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태양광 사업은 섶을 지고 불에 뛰어든 격
으리도 좋지만 고언과 충고, 창조를 위한 파괴적인 비판 등 못참아

【뉴스퀘스트/베이징=전순기 통신원】 한화그룹(이하 한화)은 한국의 대기업 집단들 가운데 유독 중국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많다.

아마도 선대 창업주가 젊은 시절 중국을 무대로 한 독립운동에 이런저런 관계를 밀접하게 가졌기 때문이 아닌가 보인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굳이 다른 사례를 들어볼 필요도 없다.

독립투사 최동오와 유동열의 친, 외손자인 재독 교포 최건국 씨가 중국에 베이스캠프를 둔 채 대북 사업을 전개할 때 그룹 차원에서 전폭적이고도 파격적인 지원을 불과 수년 전까지 대략 30년 동안이나 해준 사실만 봐도 바로 알 수 있다.

장쑤성 난퉁 치둥에 소재한 한화차이나의 태양광 공장 전경/제공=징지르바오(經濟日報)
장쑤성 난퉁 치둥에 소재한 한화차이나의 태양광 공장 전경/제공=징지르바오(經濟日報)

당연히 금세기 전후한 시점부터는 그룹 차원의 중국 사업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지난 세기 말에 지금도 오지 중 오지인 신장(新疆)위구르자치구 우르무치(烏魯木齊)에 세제원료 공장을 가동하기 시작한 것이나 2003년 11월 초 베이징 켐핀스키 호텔에서 빌 클린턴 전 미 대통령까지 초청해 대한생명의 중국 진출 기념식을 연 것은 결코 괜한 게 아니었다.

이런 행보는 2011년 6월 중국 사업을 총괄하는 한화차이나의 출범을 가능케 했다.

당시 한화 수뇌부는 2020년 무렵 중국 매출액을 10조 원까지 올린다는 목표도 내건 바 있었다.

하지만 현재 이 청사진은 완전 언감생심이 돼버렸다.

한화차이나가 정확한 수치는 밝히고 있지 않으나 목표의 절반도 달성하지 못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영업 이익 역시 처참한 수준이라고 보면 틀리지 않는다.

그룹 전체의 실적을 한화차이나가 까먹고 있다는 불만이 한화 맨들의 입에서 나온다면 더 이상 설명은 사족이라고 할 수 있다.

10조 원 매출 목표를 내건 것이 머쓱하게 된 이유는 너무 많아 일일이 헤아리기조차 어렵다.

우선 사업성을 면밀하게 검토하지 않은 채 제조 및 무역, 금융, 서비스, 레저 등 그룹의 웬만한 사업을 거의 모두 다 진출시킨 사실을 꼽을 수 있다.

중국 내 법인과 지사가 각각 9개, 10개에 이르는 현실은 무엇보다 이 막무가내 행보를 잘 말해주지 않나 싶다.

한마디로 문어발 형태의 사업 스타일을 중국에서도 그대로 재현한 것이다.

당연히 경쟁력이 약한 분야에서는 적자나 영업 부진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대표적으로 태양광 사업을 꼽아야 할 것 같다.

중국이 제품의 저가 공세를 통해 이 분야의 세계적 강국으로 도약한 사실을 모르지 않는다면 재삼 사업을 고려해야 했으나 전혀 그렇지 않았다.

반대급부는 혹독했다.

대규모 자금을 투자한 장쑤(江蘇)성 난퉁(南通)의 치둥(啓東) 공장이 악전고투하고 있다.

적자에 시달리던 태양광 웨이퍼 공장을 매각도 아닌 폐쇄를 선택해 처리한 것은 크게 이상할 것도 없었다.

30년 동안 한화에서 근무한 후 퇴직, 베이징에서 개인 사업을 하는 P 모씨의 한탄을 들어봐야 이해가 좀 더 잘 될 듯하다.

“중국은 태양광 사업에 관한 한 독보적이다. 저가 공세를 통해 한국의 경쟁업체들을 무너뜨리기까지 하고 있다. 그렇다면 중국 진출을 신중하게 생각해야 했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에 들어가야 한다는 말이 있으나 한화의 판단은 진짜 잘못됐다. 오히려 섶을 지고 불에 뛰어든 격이 아닌가 보인다. 너무 앞뒤 재지 않고 사업에 나섰다고 본다.”

중국통 전문가의 부재 역시 뼈아픈 이유로 손색이 없다.

한화에 중국어과를 비롯해 중국 관련 학과를 나온 인재, 유학생 출신들도 분명 많이 있는 만큼 중국통 전문가가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될 수도 있다.

실제로 지난 25년여 동안 베이징을 비롯한 대륙 곳곳의 법인과 지사에 이들 인재들이 많이 파견돼 활약하기도 했다.

하지만 단순히 필요조건에 불과한 중국어를 그저 잘한다고 해서 중국통으로 불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중국인이 아니면 모를 문화에 대한 광범위한 이해, 폭넓은 인맥 보유 등의 조건들까지 갖춰야 비로소 진정한 중국통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인재는 그저 길러지지 않는다.

중국에 오랫동안 주재하게 한다거나 대학 등에서 본격적인 공부를 하게 만드는 등의 그룹 차원의 노력이 뒷받침돼야 탄생할 수 있다. 하지만 한화는 이런 노력을 별로 기울이지 않았다.

한화가 저장(浙江)성의 둥팡(東方)금융그룹과 합자로 설립한 생명보험 회사인 중한런서우(中韓人壽)와 현지 기업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 협약식 전경. 애매한 지분 구조로 인해 중한런서우의 한화 색채는 거의 없어졌다고 해도 좋을 듯하다./제공=징지르바오.

하의상달이 어려운 기업 문화도 거론해야 할 것 같다.

한화는 전통적으로 의리를 최고 덕목으로 생각하는 그룹으로 유명하다.

크게 나쁠 것은 없다.

그러나 이 덕목이 너무 강조되다 보면 서로에게 싫은 소리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게 된다.

급기야는 활발한 토론은 물론이고 아랫사람의 의견이 윗사람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는 것이 기본이 된다.

고언과 충고, 창조를 위한 파괴적인 비판 등도 쉽게 용납되지 않게 된다.

설사 한 단계를 넘어서더라도 다음 고개를 넘지 못한다. 사업과 관련한 참신한 아이디어가 사장되는 경우가 많을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젊고 유능한 인재들은 좌절하지 않을 수 없다.

시간이 갈수록 충성심도 떨어지게 된다.

일부는 뒤도 안돌아보고 그만둔 후 한화에서 익힌 노하우로 개인 사업에 나선다.

중국 내에서 이런 케이스가 가장 많은 그룹이 한화라는 사실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기도 하다.

상하이(上海) 법인의 L모 차장이 베이징 지사에서 근무할 때 토로한 기업 문화를 상기해야 할 것 같다.

“한화의 기업 문화는 단순하게 생각하면 정말 좋다. 의리를 중시하는 가족주의적 문화가 전통이니까. 하지만 기업에서 이러면 득보다 실이 더 많을 수 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못하면 조직이 잘 돌아가겠는가. 내 동기와 선후배들이 많이 그만 둔 것을 지금도 이해할 수 있다.”

이외에도 한화의 사업이 중국에서 성공적이라고 하기 어렵게 된 이유로는 홍보와 현지화 부족 등을 더 꼽을 수 있다.

나아가 저임금에만 너무 혹했다거나 자국 기업을 우선하는 애국주의의 위력을 무시한 것에서 알 수 있는 혜안 부족 역시 간과해서는 안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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