연거푸 마시는 물맛에 물봉선도 빨갛게 피었다.

지금부터 확실히 오르막이다(향적봉6.5·횡경재1.2킬로미터). 산목련, 조릿대를 지나 물소리 들리지 않는다. 여름 산 오솔길 딛는 기분, 땀을 즐기면서 걷는 숲이 좋다. 40분 오르니 발아래 굽어볼 수 있다.

잠시 바위에 앉아 쉬는데 사탕 한 개 맛이 피로를 잊게 하고 바람까지 살랑살랑 젖은 머리카락을 날린다.

우리 몸의 에너지원은 혈액의 포도당을 소모하고 간에 저장된 글리코겐, 다음에 지방을, 마지막으로 근육의 에너지를 쓴다.

지방을 소모하려면 사탕, 엿, 과일 등 탄수화물을 힘이 부치기 전에 자주 먹어줘야 한다. 지치면 식욕이 떨어져 먹을 수 없다.

11시경 횡경재다(백암봉3.2·신풍령7.8·송계사3킬로미터).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데 곧장 백암봉으로 내닫는다. 지금부터 능선길이니 걸음은 빨리 딛는다.

초롱·며느리밥풀·동자꽃, 미역줄거리·신갈·당단풍·노린재나무들이 즐비하다. 플라타너스 잎보다 작고 단풍보다 덜 갈라져 고운 잎을 달고 있는 나무.

단풍나무와 한 집안 식구면서 연초록 잎에 잎자루(葉柄)가 붉은 시닥나무를 만난 것은 즐거움이다.

사진 찍고, 수첩에 기록하며 땀을 닦는데 앞서간 일행은 볼 수 없다.

2~30분 지나 동자꽃 군락, 흰 꽃을 매단 참취·비비추·우산나물·까치수염·단풍취·박새……. 물푸레·신갈·철쭉나무 거목들이 때 묻지 않은 듯 의젓하다.

11시 45분경 잠시 쉬는데 한 군데 소복이 모인 산당귀·사초·참나물·비비추·우산나물이 발길을 잡는다.

산꾼들이 알면 산당귀는 결코 무사할 수 없으리라. 12시경 백두대간 검푸른 산맥을 바라보는데 마가목 잎은 벌써 붉게 물들었다.

햇빛을 가린 신갈나무 아래 동자꽃에 셔터를 누르는데 인기척이다. 부부인 듯 눈빛이 마주치는 순간 “동작 그만.” 자세다. 아마 자기네들이 찍혔다고 불편했을 것이다.

그들은 무엇을 캐다 들켰고 나는 “어험, 어험” 헛기침만 해댔다. 괜스레 미안했지만 한편으론 미안해도 싸다는 생각이 들었다.

덕유산 능선길, 저멀리 삿갓봉.
덕유산 능선길, 저멀리 삿갓봉.

해발 1천 미터 넘는 능선의 조릿대 숲길은 오늘 산행의 덤이다.

신갈나무가 그늘을 만들어 주고 중간층에 철쭉을 비롯해서 미역줄나무·조릿대·며느리밥풀꽃·떡취들이 아래층을 이룬다.

바디나물·산당귀·초롱꽃·모시대·잔대 군락지를 지난다. 12시 20분 백두대간 갈림길인 송계삼거리 백암봉(향적봉2.1·동엽령2.2·삿갓재대피소8.4·남덕유13.7·횡경재3.2·송계사6.2·신풍령11킬로미터).

저 멀리 남쪽으로 줄기차게 달려간 동엽령, 삿갓봉, 남덕유산과 북서쪽으로 북덕유산인 중봉, 향적봉이 올라서 있다.

정상으로 오르면서 왼쪽이 장수, 무주요 오른쪽이 거창지역이다.

백암봉에서 중봉까지 땡볕 바위마다 산오이풀이 붉은 여우꼬리마냥 교태를 부리는데 잡귀를 쫓는 물색처럼 바람에 나풀거린다.

산오이풀(地楡草)은 장미과 여러해살이로 비비면 수박, 오이냄새가 난다. 8∼9월에 자주색 꽃이 강아지풀처럼 가지 끝에 달리고 이삭째 염료로 쓴다.

높은 산과 만주에까지 자란다. 사포닌·탄닌의 쓰고 떫은맛 때문에 뿌리를 작약, 익모초처럼 산후 출혈·월경과다 등 부인병에 썼고, 개에게 물렸을 때 뿌리를 찧어 붙이기도 했다. 하늘거리는 모습이 앙증스러워 애교의 상징이다.

덕유산 무주구천동에 9천여 개의 절집(道場)이 있었다는 것은 과장된 것이라 해도 동자승들이 왜 이렇게 많은지 길섶, 숲속에 즐비하다.

스님을 기다리다 얼어 죽은 자리에 핀 것이 동자꽃이라는데……. 나무계단 옆으로 광대싸리·까치수염·산오이풀·흰고려엉겅퀴, 잎이 두터운 호랑버들·멸가치 등 온갖 식물들이 뽐내고 있다.

12시 50분경 중봉에 서니 오수자굴 갈림길이다. 중봉에서 향적봉 오르는 길에 노란 원추리 꽃이 수를 놓았는데 노랑물봉선·물봉선·동자꽃·흰진범·철쭉·병꽃·신갈나무도 줄을 섰다.

“이게 무슨 꽃입니까?”

“…….”

오누이끼리 얘기를 나누다 묻는다.

“물봉선입니다.”

“유행가, 손대면 톡 하고 터질 것만 같은 그대…….”

“꼬투리 건드리면 씨앗이 튑니다.”

“…….”

“뭔가 튀어 나갔어요.”

“그래서 나를 건드리지 마세요.”

“…….”

그들은 삼공리에서 리프트를 타고 왔다. 송계사 쪽에서 4시간 올라온 우리와 느낌은 전혀 다를 것이다. 길옆의 구상나무에 대해 사설을 늘여 놓는다.

“일제 강점기 때 빼앗긴 우리 나무. 크리스마스트리로 세계 최고인데 비싼 사용료(Royalty)를 주고 오히려 사야 돼요.”

구상나무.
구상나무.
향적봉의 여름.
향적봉의 여름.

구상나무는 한국특산 소나무과. 적응력이 뛰어나고 모양이 아름다워 크리스마스트리로 유명하다. 한라·지리·덕유산의 높은 곳에 산다. 제주에서는 쿠살낭이라 한다.

쿠살은 성게, 낭은 나무의 사투리. 솔방울 끝의 비늘이 갈고리(鉤) 모양(狀)으로 젖혀져 구상(鉤狀)나무다(젖혀지지 않으면 분비나무). 푸르고 붉고 검은 솔방울이 다닥다닥 하늘 보는데 북유럽 분위기를 자아낸다.

백여 년 전 열강에 의해 어수선하던 시대, 우리도 모르게 유럽으로 실려 간 구상나무는 미국 식물학자 윌슨에 의해 변신한다. 그나마 학명이 코리아를 달았으니 다행이다.

이 밖에도 수수꽃다리를 가져가 개량한 미스 김 라일락 등 생물주권을 빼앗긴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렇게 유출된 것은 기록이 잘 없어 대항하기 쉽지 않다.

먹고 살기 바빠 어쩔 수 없었다 해도 등록되지 않은 자생식물들이 많다. 바야흐르 생물자원이 국력인 시대다.

오후 1시 향적봉(香積峰 1614미터, 설천봉0.6·백련사2.5·대피소0.1·동엽령4.3·남덕유산14.8킬로미터).

덕유산(德裕山)은 흙산(肉山)으로 난리 때 숨으면 찾을 수 없으므로 덕이 있는 산이라 했거늘 장쾌한 산맥과 골짜기마다 계곡을 만들어 모든 것을 품고 있으니 덕산이 아닌가?

거창, 함양, 무주, 장수 등에 걸쳐 있고 금강, 낙동강, 섬진강의 분수령을 이룬다. 구천동·칠연·월성·송계계곡이 빼어나고 육십령에서 북쪽 소사고개까지 거의 36킬로미터다.

1975년 국립공원으로 지정, 설천·삼공·칠연·월성·송계지구로 나눈다. 봄에는 철쭉군락, 여름철 계곡의 물길, 온갖 단풍과 눈 덮인 설경이 으뜸이다. 특히 눈보라 날리는 능선의 구상나무와 주목이 장관이다.

저 멀리 가야산, 비계산, 황매산, 지리산, 삿갓봉, 남덕유산, 장수덕유산, 대둔산, 계룡산, 서대산, 적상산의 그림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다.

정상에는 설천봉으로 리프트를 타고 올라 온 사람들이 많은데, 표지석에서 사진 한 장 찍으려니 한참 줄을 서야 한다.

구름이 몰려와 흐렸다 맑았다 한다. 그래도 눈 덮인 겨울 설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백련사 쪽으로 올라온 것이 아마 대여섯 번 넘는다. 얼마나 추웠으면 쪼그려 앉아 막걸리를 데웠을라고…….

정상 부근에는 식물이 많기도 하다.

병꽃·명자순(조선까치밥)·매발톱·나래회·털개회·왕괴불·귀룽·노린재·개다래·쥐다래·딱총·사스레·백당·구상·주목나무……. 향적봉대피소 뒤에는 황적색 동자꽃이 길마다 피었는데 겨울 눈 속에서도 고운 빛을 감추고 있었나 보다.

오후 1시 30분쯤 다시 주목을 만나고 산 아래 멀리 서쪽 들판과 연못을 바라보면서 밥 한 덩이, 사과 한 쪽으로 점심이다.

언덕 너머 하얀 석상처럼 우뚝 서서 죽은 주목나무를 보면 인간의 영원과 욕구의 결말을 보여주는 듯, 저 나무도 한 때 무성하고 씩씩했던 가지와 잎을 지니고 있었을 터. 나도 발밑의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오후 2시 10분 출발해서 백암봉까지 내려가는 길은 20분 남짓, 3시 20분 다시 횡경재에 닿는다. 한층 기울어진 햇살이 숲속을 비추어 나무도 바위도 흙도 후끈 달아올랐다.

송계사에서 횡경재는 때가 덜 묻은 구간. 20분 더 내려가는데 잣·서어·쇠물푸레·물오리·쪽동백·대팻집나무가 늘씬하다.

백암봉. 남덕유산으로 가는 능선이 멀다.
백암봉. 남덕유산으로 가는 능선이 멀다.

계곡물소리 다시 들리고 오후 4시경 이정표 있던 맨 꼭대기 계곡(향적봉6.5·횡경재1.2킬로미터)이다. 물통을 채우니 지금까지 물 2리터 넘게 마셨다. 잠시 짐을 내리는데,

“안녕하세요?”

네 사람이 물가에 앉아 담배를 피운다.

“어느 쪽에서 오셨습니까?”

“설천봉에서 리프트 타고 와서 송계사로 내려갑니다.”

“우린 향적봉 갔다가 송계사 입구까지 원점회귀 중입니다.”

“대단하십니다.”

“…….”

“물 맛 좋고 이 산에 공기도 참 깨끗하죠?”

“…….”

그들은 슬그머니 담배를 감추고 내려간다. 산에서 함부로 담배 피우면 30만 원까지 과태료를 물 수 있다. 공원 지역은 수백만 원 될 것이다.

우리는 흐르는 물에 손수건 씻고 물통을 다시 채워 걷는다. 함박꽃·비목나무를 두고 오후 5시경 되돌아 왔다. 땀 흘리고 난 뒤 계곡물에 허우적거리는 것이 배냇짓과 무엇이 다른가?

어느 절집에 들렀는데 염불·목탁소리도 없고 중이 번듯이 누워있다. 황망히 나오면서 하는 말이 가관이다.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가면 되나 절도 하고 시주도 해야지.”

“…….”

어이 없어 그냥 나왔다.

무례한 중을 생각하면 삼복염천에 설중단비(雪中斷臂)의 고결한 스님을 그려본다.

설산의 추억, 무주 구천동

향적봉의 고사목 눈꽃과 끝없이 펼쳐진 설원의 파노라마. 눈 덮인 첩첩 산은 한 폭의 담채화(淡彩畵)다. 향적봉에서 중봉까지 눈꽃은 덕유산의 또 다른 모습을 그릴 수 있다.

향적봉은 쉽게 오를 수 있지만 겨울철 기상변화가 심해 눈보라를 만날 수 있으므로 단단히 무장하지 않으면 사고 나기 십상이다.

8시 30분 삼공리 주차장에는 설국의 배경인 듯 회색 풍경이 겨울 산하를 장악하고 있다. 소설의 무대처럼 눈이 만들어 놓은 하얀 그림 위에 등장인물은 가지각색인데 긴장감이나 특별한 사건이 없으니 오늘 산행은 무채색이다.

아침 일찍 거창 마리·위천·고제를 넘어 얼어붙은 길을 달려 무주 삼공리로 넘어 왔다. 겨울 장비를 꺼내느라 모두 바쁘다. 아이젠에 스틱, 마스크, 장갑, 스패츠를 끼고 구천동 길 걷는데 햇살이 눈부시다.

겨울 덕유산의 유장한 산하.
겨울 덕유산의 유장한 산하.

9시 15분 의병순국비, 6·25전쟁 구천동 수호비를 지나 눈 덮여 얼어붙은 인월담을 두고 걷는다.

이곳은 함양에서 일어나 1908년 일본 헌병대와 싸워 이긴 의병장 문태서(1880~1913) 항일격전지, 6·25전쟁 때 인천 상륙작전으로 퇴로가 막힌 인민군들이 이곳으로 숨어들었는데 토벌 과정에서 군인·지역주민 등 희생당한 이들을 기린 곳이다.

60여 년 전 덕유산, 지리산, 백운산 일대에서 저항했던 남부군은 조선인민유격대남부군단으로 6·25전쟁 전후 유격전을 벌이던 비정규군 빨치산(partizan)이다.

후방을 교란하여 전선에 영향을 미쳤으며 국민들의 사기를 떨어뜨리기도 했다. 이들 토벌작전에 2개 사단 규모가 투입되어 사살·포로·투항 등 1만여 명이 넘는 전과를 올렸다고 한다.

근대화 과정을 거치면서 남부군의 이야기는 금기시 돼 왔지만, 80년대 민주화 분위기가 무르익을 무렵 소설 남부군이 서점가를 휩쓸었고, 남쪽의 추격과 북의 버림을 받은 빨치산의 시련과 최후를 그린 남부군이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격전의 현장이었다고 생각하니 계곡의 바위산이 험상궂다.

무주(茂朱)는 무풍, 주계의 첫 자를 따서 불렸는데 당시 신라, 백제 국경 주계를 붉은 내(赤川)라 했다. 붉은 피든, 붉은 단풍이든 벌거벗은 나무들이 이룬 겨울 숲. 전나무, 소나무 사이로 새소리 들려도 숲은 꿈쩍 않고 계곡의 얼음 밑으로 물소리 희미하다.

10시 10분 백련사(白蓮寺), 일대에 많은 절집이 있었으나 지금은 이곳만 남았다. 신문왕 때 연꽃이 나온 곳이라 백련사라 하였고 여러 번 새로 지었다. 눈바람에 삼성각 앞에서 신발에 붙은 눈을 털며 햇볕을 쬔다.

향적봉까지 2.5킬로미터, 잠시 더 올라가 쉰다. 여기서부터 오르막인데 바람이 잠잠하고 눈 위로 땀이 뚝뚝 떨어진다.

선글라스에 김이 서려 하얘지고 11시 50분 다시 눈바람 일기 시작한다. 울부짖는 바람과 눈보라는 혹독하다. 정상이 가까워진다는 것이겠지. 머리카락에 고드름 달리고 지팡이에 힘을 주니 쑥 들어가 버린다.

하마터면 눈에 빠질 뻔 했는데 겨울산행 때 지팡이를 잘못 디딜 수 있으므로 발자국이 없는 곳은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12시 5분 대피소와 정상 갈림길(대피소0.1·정상0.2·백련사2.3킬로미터)에 바람이 몰아쳐 우린 산장 쪽으로 가기로 했다.

5분 더 올라서 대피소를 지나고 12시 20분 향적봉(1614미터)에는 살을 에는 바람에 손발이 시리고 사진 찍기도 힘들어 다시 산장으로 내려선다.

라면 냄새, 화장실 냄새가 뒤섞여 역겹다. 사람이 더럽다는 말에 오늘은 동의한다. 추운데 점심을 해결하려니 서울역 대합실보다 복잡해서 자리가 없다. 일행들과 눈밭에 비집고 앉아 겨우 허기를 면했다.

보름 전에 예약을 해야 한다. 컵라면을 팔고 취사장이 있으나 좁고 지저분하다.

오후 2시경 중봉에 서니 오수자굴 갈림길이다(동엽령3.2·오수자굴1.4·향적봉1.1킬로미터). 유장하게 흘러간 조국의 산하, 여기서 먼 산줄기 바라보니 가슴 뭉클해진다.

온 세상이 설국인데 하늘은 더욱 푸르다.

눈길이 미끄러워 조심조심 오후 3시 15분 오수자굴에는 고드름이 주렁주렁 매달렸고 잔설이 얼어붙었다.

갈천 임훈의 향적봉기에 오수자라는 고승이 도 닦은 곳이라 한다. 갈천은 유난히 산을 좋아했는데 덕유산 남쪽에서 오수자굴, 백련사로 다녔다.

오수자굴을 계조굴이라 하였고 당시 향적봉에 향나무가 많았다는데 아마 사촌뻘 되는 주목·구상·노간주나무들이 있어서 그렇게 부르지 않았을까?

관광버스팀에 막혀 앞서거니 뒤서거니 걷는데 눈의 무게에 못 이겨 부러진 전나무 몇 그루 애처롭다.

이 산에 칡이 자라지 못한다지만 계곡 너머 덩굴이 간혹 보인다. 옛날 구천동에 칡을 캐먹고 사는 형제가 있었는데 눈먼 형은 먹다 남은 것을 주며 무시한다고 의심해서 아우를 죽여 버렸다.

동생은 소쩍새가 되어 형을 데리고 가 칡을 꺾으려 하나 손에 닿으면 말라버리니 형은 굶어죽고 말았다는 전설이 있다.

오후 4시경 다시 백련사에 도착(삼공리관리사무소5.5·오수자굴2.8·향적봉2.7킬로미터)하면서 땀이 식어 춥고 장작불이 그립다. 송어양식장 지나 산그늘에 밀려 긴 계곡 길을 걷는다.

백련사에 이르는 굽이진 계곡 일대를 구천동(九千洞)이라 하는데 흐르는 계곡물은 부딪히고 미끄러지면서 폭포가 되고, 기이한 바위들이 구천 개 널려서 구천동, 구천 개의 절집이 있었다 해서, 절이 많아 구천 명이 다녀갔다고, 구·천씨가 살았다고 구천동……. 어쨌든 유래가 하도 많은 것은 그만큼 경치가 빼어나서 그렇다고 생각한다.

구천동은 산골의 대명사다. 덕유산에서 시작되는 물줄기는 북동쪽으로 금강 상류 무주구천동을 만들고, 서쪽은 칠연(七蓮)·용추(龍湫)폭포를 거쳐 안성분지로 흘러 금강지류를 만든다. 남동쪽은 거창 위천(渭川), 황강(黃江)을 이루어 낙동강으로 흘러간다.

오늘은 날씨가 춥고 어설퍼서 설명이고 뭐고 겨를이 없었다. 오후 5시 10분 삼공리 주차장에 도착하니 일행은 모두 지쳤고 등산화도 젖어 얼어붙었다.

(다음 회에 계속)

저작권자 © 뉴스퀘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