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루스토리]

이기영 논설주간

경영인이었던, 한때 대선후보였던 안철수가 정치인이 됐다. 정치인으로서 첫 발을 안정적으로 내딛은 만큼 다른 무능한 ‘패거리’ 정치인들과 달리, 성실하게 임기 동안 국민을 위한 파수꾼이 되어주길 바라본다. 그렇지만 정치라는 게 ‘정치적 성향’이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가 어떤 마인드를 갖고 있는지는 그의 소중한 정치적 첫 행보를 바라보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다. 그는 민주당을 비롯해 통합진보당 진보정의당 진보신당에 가까운 좌파인가, 새누리당에 가까운 우파인가. 아직까지 명쾌하게 누군가 답을 내놓지도 않았고, 그 역시도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낸 적이 없다. 그렇다고 중도개혁을 추구하는 것도 아니고, 온건보수를 갈망하는 것도 아닌 것 같다. 그저 그는 대선 직전, 언론을 통해 “나는 상식파”라고 답한 게 전부다. 이도저도 대답하기 귀찮을 때 답변하기 가장 쉬운 정답을 선택한 것이다.

새로운 정치인의 대명사이자, 향후 한국사회의 변화를 선봉에서 주도하게 될 인물인 안철수라는 정치인에 대한 성향을 굳이 해부해야 되느냐고 할 지 모른다. 안철수 의원이 평범한 사람들을 지칭하는 ‘장삼이사(張三李四:장씨네 셋째 아들과 이씨네 넷째 아들이라는 뜻)’라면 해당 사항은 물론 없다. 그러나 그는 삼척동자도 알다시피 국가를 앞으로 경영할 의지를 갖고 있는 ‘대선 주자’다. 이 때문에 역대 대선주자들은 시종일관 전방위적 ‘검증’을 받아왔고 일부 정치인들은 정치적  ‘탄압’을 받아왔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대선 주자가 어떤 마인드로 중무장 돼 있느냐는 무척이나 중요한 요소다. 사상의 자유가 있는 것은 대선 주자를 과감히 포기했을 때 해당된다.

극단적 사례이지만 국가 지도자의 이념적 성향이 ‘친북’에 해당된다면 나라의 앞길이 어떻게 될 것인가. 북한이 추구하는 고려연방제 통일과 맥을 같이 하는 사고를 갖고 있다면 나라의 앞길은 위험하기 짝이 없다. 그래서 국가 원수의 마인드가 국가 운영의 ‘나침반 역할’을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국민이 유력한 대선후보의 ‘정체성’ 정도는 알고 있어야 표를 줄 때 고민을 덜 할 수 있다. 안철수 의원의 정치적 목표점이 아직 명쾌하게 밝혀지지 않다 보니, 여야 할 것 없이 너다 나도 ‘안철수’라는 도화지에 자신이 원하는 그림을 그려댄다. 그리고 너도 나도 안철수라는 인물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다양한 ‘인물론’을 만들어 내는 기이한 현상까지 발생한다. 보수층 일각에선 ‘중도 보수’로 판단해 ‘아군’이라고 여기고, 또 한 켠에서는 ‘진보 좌파’라며 선을 긋는다. 진보 진영도 마찬가지다.

필요할 때는 ‘아군’으로 치켜세우고, 불리할 때는 ‘적군’이라며 방패막을 쌓는다. 이런 분위기는 안철수의 모호함 때문이기도 하지만, 내용의 부족함 때문이라는 판단이다. 물론 ‘콘텐츠가 부족한’ 정치인은 수도 많다. 여의도 국회에서 절반 이상은 ‘국회의원으로 자질 부족’에 해당된다. 왜 유독 안철수에게만 ‘콘넨츠’의 충실을 강요하느냐고 반론할 수 있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안철수는 5년 후를 노리는 대선주자다. 홍준표가 대선을 노리면서 진주의료원 사태를 유발, 전 국민의 비난을 한 몸에 받고 있는 것처럼, 대선을 노리게 되면 ‘검증’의 대상이 된다. 그리고 그 기준은 콘텐츠다. 그는 보궐선거 당선 직후 ‘새 정치’와 관련, “낡은 정치를 하지 않는 것”이라고 답했다. 또 “서민과 중산층을 대신해 목소리를 내주는 것, 민생문제를 최우선으로 해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민국 모든 정치인이 선거 때마다 내뱉은 천편일률적인 답변이다. 초등학생을 국회의원으로 시켜도 “서민과 중산을 위한 정치를 한다”고 말하고 “민생을 해결하겠다”고 답한다. 옳은 이야기지만, 옳다고 국민이 판단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지혜와 역량이 가득한 상황에서 새 정치를 추구한다면, 새 정치에 걸맞는 미사어구가 나와야 정상이다. 특히나 대선 직후, 도미를 통해 자아 성찰의 시간을 보냈는데도 이런 교과서적인 답변이 나온다면, 아직도 정치인으로서 장밋빛 청사진을 완성하지 못했다면, 여전히 뜬구름 잡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면 문제는 조금 심각하다. 그래서일까. 애써 폄하하는 것이 아니라 안철수 열기는 지난해 대선 정국과는 사뭇 다르다. 대선과 재보궐 선거의 영향력이 다르기 때문에 그런 것일 수 있지만, 안철수 의원이 만약 대선에 출마하지 않고 재보궐에 먼저 출마했다면 어떤 분위기가 연출됐을까 잠시 상상해본다.

안 의원은 분명 대선 과정에서 상당히 많은 유권자들을 실망시켰다. 야권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잡음을 불러 일으킨 것도 그렇고, 문재인 후보를 적극적으로 도와주지 않은 것도 그렇고, 대선 당일 투표를 마치자 마자 서둘러 출국한 것도 불편한 느낌으로 남아 있다. 그런 비판을 인정하고, 그는 도미를 통해 반성과 성찰의 시간을 가졌다. 하지만 그는 보궐선거 출마 과정에서도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했다. 야권과 진보진영 일각의 반대에도 노회찬 의원이 낙마한 자리를 슬며시 꿰차고 들어갔다. 고난의 행군길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몸이 편한 정치, 기성 정치인들이 보여줬던 행동을 그대로 답습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백전백패하는 곳만 노려 정치적 무리수를 뒀던 것과는 다른 것으로 비쳤다. 그래서 노무현은 1류이고 안철수는 3류라는 평가도 나왔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와 상관없이 안철수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드높은 지지를 받는다. 그래도 안철수가 낫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기존 정당은 이미 ‘아웃’되는 분위기다. 그렇다고 안철수 만큼 깨끗한 인물도 없다. 그래서 안철수를 지지하는 것이다. 안철수 만한 ‘깊이 있는’ 인물이 등장한다면 안철수도 문국현의 뒤를 걸을 수밖에 없다. 안철수 의원은 이제 여의도에 입성했다. 아직은 미숙한 게 많을 것이고 그런 그가 자칫 한계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기존 정치에 매몰되면서 자칫 해서는 안 될 실수를 저지를 수 있다. 낡은 정치, 구태 정치와 선을 긋는 행동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무모한 도전’을 했던 정치인이 어디 한 둘 일까. 안철수가 안철수가 되려면 철저히 노무현처럼 행동해야 한다. 앞으로 사회적 이슈와 현안에 대해선 분명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 공격을 당하더라도 당당하게 목청을 높여야 한다.

회색지대, 사각지대에서 생존을 하더라도, 왕따를 당하더라도, 공격을 당하더라도, 외면을 당하더라도, 새 정치를 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면 기존의 두루뭉술한 화법은 버려야 한다. 그래야 지지자들이 돌아온다. 안철수의 도전은 시작됐다. 차기 대권주자로 당당히 자리매김할지, 아니면 다수 속의 소수로 존재할지는 전적으로 그에게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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