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양래 한국테크놀로지그룹 회장과 본사 전경. [사진=연합뉴스]
조양래 한국테크놀로지그룹 회장과 본사 전경. [사진=연합뉴스]

【뉴스퀘스트=김호일 기자】 코로나19와 중부지방 홍수로 어수선한 가운데 한국타이어의 지주회사인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이 경영권 분쟁에 휩싸이면서 재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글로벌 타이어 세계 시장 7위의 왕국을 일군 조양래(83) 회장이 차남을 왕위 계승자로 낙점해 상왕의 자리를 건네주려 하자 장녀가 반기를 들고 일어서 이른바 ‘공주의 난’이 발발한 것.

‘혈통 승계’ 고집하는 재벌그룹에서 형제간 분쟁인 ‘왕자의 난’은 종종 발생하지만 시집간 딸이 친정 아버지를 정면으로 공격하는 ‘공주의 난’이 일어난 것은 무척 이례적이다.

논란의 발단은 지난달 30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날 한국테크놀로지그룹 조 회장의 장녀인 조희경(54) 한국타이어나눔재단 이사장은 서울가정법원에 아버지를 상대로 한정후견 개시심판을 청구했다.

이에 앞서 조 회장은 지난 6월 26일 차남이자 막내인 조현범(48) 사장에게 한국테크놀로지그룹 전체 지분의 23.59%, 2천194만주를 넘겨줬다. 블록딜 방식으로 거래돼 전광석화처럼 벌어진 일이다.

성년후견은 노령이나 장애, 질병 등으로 의사결정이 어려운 성인들에게 후견인을 선임해 돕는 제도다. 법정후견과 임의후견으로 구분되며 이 가운데 법정후견은 정신적 제약 정도와 후견 범위에 따라 성년후견, 한정후견, 특정후견으로 나뉜다.

지난 2015년 신격호 당시 롯데그룹 총괄회장에 대해 신 총괄회장의 넷째 여동생인 신정숙 씨가 성년후견을 신청한 전례가 있다. 당시 법원은 신 총괄회장에 대해 한정후견 개시를 결정했다.

이번 조 회장에 대한 성년후견 신청은 과거 신 총괄회장 때와 비슷한 케이스로 향후 조 회장 자녀들간 경영권 승계 다툼이 예상된다.

조 이사장 측은 “조 회장의 평소 신념이나 생각과 너무 다른 결정이 갑작스럽게 이뤄지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분이 놀라고 당혹스러워했다”며 “이런 결정들이 건강한 정신 상태에서 자발적 의사에 의해 내린 것인지 객관적 판단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됐다”고 신청 배경을 설명했다.

특히 조 회장이 지난달 26일 조 사장에게 지주사인 한국테크놀로지그룹 주식 전부를 매각했던 점에 의혹을 표하며 “조 회장은 그 직전까지 그런 계획이 전혀 없다고 말했고, 평소 주식을 공익재단 등 사회에 환원하는 것과 사후에도 지속 가능한 재단 운영 방안을 고민했다”고 주장했다.

조 이사장 측은 또 “대기업의 승계 과정은 투명해야 하고 회사와 사회의 이익을 위해 이뤄져야 할 것이며 기업 총수의 노령과 판단능력 부족을 이용해 밀실에서 몰래 이뤄지는 관행이 이어져서는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무튼 조 회장의 차남인 조 사장은 시간외 대량 매매로 부친 몫인 23.59%를 모두 인수해 지분이 42.9%로 늘었다.

반면 장남 조현식(50) 한국테크놀로지그룹 부회장(19.32%), 조 이사장(0.83%), 차녀 조희원 씨(10.82%)의 지분을 모두 합쳐도 30.97%로 조 사장에 크게 못 미친다. 국민연금이 7.74% 지분을 활용한다 해도 한참 부족하다.

그러나 재계 일각에선 조 이사장의 성년후견 신청은 곧 조 사장에 막대한 지분을 몰아준 조 회장의 뜻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것. 사실상 부친에 대한 선전포고나 다름없다는 뜻으로 읽힌다.

결과적으로 조 회장이 차남을 후계로 낙점한 가운데 장녀인 조 이사장을 주축으로 다른 자녀들이 반발하는 모양새다.

이렇듯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의 경영권 분쟁은 외견상 ‘공주의 난’으로 포장돼 있지만 내부적으론 복잡하게 얽혀있어 해법이 쉽지 않다는 전망도 나온다.

조 이사장의 성년후견 신청에 대해 조 회장은 곧바로 성명서를 내고 “조현범 사장에게 약 15년간 실질적으로 경영을 맡겨 그 동안 좋은 성과를 만들어냈고 회사의 성장에 큰 기여를 했다고 생각했다”며 “충분한 검증을 거쳤다고 판단해서 이미 전부터 최대주주로 점찍어 두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최근 몇 달 동안 가족 간에 최대주주 지위를 두고 벌이는 여러 가지 움직임에 대해 더 이상 혼란을 막고자 미리 생각해 두었던 대로 주식 전량을 매각한 것”이라며 “갑작스럽게 결정을 한 것이 아님을 다시 한 번 말씀 드린다”고 강조했다.

또한 건강하다고도 했다. 조 회장은 “매주 친구들과 골프를 즐기고 있고, 골프가 없는 날은 개인 운동강습(PT)도 받고, 하루에 4~5㎞ 이상씩 걷기운동도 해 나이에 비해 정말 건강하게 살고 있다”며 반박했다.

조 회장은 또 “저는 딸에게 경영권을 주겠다는 생각은 단 한 순간도 해 본 적이 없다. 제 딸은 회사의 경영에 관여해 본 적이 없고, 가정을 꾸리는 안사람으로서 잘살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돈에 관한 문제라면 첫째 딸을 포함해 모든 자식에게 이미 경제적으로 어렵지 않게 살 수 있을 만큼 충분한 돈을 증여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조 회장은 이를 통해 “난 건강하다”며 장녀의 돌발 행동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그러나 여기가 끝이 아니다.

경영권을 넘겨받은 조 사장의 재판이 또 다른 변수라는 지적이다. 조 사장은 하청업체로부터 뒷돈을 받은 혐의 등으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 추징금 6억1천500만원을 선고받았다. 문제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5억원 이상의 횡령·배임을 저지른 경영진은 회사 복귀가 불가능하다는 점. 구속기소 됐던 조 사장은 1심이 진행 중이던 올해 3월 보석으로 풀려나 항소심 재판에 전념하고 있지만 경영에서 물러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장남인 조현식(50) 부회장 역시 온전하지 않다. 그는 한국타이어 사장으로 재직하던 2014년 회사에 근무한 적이 없는 작은 누나 희원씨에게 1억1천여만원의 급여를 지급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1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조 부회장 측은 현재 진행 중인 항소심 재판에서 양형 부당을 주장하고 있다. 희귀병을 앓고 있는 희원씨 아들의 미국 장기치료를 위해 범행한 것으로, 일반적인 기업자금 횡령 범죄와 달리 판단돼야 한다는 것.

이를 두고 희원씨가 이번 경영권 분쟁에서 언니인 조 부회장 편에 서지 않겠냐는 관측도 제기됐다.

조 이사장이 재산상속을 겨냥해 ‘공주의 난’을 일으켰다는 지적도 있다. 한국테크놀리지그룹 지분을 보면 장녀인 조 이사장(0.83%)이 4남매 중 가장 적다. 1%도 안 된다. 여든 셋 고령으로 접어든 부친이나 세인들에겐 “이게 뭡니까?”라는 푸념으로 들릴 수 있다. 향후 재산 상속을 위한 사전포석이란 지적은 이 때문이다.

아무튼 조 회장은 "사랑하는 첫째 딸이 왜 이러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하소연했다. ‘공주의 난’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반응이다. 이 럭비공 같은 경영권 분쟁이 어디로 튈지 귀추가 자못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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