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공내전 당시 황무지서 자급자족하던 팔로군의 '타산(塔山)'프로젝트 선언
미국의 제재에도 불구 반도체 굴기(崛起) 달성

【뉴스퀘스트/베이징=전순기 통신원】 화웨이가 자신들만의 독특한 ‘늑대정신’의 발양을 통해 미국이 깜짝 놀랄 만큼 초스피드로 승승장구한 것은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그러나 6∼7년 전만 해도 미국은 화웨이를 지금처럼 엄청나게 위협적인 존재로 인식하지는 않았다.

아무리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말이 있다고 하더라도 설마 했던 것이다.

하지만 중국 정부가 2014년과 지난해 10월 두 차례에 걸쳐 조성한 1200억 위안(元·20조4000억 원)과 2000억 위안 규모의 반도체 펀드 지원을 등에 업고 기적을 창조하자 완전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가만히 놔둬서는 안 된다는 판단을 드디어 하게 된 것이다.

결국 2019년 1월 미국 내에서 생산하는 반도체의 공급을 제한하는 1차 제재의 칼을 빼들었다.

이어 올해 5월에는 화웨이가 주문, 설계한 제품의 위탁 생산을 제한했다.

8월에는 내친 김에 드디어 ‘9월 15일부터는 미국의 기술과 장비를 활용한 모든 반도체의 화웨이 공급을 중단’시킨다는 3차 제재 조치까지 마련했다.

이 정도 되면 그냥 죽으라는 최후통첩과 다름없었다.

외신들의 전망도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시간이 문제이지 화웨이가 폭망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봤다.

베이징의 한 화웨이 스마트폰 매장. 마치 미국의 제재에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모습을 보여주기라도 하는 듯 고객들이 적지 않다./제공=징지르바오(經濟日報).

런정페이를 필두로 하는 화웨이의 경영진들과 중국 정부는 그러나 바보가 아니었다.

미국의 초강수를 이미 지난해부터 다 예상하고 있었다.

정부의 정책 책임자들과 머리를 맞댄 채 대비책도 준비하고 있었다.

그게 바로 8월 초에 화웨이가 미국이 보란 듯 은근히 대외적으로 흘린 타산(塔山)프로젝트였다.

타산은 인민해방군의 전신인 팔로군이 국공내전 당시 모든 것을 자급자족하던 저장(浙江)성 사오싱(紹興)의 황무지로 프로젝트에 이 지명을 차용한 의미는 분명하다. 반도체 자급자족을 통해 진정한 ‘반도체 굴기(崛起. 우뚝 섬)’를 이루고자 하는 강력한 의지를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사실 화웨이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해야 한다.

2020년 상반기를 기준으로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중국의 점유율은 5% 남짓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한국 및 미국 등과 비교할 때 기술력도 차이가 많이 난다.

평균 최소 5년은 난다고 봐야 한다.

웬만하면 전적으로 모든 것을 해외에 의존한다고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이런 현실에서 미국의 제재가 9월 15일부터 본격화됐다.

그동안 제재를 예상하고 쌓아놓은 재고 역시 조만간 바닥을 드러낼 가능성이 높다.

직면하고 있는 상황 자체가 완전 사면초가라는 말이 무색하다고 해야 한다.

한마디로 진짜 파부침주(破釜沈舟)의 심정으로 독립하는 것만이 살길인 셈이다.

화웨이 입장에서는 다행히도 반도체 독립을 넘어 굴기(崛起. 우뚝 섬)까지 달성하고자 하는 타산 프로젝트는 이론적으로 충분히 성공 가능성이 있다.

이유는 꽤나 많다.

무엇보다 화웨이가 반도체 기술을 일부 보유 중이라는 사실을 꼽을 수 있다.

중국 최대 팹리스(반도체 설계) 업체인 하이쓰(海思)반도체를 자회사로 두고 있을 만큼 기본은 돼 있다.

만약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에서는 나름 경쟁력이 있는 자국의 SMIC가 하이쓰의 주문생산을 소화만 수 있다면 한숨을 돌리는 것이 어렵기는 해도 완전 불가능하지는 않다.

여기에 칭화(淸華)대 산하 쯔광(紫光)그룹의 자회사 창장춘추(長江存儲.YMTC)의 존재와 잠재력도 나름의 위안이 될 수 있다.

화웨이가 상호 협력을 강화하면서 아직은 떨어지는 기술력 업그레이를 위해 작심하고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면 창장춘추가 나름의 역할을 할 수 있다.

화웨이가 ‘노아의 방주’라는 이름의 세계 최대 규모의 4차 산업혁명 연구소를 운용할 만큼 기술력에 관한 한 일가견이 있다는 사실 역시 거론해도 좋다.

칭화대나 저장(浙江)대 등과 기업들의 반도체 연구 인력을 대대적으로 확보하면서 의지의 실현에 나설 능력을 빠른 시일 내에 갖추는 것이 가능하다.

홍멍 2.0 발표회 전경. 제재도 자신들을 꺾지 못한다는 화웨이의 ‘늑대정신’을 말해주는 것 같다./제공=징지르바오.

안 되면 될 때까지 한다는 화웨이의 기업 문화인 이른바 ‘늑대정신’과 필요할 경우 중국 정부가 제공할 가능성이 있는 파격적인 지원 계획은 더 말할 필요조차 없다.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면 이상하다고 해야 한다.

실제 성공 사례도 없지 않다.

미국의 제재로 인해 구글의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의 사용이 어려워지자 자체적으로 '훙멍(鴻蒙·하모니) 2.0'의 개발에 최근 성공한 사실만 봐도 그렇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동전에도 양면이 있듯 상황이 마냥 낙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무엇보다 미국이 제재하려고 칼을 가는 SMIC가 횡액을 당할 가능성이 우려된다.

이 경우 화웨이와 중국 정부는 자국의 대체 파트너를 찾아야 한다.

그러나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중국 전체의 기술력이 한국이나 미국보다 최소한 3년 이상 격차가 나는 것도 화웨이로서는 고민거리라고 해야 한다.

예컨대 SMIC는 지난해 말에야 삼성이나 대만 TMSC에 한참이나 뒤지는 14나노미터(㎚. 10억 분의 1m) 공정 양산에 겨우 들어간 것이 현실이다.

더욱 결정적인 것은 미국이 무슨 일이 있더라도 화웨이를 죽이겠다는 의지를 굽히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에 있지 않나 보인다.

화웨이가 솟아날 구멍을 만들면 미국이 바로 기다렸다는 듯 바로 틀어막을 것이라는 얘기가 된다.

글로벌 경제에서는 기존의 공급망을 무시한 채 완전 독자적인 길을 걷는 것은 조금 심하게 말하면 미련한 짓에 속한다.

들이지 않아도 될 엄청난 비용도 불필요하게 소모하게 된다.

실패할 경우 치명적 내상을 입을 수 있다.

이런 사실과 여러 비관적인 요인들을 감안할 경우 화웨이의 타산 프로젝트는 고난의 행군이 될 가능성이 상당히 크다고 해야 할 것 같다.

그럼에도 화웨이의 ‘늑대정신’을 상기할 경우 불가능하다고 지레 자포자기하지는 않을 가능성이 크다.

더구나 이번 프로젝트를 성공시킨다면 앞길이 탄탄대로인 만큼 아예 젖 먹던 힘까지 짜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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