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못 묻다가는 '나쁜 놈' 된다
언론의 입을 막으면 본연의 기능과 역할 상실

12일 서울광장에 마련된 고 박원순 서울시장 분향소를 찾은 시민들이 묵념하고 있다. 2020.7.12
12일 서울광장에 마련된 고 박원순 서울시장 분향소를 찾은 시민들이 묵념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뉴스퀘스트=박민수 편집국장】 "나쁜 자식 같으니라고..."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0일 유명을 달리한 박원순 서울시장 빈소에서 한 언론사 기자를 향해 던진 욕이다. 

그것도 사적인 자리가 아니라 수많은 언론사 기자가 지켜보고 있고 카메라가 돌아가는 공개된 장소에서였다. 

그의 감정 섞인 상소리는 여과 없이 고스란히 전달됐다.

당시 현장에 있던 기자는 '고인의 비서 성추행 의혹에 당 차원에서 대응할 생각이 있느냐'고 물었다.

이에 이 대표는 "그런 걸 이 자리에서 예의라고 (질문)하는가. 최소한도로 가릴 것이 있다"며 불쾌한 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이 대표는 이어진 기자들의 질문에도 입을 굳게 다문 채 취재진을 몇 초간 노려본 뒤 자리를 떴다.

이후 강훈식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은 당일 오후 해당 언론사에 전화를 걸어 "면구하다, 송구하다"며 거듭 사과의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멀쩡하게 잘 자라 기자가 된 누군가의 귀한 아들은 기자로서 당연한 질문 한번 했다가 공개적인 자리에서 느닷없이 졸지에 '나쁜 자식'이 됐다.

물론 질문도 때와 장소를 가려서 하는 게 필요하고 예의다.

당시 기자의 질문은 상가에서 실컷 울고 난 뒤에 '그런데  누가 돌아가셨나요?'라고 묻는 식의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것'은 아니었다.

고인의 죽음과 관련된 당 차원의 대응 방안을 묻는 것은 어쩌면 기자의 당연한 의무이자 책임이다.

1000만 서울 시민을 대표하는 시장이 '성추행 혐의로 피소된 다음날 느닷없이 주검으로 돌아왔다'는 것은 누가 무엇이라고 억지를 쓰더라도 엄연한 팩트다.

집권 여당의 대표에게 서울시장의 죽음에 대한 여러 의혹과 이후 당 차원의 대응방안에 대해 기자가 묻는 것이 과연 예의에 어긋나고 나쁜 자식이라고 까지 욕먹을 일일까?

현 정부는 공정과 정의를 입에 달고 산다.

또 '공(公)과 사(私)는 함께 갈 수 없고, 정(正)과 사(邪)는 함께 갈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지켜야 할 대목에서는 공사(公私)와 정사(正邪)를 구분하지 못하다가 이를 지적하면 정색하며 예의를 갖추라고 우긴다. 

친 여권 인사들은 '불모지였던 우리사회의 시민운동을 일궈 낸 사회운동가'였다며 고인이 된 박 전시장에 대한 추모의 말로 앞다퉈 그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다.

또 '애석하다' '오래된 친구였다'며 각별했던 사이였음을 전하고 있다.

어떤 이는 "한편으로 우리를 남기고 떠난 그에게 서운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하니 눈물이 난다"고 까지 말했다.

심지어 한발 더 나아가 '이쯤 되면 막가자는 식'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있다.

진보 성향의 역사학자란 사람은 '그가 두 여성(아내와 딸)에게 가볍지 않은 잘못을 저질렀다는 건 안다. 그가 한 여성에게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질렀는지는 모른다'고 트윗터에 올렸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이런 억지가 버젓이 나돌아 다녀도 제지하거나 비판하기는 커녕 박수치며 환호하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세상이다.

사실관계가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박 전 시장으로부터 수년간 지속적으로 성추행을 당했다며 용기를 내 고소한 피해 여성이 고인보다는 훨씬 더 힘들고 고통스러웠을 게 분명하다.

박 시장과 피해여성이 겪었던 고통은 그 내용과 성격이 분명히 다른데도 이들은 오히려 박 시장이 힘들었을 거라고 한다. 

일부는 박 시장의 '고통'에 공감까지 표했다.

피해여성이 그동안 겪었던 고통과 분노, 그리고 지금 처해있을 불안과 공포, 또다른 죄책감은 이들의 안중에는 없다.

그 잘난 사람들의 입에서 아직까지 박 시장의 성추행 혐의나 또 다른 협박과 죽음의 공포에 떨고 있을 피해 여성에 대한 이야기는 한마디도 없다.

이게 바로 그들의 민낯이다.

한 인간의 죽음 앞에서 고개 숙여 그의 삶을 기억하며 추모하는 것은 인간의 당연한 도리다.

그렇지만 그의 죽음이 밤낮없이 서울시정에 전념하다 과로로 혹은 병을 얻어 세상을 등진 것은 분명히 아니라는 사실이다.

언론의 입장에서는 그의 죽음에 대한 이유와 배경이 궁금한 것이 당연하다

살아온 그의 삶이 순결하고 고결했기 때문에 그냥 '입 닥치고 슬퍼만해라'는 것은 '진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10일 오전 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조문을 마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10일 오전 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조문을 마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박 전 시장의 죽음으로 성추행 의혹 고소 사건은 '공소권 없음'으로 결론났다.

공소권 없음이라는 뜻은 수사기관이 법원에 재판을 청구하지 않는 불기소처분 중 하나다.

그렇다고 죽음만으로 모든 것을 덮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입을 다물고 쉬쉬하는 것만이 능사도 아니다.

현 정부 들어 늘 그래왔던 것처럼 박 전 시장의 죽음을 둘러싸고 우리사회는 다시 둘로 쪼개져 갈등과 반목의 시간을 겪을게 분명하다.

손혜원에서부터 조국과 윤미향 사태에 이르기까지 겪었던 분열과 극단의 갈등, 질시와 반목의 사회분열상이 재연될 조짐이다.

2만명이 넘는 시민은 고인을 추모하기 위해 코로나19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직접 조문 행렬에 나섰고 서울특별시장(葬)에 반대한다는 국민청원 서명도 50만을 넘어섰다.

한국여기자협회는 성명을 내고 '박시장의 죽음이 안타깝지만 피해 여성과 연대하겠다'고 나섰다.

미래통합당은 오는 20일 열리는 김창룡 경찰청장 후보자의 인사청문회에서 이를 짚고 넘어가겠다고 벼르고 있다.

기자는 숙명적으로 묻는 게 직업이다.

기자로서 그 죽음의 배경과 이유에 대해 ‘왜’라는 질문이 안떠오른다면 그야말로 요즘 일부 선동가들이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기레기’에 다름 아니다.

질문 한번 잘못했다가 곤욕을 치른 기자의 경우는 이 정부에 들어 이것 말고 또 있었다.

지난해 1월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에서 경기방송의 한 여기자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경제 기조를 안 바꾸는 자신감은 어디에서 나오는 건지, 그  근거는 무엇인지 단도직입적으로 묻는다”고 말했다.

이후 이 여기자는 친여 지지자들로부터 '어따 대고 감히, 우리 이니에게 그런 불경스런 질문을'이라는 비난과 함께 신상이 털려  곤욕을 치루기도 했다.

'오비이락일까?' 경기방송은 지난 3월29일 22년의 역사를 접고 자진 폐업했다.

우리 방송 역사상 정부 허가를 받은 방송사업자가 스스로 폐업하는 경우는 처음이라고 한다.

이 여기자도 '대통령에 대한 저의 질문이 결국 경기방송의 재허가권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면서 결단이 필요했다'며 지난 2월에 결국 퇴사했다.

아무리 세상이 ‘기레기’라고 욕하고 비난하더라도 언론은 언론이 지켜야할 사명과 책임이 있다. 

정작 필요할 때는 언론을 들먹이며 근거를 강조하다가도 마음에 안든다고 언론을 쓰레기 취급해서는 언론을 대하는 바람직한 자세가 아니다.

듣기 거북하고 불편하다고 해서 언론의 입을 가로막는 순간 언론은 제 역할과 기능을 상실한다.

권력과 금력을 가진 소위 '힘센자'들을  비판하고 감시하는데도 전혀 도움이 안된다.

언론의 질문과 역할, 그리고 예의에 대해 다시 한번 더 생각할 때다.

굳이 사족을 달자면 기자는 고인이 된 박 전시장과 개인적 친분으로 다양하게 연결돼 있다.

박 전시장의 모친과 그의 부인인 강난희 여사의 모친은 생전에 기자의 모친과 왕래하는 등 교분이 두터웠다.

또 기자가 형님으로 모시면서 수 십년간 알고 지내고 있는 전직 판사 출신의 변호사는 박 전시장과 동서지간으로 기자로서 또 개인적 친분으로 자주는 아니지만 여러 번 만난 적이 있다.

그래서 고인의 죽음을 둘러싼 의혹과 양 진영 간의 대립과 갈등과는 별개로 고인이 저 세상에서 속세의 온갖 번뇌를 벗고 영면하시기를 진심을 다해 두 손 모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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