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안 당사자가 약속 깬 셈..."대화 못할 노동계" 사회적 신뢰에도 흠집
김명환 위원장 '직' 걸고 대의원대회 표결했지만 부결...지도부 사퇴 예상

【뉴스퀘스트=최석영 기자】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이 끝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 합의안을 걷어 찼다.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이 직을 걸고 대의원 대회를 추진했지만 득세하고 잇는 '매파'들의 힘에 밀려 뜻을 이루지 못한채 물러나게 됐다.

특히 이번 노사정 합의안은 민주노총의 제안으로 시작됐지만 결국 스스로 판을 깬 셈이어서 정부와의 관계는 물론 사회 구성원간의 대화 상대로도 부적절하다는 인상만 남긴 셈이 됐다.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이 온라인으로 진행된 임시 대의원대회에서 노사정 합의안이 부결된 23일 밤 서울 중구 정동 민주노총 사무실에서 퇴근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이 온라인으로 진행된 임시 대의원대회에서 노사정 합의안이 부결된 23일 밤 서울 중구 정동 민주노총 사무실에서 퇴근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매파' 조직적 반대에 노사정 합의안 추인 무산

민주노총은 23일 온라인으로 개최한 71차 임시 대의원대회에서 노사정 합의안에 대해 재적 대의원 1479명의 과반수인 805명의 반대로 부결시켰다.

김 위원장이 중앙집행위원회(중집)에서 노사정 합의안 추인이 무산되자 조합원의 대표인 대의원들의 뜻을 묻겠다며 직권으로 임시 대의원대회를 소집하는 승부수를 던졌지만 정파의 벽을 넘지 못하고 물러나게 된 것이다.

그는 다수의 중집위원들이 정파 논리에 따라 조직적으로 노사정 합의안에 반대한 것으로 봤다.

실제로 민주노총의 최대 정파 조직인 전국회의는 중집에서 노사정 합의안 추인이 최종적으로 무산되기 직전인 이달 2일 성명을 내고 공개적으로 합의안의 폐기를 요구했다.

특히 이들 반대파는 대의원대회를 앞두고 합의안에 반대하는 대의원들의 서명을 받아 그 명단을 공개하는 등 합의안 추인을 저지하기 위해 조직적으로 대응했다.

게다가 반대파는 민주노총이 요구해온 '해고 금지'가 노사정 합의안에서 빠진 점을 집중적으로 공격했다. 해고 금지가 '고용 유지'라는 추상적 용어로 대체됐다는 것이다.

또 노동계가 기업의 노동시간 단축과 휴업 등에 협력하기로 한 조항에 대해서는 사실상 구조조정의 길을 열어준 것이라고 주장했다.

찬성파는 노사정 합의안이 기대에 못 미치지만 노사정 3자 구도의 현실적 제약 속에서 노동계가 얻어낼 수 있는 최선의 내용을 담았다며 반박했다.

또 노사정 합의안의 이행과 후속 논의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현실에 적용되는 구체적인 대책은 달라질 수 있는 만큼, 노사정 합의안을 받아들이고 후속 논의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게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 투쟁 택한 민주노총...사회 구성원 아닌가

노사정 합의안은 정부와 기업, 노동계가 모두 참여해 이룬 타협의 산물이다. 노동계의 일장적인 주장만 담을 수 없는 구조인 셈이다. 

다만 이번 합의안을 바탕으로 서로의 양보를 통해 코로나19를 슬기롭게 극복하고 성과를 이뤄낸다면 그 신뢰를 바탕으로 노동계의 입장도 더욱 강화 할 수 있었다.

민주노총이 그 동안의 강성 일변도의 이미지를 벗고 정부와 사회의 신뢰로 대화의 중심에 설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 대화를 제안한 당사자인 민주노총이 합의안을 걷어찬 것이어서 신뢰에 큰 흠집을 만들었다.

게다가 '비둘기파'인 김 위원장이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면서 민주노총은 상당 기간 장외 투쟁 노선을 걸을 것으로 보인다.

적어도 현 정부 임기 중에는 민주노총이 사회적 대화에 다시 진입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게 노동계 안팎의 관측이다.

그렇다고 민주노총이 코로나19의 어려운 시국에서 대규모 투쟁을 조직해낼 수 있느냐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민주노총이 지난해 수차례 벌인 총파업에도 참여율이 1% 안팎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민주노총이 이런 상황을 타개하지 못할 경우 노동자들을 위해 대화도, 투쟁도 제대로 못 한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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