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퀘스트=허태임(국립백두대간수목원 연구원)】 흔히들 가을을 들국화의 계절이라고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산천에 들국화라는 이름을 가진 꽃은 없다.

감국, 산국, 구절초, 쑥부쟁이는 있지만 들국화라는 이름을 가진 식물은 지구상에 없다. 왕대, 솜대, 이대는 있지만 대나무라는 이름을 가진 나무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갈참나무, 졸참나무, 떡갈나무는 오늘도 열심히 도토리를 만들고 있지만 참나무라는 이름을 가진 나무는 역시 없다.

2017년 초에 경북 봉화군 서벽리에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이 들어서며 나도 그때부터 봉화군민으로 살고 있다.

북쪽에서 내려온 백두대간의 주 능선이 구룡산을 기점으로 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소백산으로 이어지는 길목이 바로 서벽이다.

시골의 작은 마을에 창이 많고 마당이 넓은 집을 얻어 셋방을 산다. 덕분에 창밖으로 보이는 백두대간 마루금 풍경을 집에 앉아서 감상하는 호사를 누린다.

내가 애써 가꾸지 않아도 요즘엔 ‘들국화 무리’가 내 마당을 찾아와서 가을을 실감케 해준다. 노란 들국화도 있고, 하얀 들국화도 있고, 옅은 분홍색의 들국화도 있다.

오늘은 그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먼저 노란 꽃이 피는 우리 땅의 들국화는 감국과 산국이다.

감국(甘菊)은 꽃이 크고 단맛이 난다. 산국(山菊)은 비교적 꽃이 작고 산과 들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감국은 한방에서 대접받는 약재였고, 꽤나 귀해서 궁중이나 양반가에서 주로 이용했던 식물이다.

감국. 한방에서 약재로 쓰는 국화과 식물로 단맛이 난다고 해서 감국(甘菊)이라 부른다. 산국에 비해 꽃이 크다. 우리나라 해안가 바위지대를 중심으로 비교적 드물게 자란다. [사진=허태임]
감국. 한방에서 약재로 쓰는 국화과 식물로 단맛이 난다고 해서 감국(甘菊)이라 부른다. 산국에 비해 꽃이 크다. 우리나라 해안가 바위지대를 중심으로 비교적 드물게 자란다. [사진=허태임]
산국. 감국에 비해 주로 산지에서 자란다고 해서 산국(甘菊)이라 부른다. 감국에 반해 크기가 작은 꽃 여러 송이가 소복하게 모여서 핀다. 우리나라 전역에서 널리 자란다. [사진=허태임]
산국. 감국에 비해 주로 산지에서 자란다고 해서 산국(甘菊)이라 부른다. 감국에 반해 크기가 작은 꽃 여러 송이가 소복하게 모여서 핀다. 우리나라 전역에서 널리 자란다. [사진=허태임]

『동의보감』은 감국과 산국을 구분하며 “단 것은 약에 넣지만 쓴 것은 쓰지 않는다” 했고, “감국은 수명을 연장시키지만 산국은 사람의 기운을 빠지게 한다”고도 했다.

하지만 현대과학은 감국과 산국의 효능을 동일하게 본다. 궁중음식에서 빠지지 않았던 국화전에는 반드시 감국을 썼다.

꽃이 큼직하니 보기 좋아야 했고 단맛이 입안을 감싸야 했기 때문이다.

양반들이 절기에 맞춰 먹었던 ‘절식(節食)’에서 가을에 빠지지 않는 제철 재료는 감국이었다.

대한제국기 최초의 요리점인‘명월관’에는 감국으로 전병을 만드는 전통비법이 있기도 했다.

『동의보감』에는 감국을 중요한 약재로 손꼽는다.

꽃을 가루 내어 따뜻한 물에 타서 마시면 눈을 밝게 하고 술을 빚어 먹으면 풍을 다스린다 했고, 줄기와 잎을 찧어 만든 연고를 ‘도잠고(陶潛膏)’라 하며 피부 질환에 처방했다는 기록도 있다.

그 시절 우리 선조가 남긴 전통 지식에서 오늘날 감국와인, 감국분말차 등이 개발되어 있다.

꽃과 잎에서 추출한 성분이 항염증, 피부개선 등에 효능이 있어서 피부연고, 보습제, 세정제의 원료로 이용하기도 한다.

민간에서는 감국보다 우리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산국을 널리 이용한다.

어린 순을 나물로 먹고 말린 꽃은 차로 마시거나 설탕에 절여 먹는다.

입욕제로 쓰거나 천연염색 재료로도 활용된다. 머리를 맑게 한다 하여 배게 속을 말린 꽃으로 채우기도 한다.

감국과 산국은 집에 들여 가꾸는 국화의 기본종 가운데 하나다.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품종이 개발되어 국화 애호가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다.

하얀색 꽃이 피는 구절초는 우리에게 제법 익숙한 들국화 가운데 하나다.

산구절초. 아기 손바닥 모양의 잎을 가진 구절초에 비해 잎 가장자리가 깊게 갈라진다. [사진=허태임]
산구절초. 아기 손바닥 모양의 잎을 가진 구절초에 비해 잎 가장자리가 깊게 갈라진다. [사진=허태임]
포천구절초. 산구절초 보다 잎이 가늘고 깊게 갈라져서 마치 바늘잎 같다. 강원도 영월 강가의 바위틈에서 담았다. [사진=허태임]
포천구절초. 산구절초 보다 잎이 가늘고 깊게 갈라져서 마치 바늘잎 같다. 강원도 영월 강가의 바위틈에서 담았다. [사진=허태임]

“누이야 가을이 오는 길목/ 구절초 메디메디 나부끼는 사랑아/ 내 고장 부소산 기슭에/ 지천으로 피는 사랑아/ 뿌리를 대려서 약으로도 먹던 기억”

‘눈물의 시인’으로 불리는 우리나라 대표 서정시인 박용래의 시 ‘구절초’는 이렇게 시작된다.

한 편의 시가 구절초를 그림처럼 또렷하게 표현하고 있다.

구절초는 가을이 깊어갈 무렵 노란 중심꽃에 하얀 꽃잎을 가지런히 달고 피어 단정하고도 청아한 느낌을 준다.

음력 9월 9일에 꺾어 약으로 쓰는 풀이라 하여 구절초라 불렀고, 같은 의미에서 구일초로 불리기도 한다.

마디가 9개가 될 정도로 컸을 때 꺾어야 약효가 좋다하여 구절초가 되었다는 설도 있다.

한방에서는 선모초(仙母草)라 부르기도 하는데 예로부터 부인병을 다스리는데 널리 썼기 때문이다.

『동의보감』에서는 출산 전후 써야 할 주요 약재로 단연 구절초를 꼽는다. 현대과학이 증명한 효능도 다양하다.

꽃에서 추출한 향균성 물질, 세포 독성 효과, 유방암 전이 억제 효과 등에 대한 다수의 논문이 발표 된 바 있고, 기억력과 학습력 증진에 도움이 되는 건강식품이 구절초를 성분으로 하여 특허로 출원되기도 했다.

구절초의 진짜 매력은 꽃이다. 박용래 시인의 노래처럼 단추 구멍에 달아도, 머리핀에 꽂아도 정말 예쁜 꽃이 구절초다.

덕분에 가을이면 지역 곳곳에서 구절초 꽃 군무가 펼쳐진다.

전북 정읍, 세종시 장군산은 가을의 구절초로 이름난 지 오래다. 이 무렵 우리 선조들은 구절초 화전을 부쳐 가을을 즐기기도 했다.

세시 명절의 하나인 음력 9월 9일 중양절(重陽節)은 구절초로 곱게 부친 국화전을 나누어 먹는 것이 풍습이었다.

산구절초, 바위구절초, 포천구절초 등 잎과 꽃의 생김새에 따라 구절초 종류는 조금 더 다양하게 구분된다.

박용래 시인이 언급한 ‘마아가렛’은 구절초와 꽃이 꼭 닮은 재배식물 마가렛이다.

도시의 화단에서 다양한 마가렛 품종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생김새와 효능 덕분에 구절초의 꽃말은 ‘순수’와 ‘모성애’ 다.

분홍색 빛깔의 들국화는 쑥부쟁이 종류다.

그중에서도 갯쑥부쟁이와 가새쑥부쟁이를 우리나라 산과 들에서 가장 쉽게 만날 수 있다. 갯쑥부쟁이는 바다를 뜻하는 접두어 ‘갯’을 달고 있지만 한반도 전역의 산지, 풀밭, 바닷가 가리지 않고 잘 자란다.

가새쑥부쟁이는 잎의 가장자리가 들쑥날쑥 갈라지는 모양 때문에 ‘갈라진다’는 뜻의 접두어 ‘가새’를 형용사처럼 달고 있다.

산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까실쑥부쟁이도 있다. 잎과 줄기에 빳빳한 털이 있어 그 까실까실한 느낌 때문에 까실쑥부쟁이라 부른다.

정작 쑥부쟁이는 쉽게 만날 수 없다. 주로 남부지방과 제주도의 다소 습한 농경지 주변에 드물게 자라기 때문이다.

갯쑥부쟁이. 우리나라 산과 들에서 가장 쉽게 만날 수 있다. 바다를 뜻하는 접두어 ‘갯’을 달고 있지만 한반도 전역의 산지, 풀밭, 바닷가 가리지 않고 잘 자란다. [사진=허태임]
갯쑥부쟁이. 우리나라 산과 들에서 가장 쉽게 만날 수 있다. 바다를 뜻하는 접두어 ‘갯’을 달고 있지만 한반도 전역의 산지, 풀밭, 바닷가 가리지 않고 잘 자란다. [사진=허태임]
가새쑥부쟁이. 잎의 가장자리가 들쑥날쑥 갈라지는 모양 때문에 ‘갈라진다’는 뜻의 접두어 ‘가새’를 형용사처럼 달고 있다. [사진=허태임]
가새쑥부쟁이. 잎의 가장자리가 들쑥날쑥 갈라지는 모양 때문에 ‘갈라진다’는 뜻의 접두어 ‘가새’를 형용사처럼 달고 있다. [사진=허태임]
쑥부쟁이는 쉽게 만날 수 없다. 주로 남부지방과 제주도의 다소 습한 농경지 주변에 드물게 자란다. [사진=허태임]
쑥부쟁이는 쉽게 만날 수 없다. 주로 남부지방과 제주도의 다소 습한 농경지 주변에 드물게 자란다. [사진=허태임]
잎과 줄기에 빳빳한 털이 있어 그 까실까실한 느낌 때문에 까실쑥부쟁이라 부른다.  [사진=허태임]
잎과 줄기에 빳빳한 털이 있어 그 까실까실한 느낌 때문에 까실쑥부쟁이라 부른다. [사진=허태임]

나의 마음이 가장 오래 머무는 단양쑥부쟁이도 있다.

우리나라 단양에서 처음 발견되어 제 이름을 얻었고 잎이 가늘어서 소나무 잎을 닮았다는 뜻으로 북한에서는 솔잎국화라 부른다.

단양을 비롯하여 경기도 여주의 하천가에서 아주 드물게 자라기 때문에 환경부는 단양쑥부쟁이를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 식물로 지정하여 보호한다.

단양쑥부쟁이. 우리나라 단양에서 처음 발견되어 제 이름을 얻었고 잎이 가늘어서 소나무 잎을 닮았다는 뜻으로 북한에서는 솔잎국화라 부른다. 단양을 비롯하여 경기도 여주의 하천가에서 아주 드물게 자라기 때문에 환경부는 단양쑥부쟁이를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 식물로 지정하여 보호한다. [사진=허태임]
단양쑥부쟁이. 우리나라 단양에서 처음 발견되어 제 이름을 얻었고 잎이 가늘어서 소나무 잎을 닮았다는 뜻으로 북한에서는 솔잎국화라 부른다. 단양을 비롯하여 경기도 여주의 하천가에서 아주 드물게 자라기 때문에 환경부는 단양쑥부쟁이를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 식물로 지정하여 보호한다. [사진=허태임]
단양쑥부쟁이. 우리나라 단양에서 처음 발견되어 제 이름을 얻었고 잎이 가늘어서 소나무 잎을 닮았다는 뜻으로 북한에서는 솔잎국화라 부른다. 단양을 비롯하여 경기도 여주의 하천가에서 아주 드물게 자라기 때문에 환경부는 단양쑥부쟁이를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 식물로 지정하여 보호한다. [사진=허태임]
단양쑥부쟁이. 우리나라 단양에서 처음 발견되어 제 이름을 얻었고 잎이 가늘어서 소나무 잎을 닮았다는 뜻으로 북한에서는 솔잎국화라 부른다. 단양을 비롯하여 경기도 여주의 하천가에서 아주 드물게 자라기 때문에 환경부는 단양쑥부쟁이를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 식물로 지정하여 보호한다. [사진=허태임]

과거에는 지금 보다 널리 자랐을 것으로 추정하나 수안보 일대의 댐 건설로 강변이 수몰되어 그들이 살 수 있는 터전이 사라졌다.

4대강 살리기 사업으로 진행된 하천정비사업은 얼마 남지 않은 단양쑥부쟁이의 자생지마저 앗아갔다.

2010년에 남한강 중류의 도리섬 일대에 포크레인과 화물차에 짓밟힌 단양쑥부쟁이의 소식이 뉴스로 전해지기도 했다.

몇 해 전 가을에는 남한강 바닥에서 퍼 올린 흙을 버려둔 더미에서 단양쑥부쟁이가 군락을 이루며 만개했다는 소식이 들리기도 했다.

단양쑥부쟁이의 씨앗을 품었을 그 곱고 많은 흙은 다 어디로 갔을까.

국내 공사립 수목원과 식물원에서는 사라져 가는 우리 땅의 식물을 지키기 위해 ‘보전’의 기능에 주목한다. 단양쑥부쟁이 씨앗을 모아 키우고 살리고 늘리고 있다. [사진=허태임]
국내 공사립 수목원과 식물원에서는 사라져 가는 우리 땅의 식물을 지키기 위해 ‘보전’의 기능에 주목한다. 단양쑥부쟁이 씨앗을 모아 키우고 살리고 늘리고 있다. [사진=허태임]
2017년 3월 14일에 파종한 단양쑥부쟁이 씨앗이 일주일 후에 싹을 틔웠다. 이렇게 자라서 보호받고 있는 단양쑥부쟁이를 국내의 수목원과 식물원에 가면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사진=허태임]
2017년 3월 14일에 파종한 단양쑥부쟁이 씨앗이 일주일 후에 싹을 틔웠다. 이렇게 자라서 보호받고 있는 단양쑥부쟁이를 국내의 수목원과 식물원에 가면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사진=허태임]

국내 공사립 수목원과 식물원에서는 이렇게 사라져 가는 우리 땅의 식물을 지키기 위해 ‘보전’의 기능에 주목한다.

위기에 놓인 식물들의 피난처를 마련해주는 것이다.

4대강 사업이 할퀴고 간 자리, 버려진 흙이 쌓인 그 더미에서 몇 홉 안 되는 단양쑥부쟁이 씨앗을 모아 키우고 살리고 늘리고 있다.

덕분에 현재 국내의 수목원과 식물원에 가면 보호받고 있는 단양쑥부쟁이를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내가 자란 시골 마을에 가면 한강 정구 선생(寒岡 鄭逑, 1543~1620)이 후학을 가르쳤던 회연서원이 있다.

한강선생은 책을 읽는 것은 산에 드는 것과 같다는 의미의 ‘독서여유산(讀書如遊山)’을 제자들에게 강조했다.

지금 내가 사는 마을에서 멀지 않는 곳에 청량산이 있다. 그곳에 가면 노년의 퇴계 이황이 청량산에 올라 남긴 글이 시비에 적혀 있다.

‘讀書人說遊山似 見遊山似讀書(뭇 사람들이 독서가 산에 가는 것과 같다지만, 산에 가는 것이야말로 독서와 같구나)’라는 의미이다.

또 옛사람들은 자연을 두고 무자천서, 즉‘하늘이 만든 글자 없는 책’이라고도 했다. 자연을 대하는 인간의 마음을 이야기하고 싶을 때 나의 서툰 문장보다 선조들의 글귀를 빌려 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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