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시음회에서 와인 꼰대 되지 않는 법

와인 테이스팅 스탠드. [사진=플리커닷컴]
와인 테이스팅 스탠드. [사진=플리커닷컴]

【뉴스퀘스트=이철형 와인 칼럼리스트】 생산이 수요를 초과하면서 ‘고객은 왕’이란 슬로건이 등장했고 이것은 ‘고객은 무조건 옳다’라는 말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

하지만 서비스업 종사자의 인권도 인권이라는 인식이 사회에서 공감을 얻으면서 ‘고객이 왕이 아니라 품격있는 고객이 왕이다’라는 슬로건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일부 몰지각한, 소위 갑질하는 고객들 탓에 생겨난 말이다.

이들은 고객을 매일 상대해야 하는 서비스업 종사자 입장에서 진상이라고 부르는 고객들이다.

와인의 경우는 맛과 향을 즐기는 상품이기에 상대적으로 감성이 풍부한 사람들이 주고객이다.

이미지상 어느 정도 교양있고 품격있는 사람들이 즐기는 상품이라는 선입견이 작용해서인지 속칭 ‘진상 고객’은 없을 것 같다고들 한다.

하지만 세상이 어디 그런가?

이 시장에도 당연히 진상은 존재한다. 진상의 유형이 다른 상품이나 서비스들과 유사한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을 수도 있다.

와인의 세계에 있다 보면 꼴불견 고객들이, 서비스하는 직원들을 속상하게 만들고 옆에서 지켜보는 다른 고객들에게 불쾌감을 주거나 일행을 당황하게 만드는 경우를 가끔 보게 된다.

소수의 꼴불견 고객이 되지 않고 우아하고 품격있는 고객이 되어 서비스를 하는 사람도 기분 좋고 받는 사람도 더 잘 대접받는 화기애애한 식음 문화 분위기 조성을 위해 업계 종사자들 사이에서 오가는 꼴불견 이야기를 상황별로 유형을 모아 보았다.

설마 이런 유형의 고객들이 있을까 싶지만 업계 종사자들의 경험담들을 수집한 것이니 실제로 존재하는 셈이다.

현장 종사자들이 말하는 진상 고객들의 사례를 살펴봄으로써 이를 반면교사로 삼으면 최소한 꼴불견 고객, 와인 꼰대는 되지 않을 수 있다.

[사진=위키피디아]
[사진=위키피디아]

이번 칼럼에서는 이 중에서도 시음회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와인 꼰대 유형의 사례를 모아보았다.

와인은 그 다양성과 마셔봐야 구매한다는 특성 때문에 특정 브랜드만의 시음회나 마케팅 차원에서 여러 생산자의 브랜드를 묶어서 개최하는 시음회 등 다양한 시음회의 기회가 주어진다.

이제 그 시음회 현장에서 벌어지는 기피 대상 고객의 유형을 들여다보며 혹시 내가 해당하지 않는지 알아보자.

첫째가 와인에 대한 욕심이 과한 유형이다.

어차피 다 마시지도 못할 시음주를 그것도 여러 가지를 시음해야 하기에 뱉아야 할 시음주를 더 달라는 분들이 상당수 있다.

반대로 향과 맛을 보기에 충분하지 않을 정도로 조금만 달라는 분들도 있기는 하다.

시음장에서 가장 현명한 행동은 시음주를 따라주는 대로 받으면 된다는 것이다.

시음을 시키는 입장에서는 시음자가 취하지 않으면서도 충분히 음미하기를 원하기에 적당량을 따라주게 되어 있다.

물론 고가 와인인 경우에는 좀 아쉽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조금 따르는 경우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향과 맛을 음미하여 그 가치를 느끼기에는 충분하다.

둘째는 시음이 아니라 아예 처음부터 마셔서 취해버리는 유형이다.

와인을 맛을 본 다음 뱉어서 취하지 않아야 다양한 와인을 제대로 평가해볼 수 있는데 그 기회를 스스로 포기하는 유형이다.

시음회에서는 사실 버리기 아까울 정도로 아주 자기 맘에 드는 와인 조차도 처음에는 스핏통에 뱉어 내야 한다.

시음회에 나온 와인을 다 시음해본 후에 다시 그 마음에 드는 와인을 추가로 시음하면서 마시면 된다. 물론 나중까지 남아 있다는 보장은 없다.

주최측에서 한정된 수량을 시음주로 가지고 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수의 입맛이 유사하기에 내가 맛있다는 와인은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확률이 높아 빨리 소진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기도 하다.

셋째는 다양한 브랜드의 시음회가 아니라 특정 브랜드를 홍보하는 시음회에 와서 경쟁사의 다른 브랜드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칭찬하는 유형이다.

특정 브랜드의 와인에 대한 자신의 솔직한 느낌을 이야기하고 궁금한 것을 물어보고 확인하여 그 와인에 대한 깊이를 더하는 계기로 삼으면 될 것을 굳이 경쟁사 브랜드를 들먹이며 자신의 와인 지식과 경륜을 자랑하는 유형이다.

남의 잔치에 와서 재 끼얹는 상황을 만드는 것인데 이런 사람일수록 알고 보면 와인에 대한 지식이나 경험이 오히려 과대 포장된 경우가 많다.

넷째는 가격대를 고려하지 않고 저가 와인 시음회에서 고가 와인과 비교하며 맛이 없다고 말하는 유형이다.

와인은 가격이 품질을 대변할 확률이 높은 상품이다. 십만원 가격대의 시음회에 와서 자신이 마셔본 일백만 원짜리 명품 와인과 비교하며 맛이 없다는 식이다.

이것은 권투 경기에서 플라이급과 헤비급을 대결시켜 놓고 플라이급이 권투 못한다고 비난하는 것과 같다.

플라이급 경기는 그 경기대로의 묘미가 있는데 그걸 즐기지 못하는 것이다. 이 역시 그 정도의 비싼 와인을 마셔봤다는 자기 자랑밖에 되지 않는 셈이다.

다섯째는 와인 스포일러가 되어 주최 측의 빈축을 사는 유형이다.

라벨을 가리고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통해 와인을 평가하는 자리에서 굳이 가린 것을 열어서 브랜드를 확인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와인 컨슈머 리포트같이 상위 입상 제품만 공개하는 블라인드 품평회에서 개인의 호기심을 해결하려는 사람들이 이 유형이다.

심지어는 평가하고 남은 와인들을 자기 마음대로 가져다가 같은 테이블의 평가자들과 나누어 마시는 사람들도 있다.

입상한 와인이야 공개할수록 홍보가 되어 좋겠지만 입상하지 못한 와인을 수입한 수입사의 입장도 고려해주는 속 깊은 배려가 요구된다. 더구나 SNS시대인데.

여섯째 여러 시음주 중에서 그냥 ‘아무거나’ 달라거나 또는 ‘제일 비싼 것만’ 달라는 유형이다.

여러 종류가 진열된 시음대 앞에서 아무거나 한 잔 달라는 사람은 와인 시음을 하러 온 것이 아니라 공짜로 또는 저렴한 비용으로 와인을 마시러 온 성의 없는 사람으로 여겨진다.

한술 더 떠서 이 중에 제일 비싼 와인이 무어냐고 묻고 그것만 한잔 달랑 받아 마시고는 다른 시음테이블로 이동하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나쁜 와인을 마시기에는 인생은 너무 짧다’는 와인 격언도 있지만 이렇게 고가만 마시면 상대적으로 그 와인이 좋다는 것을 과연 느낄까 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유형이다.

그냥 ‘나, 그 와인 마셔봤어’ 라는 자랑을 하기 위해 시음회에 참여한 사람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아니면 다양한 와인을 마셔봐야 품질이 좋은 와인이나 자신의 입맛에 맞는 와인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모르고 그냥 가격을 마시는 꼴이 된다.

일곱째 남은 시음주를 집에 가져가겠다고 따로 싸 달라는 유형이다.

시음하고 남은 와인은 아깝지만 버리는 것이 원칙이다.

이미 오픈해서 최소 서너 시간이 경과한 와인일 수 있기에 여기에 집으로 가져가는 시간을 더하면 집에서 마실 때 변질되지는 않았을지라도 최상의 맛이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얼마나 맛있으면 싸 달라고 할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최상의 맛으로 평가받고 싶은 공급사나 판매자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난감한 이야기가 된다.

사실 좋은 인상을 남긴 경우 여러 공급사의 브랜드를 홍보하는 시음회에서는 시음회가 종료될 때쯤 오면 오픈하지 않은 채 남은 와인이 있으면 주겠다고 공급사 측에서 미리 귀뜸해 주는 경우도 가끔 있기는 하다.

말 한마디가 천 냥 빚을 갚는 경우이다.

여덟째 다른 사람이 시음주를 받고 있는데 밀치고 들어오거나 시음대 앞을 가로막고 서서 장시간 머무르는 바람에 다른 사람이 시음주를 받을 수 없게 하는 유형이다.

시음회는 개최한 측이나 참석자들 나름 시간 제약이 있기에 빠른 진행을 필요로 한다.

최대한 짧게 요약해서 질문하고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다 싶으면 적당히 상황을 봐서 그 부스가 한가할 때 다시 방문해서 궁금증을 해소하는 매너가 필요하다.

사실 시음회 시간이 흐를수록 이런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지는데 시음을 위해 마시지 않고 뱉아도 여러 종류를 테이스팅 하다가 보면 은근히 취기가 오르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주변 상황에 대한 감각이 둔해지고 말이 많아지는 경향이 있기는 하다.

아홉째 화장을 짙게 하거나 향수를 진하게 뿌리고 시음회에 참석하거나 김밥이나 오징어 같은 진한 향의 안주를 가져오거나 시음회에서 와인 안주 달라고 하는 유형이다.

와인 시음회에서 향과 맛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이를 방해하는 요소는 최대한 피해야 한다. 여기에 피크닉 오는 것도 아니고 말 그대로 향과 맛에만 집중해야 하는 장소에서 무료 시음회에 와서 안주까지 요구하는 상황이 되면 주최측 입장에서는 할 말을 잃게 된다.

열번째 시음잔이나 전시 시음주를 몰래 가져가는 유형이다.

7080시대에는 찻집에서 예쁜 찻잔이나 독특한 스푼을 몰래 슬쩍 가져가던 것이 낭만으로 용인되던 전설같은 시대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이는 사실상 절도 행위인데 이걸 감행하는 용감(?)한 분들이 가끔 있다고 한다.

더구나 무료 시음회에 와서…

소소하게는 시음잔을 자주 바꿔달라는 사람이 있다.

대개는 물로 헹궈서 다시 사용하면 되는데.. 물론 전혀 다른 유형의 와인을 테이스팅할 경우에는 잔을 바꾸는 것이 오히려 와인을 만든 사람에 대한 예의일 수는 있다.

제대로 헹구지 않아 와인이 섞이면 오롯이 그 와인만의 풍미를 느낄 수 없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가 끝나고 마음 놓고 시음회를 즐길 수 있는 날이 와서 시음회에 가게 되면 한번 유심히 관찰해보시라.

반드시 이 열 가지 유형 중에 적어도 한두 유형에 해당하는 사람이 눈에 띄게 마련이다.

저작권자 © 뉴스퀘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