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퀘스트=김재준 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아침 7시 반쯤 됐을까?

벌써 이마에 땀이 줄줄 흐른다. 물을 많이 들이켜 15킬로그램 되는 배낭을 메고 오르니 땀이 흐르는 것은 인체의 순리 아니던가?

하늘 가까운 곳에 우산고로쇠, 마가목이 상층을 이루고 그 아래 조릿대, 관중, 박새, 두루미 꽃이 어울려 살아가는 식물들 사회는 정직하다.

산나물을 뜯는 할머니들이 간혹 보인다.

저마다 “채취허가증”을 달고 있어서 한편으론 야속하다는 생각도 들지만 섬에 오는 관광객들마다 마구잡이로 뜯어가니 오죽했으면…….

“수고하십니다. 나무 이름이 뭐죠?”

“말지름대.”

상처 나는데 붙이면 좋다며 푸성귀 한 움큼 건넨다.

“미끄러운데 조심하세요.”

육지에서 볼 수 없는 진기한 생명체들

말오줌대를 접골목(接骨木)이라고 한다.

조상들은 뼈가 부러지거나 삐었을 때, 타박상, 류머티즘에 빻아 붙이거나 태워서 약으로 썼다고 알려져 있다.

접골목류에는 말오줌대, 딱총나무, 지렁쿠나무들이 있는데 변이가 심해서 이들을 구분하기에 애매한 부분이 없지 않다.

삼나무와 두루미꽃 군락지를 지나자 계곡의 그늘에는 쌓인 눈이 아직도 남아 있어 벚나무꽃과 대조를 이룬다.

7시 45분경 갈림길(성인봉1.6·도동2.5킬로미터) 근처에 이르자 드문드문 피나무가 섰고 너도밤나무 군락지.

산벚나무와 섞여있거나 단일수종인데 10~20미터 키에 둥치 굵기는 거의 60센티미터다.

나리분지, 멀리 송곳바위가 보인다.
나리분지, 멀리 송곳바위가 보인다.

산을 절반정도 올라서자 박새인 듯 초롱꽃 이파리인 듯 동남쪽 비탈면을 빼곡히 덮고 있다. 마늘 냄새가 나는 걸 보니 분명 산마늘이다.

개척 당시 굶주림에 생명을 이어준 나물이라 해서 명이·산마늘로 불리는 백합과 식물이다.

울릉도, 오대산, 지리산, 설악산과 중국, 일본에도 자란다.

강원도 지역은 잎이 길고 울릉도는 둥근 타원형이다.

이른 봄 눈 속에서도 나오며 이뇨, 해독, 구충, 감기에 좋고 비타민이 많다고 알려져 있다. 박새, 초롱꽃, 산마늘은 모두 백합과 식물이지만 박새와 은방울꽃은 독이 있어 중독사고가 잦다.

나무 정자에 서니 아침 8시다. 동해 너머 먼 바다 아득하고 저동항구가 눈앞에 왔다.

여기서 성인봉까지 1.3킬로미터, 너도밤나무 길 따라 산마늘, 두루미꽃, 고비, 관중…. 남향으로 경사가 보통인데 산마늘이 많다.

천연기념물 성인봉 원시림은 숲이 저절로 생겨 다행히 그대로 남아있다.

정상으로 올라갈수록 조릿대가 많은데 접두사 “섬” 자가 붙은 섬단풍, 섬피나무, 섬말나리, 섬바디…….

단연 너도밤나무가 주인이지만 우산나리, 섬현호색을 만난 것은 30분 더 오른 곳이다(성인봉1.1·도동3킬로미터, 안평전은 거리표시 없다).

울릉도 정상 성인봉.
울릉도 정상 성인봉.

8시 50분 성인봉 해발 984미터.

옛날 나물 뜯던 처녀가 날이 저물자 사람들은 횃불을 들고 찾아 헤맸으나 허사였다. 여러 날 지나 낭떠러지 바위에서 실신한 처녀를 구한다.

나물 뜯다 잠깐 누웠더니 수염이 긴 할아버지가 나타나 대궐로 따라갔는데 퉁소 소리에 그만 잠들었다고 했다. 그 뒤로 성인봉(聖人峰)이라 불렀다.

정상엔 사람들이 많아 표지석 앞에 서려니 한참 기다려야 했다.

멀리 보이는 바다는 검은색 물결을 일렁이고 발밑으로 나리분지가 펼쳐져 있다. 일행들과 나리분지에서 만나기로 했으니 바쁘게 약수터 방향으로 내려선다.

9시경 약수터에 눈이 쌓여 차가운 기운은 겨울 날씨처럼 매섭다. 물맛이 일품. 물소리 졸졸졸 흘러가는 샘터에 앉으니 손가락 시려서 마디마디 얼얼하다.

나리분지로 내려가며 솔송나무·두메오리, 울릉국화·고추냉이·섬백리향·노루귀 등 각종 희귀군락을 볼 수 있다. 한라산, 지리산, 백두산 등에 버금갈 정도로 특산식물들이 많다.

발아래 올망졸망 핀 꽃을 몰라 묻는다.

“지금 렌즈로 보는 것이 무슨 꽃입니까?”

“독도제비꽃.”

“처음 발견한 식물인데 독도제비꽃이라 불러주세요.”

야생화연구원이라는 대여섯 명이 사진을 찍다가 친절하게 말해 준다.

근접촬영을 하는데 엄숙할 정도로 공을 들이고 있었다.

꽃받침 뒷모습이 노루귀처럼 보인다고 섬노루귀, 설악산에는 그냥 두루미꽃, 여기서는 큰두루미꽃이다.

육지에선 뫼제비꽃이지만 울릉도에서 난다고 독도제비꽃인데 처음 불러주는 이름이니 많이 알려 달라고 한다.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인 주도로 시작된 울릉도 식물연구가 한국전쟁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진행됐다.

이처럼 민간분야까지 영역을 넓혔으니 독도로 인해 울릉도가 유명해졌을 것이다. 멸가치 군락지를 지나 10시경 부지깽이 군락지에 다래순이 좋다.

섬다래라고 해야 할까?

올라가는 길을 넓히려는 듯 공사자재들이 널브러졌고 주변은 어수선하다.

계곡물소리 들리고 너도밤나무 줄을 섰다. 솔송나무 드문드문 어느덧 나리분지 가는 길, 신령수 도착시간이 10시 반경이다(나리분지1.6·성인봉2.1킬로미터).

물 한 잔 마시고 말오줌대, 산벚이 아닌 섬벚, 바디나물도 섬바디, 섬자리공, 섬모시대, 주름제비란……. 투막집에 들러 송곳산을 배경으로 한 장 찍는다.

섬백리향, 울릉국화 군락지에는 목책으로 둘러쳐져 있다. 회솔은 주목과(科), 솔송나무는 소나무과(科)이지만 둘 다 울릉도 자생식물이다. 10시 35분경 일행들을 만났다.

최과장은 모시딱지라고 하며 두루미꽃을 묻는다.

“스마트폰을 큐알(QR)코드(주2)에 대면 다 알려주는데요.”

왕소장 부인이다.

“소나무, 참나무 등 기본적인 것은 알 수 있지만 식물들은 환경적 요인들에 의해 변이가 심하기 때문에 기대수준의 인식은 불가능합니다.”

두루미꽃을 명이나물로 잘못 알고 몸에 좋다고 한다.

나리분지 숲길.
나리분지 숲길.
두막집.
두막집.

11시 반경 소나무 길이다.

나리분지 긴 숲길, 공군부대 지나 나리분지 식당에 도착하니 남근모양의 수도꼭지를 빠는 상스런 여자들이 깔깔댄다.

호박막걸리, 당귀, 천궁, 더덕 씨를 갈았다는 술로 목을 축이는데 “씨~ㅂ 껍데기 술”이란다. 상술치고 저질스럽기는 매 한가지다.

주말부부는 삼대에 덕을 쌓아야 한다느니, 애인 없으면 장애인이라는, 삼식이 등 천박스럽게 지껄이고 있다.

저급한 것들을 모른 채 하면 졸지에 동조자나 방관자가 되니 역겹지만 어떻게 참견을 아니 할 수 있나. 자연에 대한 찬미와 설렘은 이곳에서 망쳤다.

아쉽지만 12시 반에 출발이다.

성인봉 등산코스는 울릉읍 도동리 대원사 또는 KBS 방송국이나 안평전에서 시작해서 나리분지를 거쳐 북면 천부리로 내려오는데 어느 곳이나 5~6시간 정도 걸린다. 거꾸로 나리분지를 시점으로 해서 오르기도 한다.

울릉도는 해저 2천 미터에서 솟아오른 용암이 굳어져서 생긴 화산섬으로 죽도, 관음도, 독도 등 부속 섬이 많고, 해안선이 대략 56킬로미터에 이르며 바다 깊이는 근해 1천 미터 정도로 깊다.

강수량 1,300밀리미터 정도지만 북서계절풍으로 40퍼센트가 눈으로 내리는데 평균 적설량이 1미터.

눈이 가장 많이 내리는 곳이기도 하다.

나리분지에 최고 3미터까지 쌓이기도 한다. 연평균 기온 섭씨12도, 온난다습한 해양성 기후로 난·온대 식물이 섞여 자라는 특이하고 다양한 생태계여서 식물·지리학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곳이다.

육지에서 가장 가까운 곳은 대략 128킬로미터 거리인 죽변, 묵호161·강릉184·포항217, 독도까지 87킬로미터 거리에 있다.

오후 3시 포항으로 가는 배를 타야 하니 북면 소재지를 나와서 오후 1시경 현포(玄圃) 대풍령에서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대풍헌에서 오는 배를 기다리는 곳. 울진 기성면 구산리에 대풍헌(待風軒)이 있다.

순풍을 기다리는 집으로 수토사(搜討使)가 울릉도를 수토(시찰)할 때 바람을 기다리던 곳이 대풍령·대풍감이었다.

조선시대에 울릉도와 독도를 실효적인 영토로 관리하여 왔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울진에서는 울릉도로 항해하는 수토사 뱃길행사를 열고 있기도 하다.

나리분지와 현포, 멀리 바다에 구멍바위가 보인다.
나리분지.
현포, 멀리 바다에 구멍바위가 보인다.
현포, 멀리 바다에 구멍바위가 보인다.

대풍감(待風坎), 감(坎)은 구덩이나 구멍을 뜻하니 바위구멍에 닻줄을 매어 놓고 바람을 기다리던 곳 아니던가?

돛단배가 다니던 시절 육지로 부는 바람을 기다리던 곳이다.

현포마을 바다 위에 떠있는 구멍바위, 송곳산과 바로아래 노인봉, 포구의 하얀 등대와 어우러져 천하비경을 연출한다. 발을 떼기 어려운 울릉도 제일의 절경이 여기다.

경치에 취하다 근처 호박엿 공장에 들러 엿을 샀다.

울릉도 호박은 햇볕과 강우량이 적합하고 토질이 좋으며 당도가 높아서 엿으로 인기가 있다.

원래 옥수수에 후박나무껍질을 섞어 후박엿을 만들었는데 나중에 호박엿으로 바뀐 것. 후박나무 껍질(厚朴皮)을 한방에서는 기관지와 위장약으로 썼다.

태하, 학포, 구암, 남양 최과장 댁을 거쳐 도동항에 도착한다. 3시 30분 포항을 향해 출발하는데 바다 날씨가 좋다.

길게 따라오던 갈매기 울음은 이내 뱃고동 소리에 묻혀버렸다.

울릉도 호박엿으로 유명한 후박나무.
울릉도 호박엿으로 유명한 후박나무.

<탐방로>

● 정상까지 4.1킬로미터 1시간 50분, 성인봉에서 나리분지까지 3.7킬로 2시간 정도

KBS방송국 입구 → (20분)갈림길 → (45분)두 번째 갈림길 → (15분)나무정자 → (5분)명이군락지 → (45분)성인봉 → (5분)약수터*25분 휴식 → (50분)신령수 → (10분)투막집 → (1시간 10분*식물관찰 지체)나리분지 마을

* 2~5명 걸은 보통걸음 평균 시간(기상·인원수·현지여건 등에 따라 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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