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17일 트로트 가수 임영웅의 팬클럽 '영웅시대' 광주·전남 지역 회원들이 광주시청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극복을 위한 기부 물품을 전달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광주광역시 제공(연합뉴스)]
지난 7월 17일 트로트 가수 임영웅의 팬클럽 '영웅시대' 광주·전남 지역 회원들이 광주시청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극복을 위한 기부 물품을 전달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광주광역시 제공(연합뉴스)]

【뉴스퀘스트=오광수 시인/대중문화평론가】 ‘미스터 트롯’으로 하루아침에 스타가 된 가수 임영웅의 팬클럽 영웅시대가 8억9000만 원을 수해지역 지원에 써 달라고 기부했다는 소식이다.

이뿐만 아니라 영웅시대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기부를 실천하면서 훈훈한 미담을 이어가고 있다.

영웅시대의 현재 공식 팬클럽 가입자 수는 무려 13만 명에 이른다.

웬만한 아이돌스타의 팬덤이 부럽지 않은 숫자다.

그룹 BTS(방탄소년단)의 국경과 언어를 초월한 팬덤인 아미(army)가 그들을 빌보드 HOT 100의 1위 자리에 올려놓은 건 이미 뉴스가 아니다.

그런데 주로 40대를 전후로 한 임영웅의 팬클럽이 10만여 명이 넘어가는 건 놀라운 일이다.

일시적으로 몰아닥친 트로트 열풍의 산물이라고 하기에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어쩌면 우리 사회가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다는 증거일 수도 있다.

팬덤문화를 다른 말로 덕후라고 부른다.

일본어 오타쿠(御宅)를 한국식으로 발음한 ‘오덕후’의 줄임말로, 어떤 분야에 몰두해 전문가 이상의 열정과 흥미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일컫는다.

그들이 하는 모든 행위를 ‘덕질’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덕후의 출발은 언제부터였을까?

이른바 팬클럽으로 부를만한 문화가 생긴 것은 80년대 ‘오빠부대’의 탄생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스타의 집 앞에서 밤샘하며 기다리거나 행사장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찾아가는 열성 팬들을 그 시절에 ‘오빠부대’라고 불렀다.

1970년대에도 남진과 나훈아를 추종하는 여성 팬들이 있었지만, 본격적으로 조직화 된 팬덤은 조용필부터 출발했다.

당대 최고의 가수였던 조용필에 열광하는 여성 팬들이 그들이었다.

‘슈퍼스타’, ‘국민가수’ 등의 찬사가 따라붙는 조용필에게 빠질 수 없는 수식어가 ‘영원한 오빠’다.

그가 무대에서 “기도하는…”이라고 노래할 때 객석의 팬들은 “오빠”를 외치면서 열광했다.

그 팬클럽들은 지금도 조용필의 공연마다 맨 앞자리를 차지하는 열성팬들이다. 현재는 1997년 결성된 ‘이터널리’를 비롯해 1999년 출발한 ‘미지의 세계’, 2001년 출발한 ‘위대한 탄생’까지 3개 팬클럽이 ‘원조 오빠부대’로서 위엄을 자랑한다.

이제 팬클럽은 ‘오빠부대’를 넘어서서 우리시대의 문화를 소비하고 이끌어가는 ‘제3의 문화권력’으로 진화했다.

과거 팬클럽이 무분별하게 스타를 추종하는 충동적이고 자의식이 부족한 10대 여학생들의 모임 정도로 인식되었으나 이제는 대중문화를 주도해가는 주체세력으로 떠오른 것이다.

맹목적으로 스타를 따르는 단순한 형태의 팬덤은 사라지고 스타를 진정으로 아끼면서 애정을 바탕으로 사회봉사 활동을 펼치는 등 제3의 이데올로기를 형성해 간다.

이들은 스타의 생일날 대형광고판에 광고하기도 하지만, 좋아하는 스타와 팬클럽 이름으로 성금을 맡기고 자원봉사활동까지 마다하지 않는다.

요즘 임영웅의 팬클럽을 보면서 KBS ‘겨울연가’가 NHK에서 방송된 이후 형성된 배용준 팬클럽이 떠올랐다.

오광수 시인/대중문화평론가.
오광수 대중문화전문기자

당시 욘사마에 열광하던 일본의 중년 여성팬들은 10대의 천국이 된 대중문화계에서 철저하게 소외당하고 있을 시기였다.

그들에게 그들의 남편도 말릴 수 없는 열광의 대상이 생긴 것이다.

어쩌면 우리도 ‘오빠부대’들이 중년의 나이가 되면서 자연스럽게 ‘동생부대’를 형성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동안 열광할 대상이 없었을 뿐이지 언제든지 열광할 준비가 돼 있었던 팬들이 드디어 반란을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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