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퀘스트=허태임(국립백두대간수목원 연구원)】 영화 <미나리>의 해외 반응이 심상치 않다.

미국영화연구소(AFI)가 선정한 10대 영화에 이미 이름을 올렸고 올해 오스카 작품상 수상이 거론되고 있다는 외신 보도도 눈에 띈다.

미국으로 이주한 한인 가정의 굴곡진 삶을 다룬 이 영화는 감독 정이삭의 자전적 이야기다.

감독은 말했다. 미나리의 질긴 생명력과 적응력이 낯선 타국에서 희망을 더듬던 자신의 가족과 닮았다고.

심은 지 1년이 지나야 잘 자라는 미나리처럼 닥친 역경 속에서도 내 자식을 지켜 다음 세대의 안녕을 희망으로 삼는다는 영화의 원천을 감독은 식물 미나리에서 길어 올렸다.

미나리, 하면 돌아가신 할머니가 생각난다.

어릴 적에 나는 그이가 마당에 가꾼 화초류, 산과 들에서 모아온 산채, 수확한 농작물에서 식물의 생김새와 쓰임과 이름을 익혔다.

나에게 식물의 면면을 처음 알려준 선생님이 우리 할머니다.

미나리를 심어 기르는 장소를 가리켜 할머니는 미나리꽝이라고 불렀다.

‘꽝’이란 땅이 걸고 물이 고이는 자리로 미나리를 재배하기 위해 다듬고 관리되는 곳.

그 질펀한 땅을 엉거주춤 밟는 게 좋아서, 여린 미나리 잎이 내 종아리를 살살 건드리는 게 좋아서 어린 나는 툭하면 맨발로 미나리꽝에 들어갔다.

거머리 조심해라. 물뱀 나온다. 서둘러 장화를 챙기며 외치던 할머니의 고함소리가 아직도 생생하다. 

미나리는 금세 수북하게 자랐다.

빼곡하게 모여 나는 그 줄기를 한 움큼씩 쥐어 낫으로 베면 초록으로 꽉 찼던 미나리꽝의 미나리들이 바리캉으로 깎인 머리처럼 열 맞춰 매끈하게 잘렸다.

수확된 미나리는 고스란히 밥상으로 옮겨졌다.

할머니의 김밥에는 반드시 데친 미나리가 들어갔다. 맛도 모양도 다양해진 요즘의 김밥이 어쩐지 내게는 시시하다.

초록의 절정이 무엇인가를 알려주는 미나리향 때문이다. 생으로 먹을 때는 거머리가 밥상까지 따라오니 조심해야 한다.

할머니는 내가 배앓이를 하는 밤에는 당신이 다급하게 짓이겨 만든 미나리즙을 코를 쥔 채 마시도록 했다.

동의보감 잡병편(질병과 대체법에 대한 기록)에서 어린아이의 배탈을 미나리로 다스리라는 대목을 알게 된 것은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의 일이다. 

미나리의 산형화서. 작은 꽃 한 송이 한 송이가 저마다 가는 꽃대에 달려 정확히 한 지점에 모인 후 잎을 달고 있는 몸체로 이어지기 때문에, 마치 바람에 뒤집힌 우산 모양이다. 우산모양꽃차례라고도 한다. 미나리와 같은 혈통에 속하는 식물은 모두 그 비슷한 꽃을 피운다. 그들을 묶어서 학술용어로‘산형과(傘形科)’라고 부르는 이유다. [사진=허태임(국립백두대간수목원 연구원)]

미나리꽝이 어린 내게는 거의 완벽한 생태 학습장이었다.

미나리의 식물학적 특성과 습지라는 생태 공간을 일찍이 그곳에서 배웠다.

미나리꽃을 관찰하는 시간을 예나 지금이나 나는 좋아한다.

안개꽃처럼 자잘한 하얀 꽃이 소복하게 모여서 꽃의 공동체를 이루는 그 광경을.

그 작은 꽃 한 송이, 한 송이가 저마다 가는 꽃대에 달려 정확히 한 지점에 모인 후 잎을 달고 있는 몸체로 이어진다.

마치 바람에 뒤집힌 우산 모양이다. 미나리와 같은 혈통에 속하는 식물은 모두 그 비슷한 꽃을 피운다. 그들을 묶어서 학술용어로‘산형과(傘形科)’라고 부르는 이유다. 

나는 습지의 소멸을 미나리꽝에서 보았다. 늦둥이 동생이 태어난 해였으니 1994년으로 기억한다.

모내기철이 끝나고 극심한 가뭄이 길게 이어졌고 온 동네가‘내 논 물대기’에 혈안이었다.

나락에 비하면 미나리는 뒷전이 될 수밖에 없었다.

미나리꽝 물대기는 꿈도 꿀 수 없는 일. 쩍쩍 갈라진 미나리꽝 바닥이 꼭 우리 할머니 손등 같네, 라는 생각을 하며 어떤 소멸의 풍경을 물끄러미 지켜보았다.

가뭄이 물에 기대어 사는 식물을 얼마나 매몰차게 죽일 수 있는지를, 그 식물을 찾아오던 작은 곤충들을 어떻게 끊어낼 수 있는지를, 습지라는 공간이 얼마나 순식간에 사라질 수 있는지를. 이내 장마가 들고 미나리꽝은 습지의 면모를 회복했으나 그해 우리 집 밥상에는 미나리가 오르지 못했다. 

할머니가 떠나고 고향의 미나리꽝도 논밭도 본업을 잃은 지 오래다.

인간의 경작 활동이 멈춘 논과 밭이 때로는 습지식물의 안식처가 되어 생물다양성이 풍부한 곳으로 거듭난다.

하지만 묵혀두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힘이 센 일부 식물들이 점령하게 되어 초기에 증가했던 다양한 식물의 수가 차츰 줄어들기 마련이다.

교란에 무방비한 곳이라는 방증이다.

할머니가 계시던 그 공간에서 새겨진 다채롭던 기억들이 할머니가 떠난 후 내게 새롭게 각인된 몇 몇 사건들로 자꾸만 잊히는 것처럼.

따라서 경작의 기능을 상실한 채 묵혀둔 논과 밭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 과정에 대한 기록과 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국내외 생태학자들의 목소리가 높은 편이다. 

이와 관련하여 세계 3대 과학저널 가운데 하나인‘사이언스’지는 일본의 전통 계단식 논이 자연 생태계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 집중적으로 다룬 적이 있다(Nature from nurture, 2016.2.27.).

전통 계단식 논이 습지 생물에게 아주 중요한 장소라는 건데, 주로 고지대의 습지를 개간한 계단식 논은 그 가장자리에 일부러 풀을 자라게 하고 다듬어 둑을 관리하기 때문에 특정 식물의 우점을 막을 수 있고 다양한 종류의 식물을 지킬 수 있다는 거다.

그 다양한 식물이 각종 곤충과 동물을 불러 모으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생물다양성이 더욱 높아진다는 거다.

이러한 가치가 버려진 논이나 토지 정비를 한 대규모 논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는 고베대학교 연구진의 견해도 보인다.

저널은 1961년 이래 2,760㎢ 면적의 논이 버려진 것을 두고 일본 인구의 감소와 식습관의 변화가 쌀 소비량의 급감을 초래했기 때문이라는 일본 농림수산성의 자료를 소개하며, 계단식 논과 저수지, 숲 등이 한데 어우러진 산촌마을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일본은‘사토야마(里山)’라는 소생태계를 지키고 되살리기 위해 힘을 쏟고 있다고 한다.  

우리와 중국도 일본과 비슷한 과정을 통과하는 중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그 중요성을 인식하고 전통 계단식 논을 보전하기 위한 연구가 꾸준히 진행 중이다.

<계단식 묵논습지에서의 물이끼 서식 특성>을 연구한 서울대학교 생물교육과 연구팀은 물이 아래로 흘러가는 계단식 논에는 비료가 오래 남지 않는다는 점을 들어 저지대의 대규모 논과 달리 전통 계단식 논은 자연의 고지대 습지와 유사한 생태 환경을 지닌다고 설명한다.

고지대의 습지에서만 발견되었던 물이끼가 안산시의 계단식 묵논에서 발견된 것을 그 증거로 꼽았다. 

습지식물 독미나리는 우리나라에서 아주 드물게 자라는 멸종위기식물이다.

미나리와 같은 혈통의 ‘산형과’식물로 물을 좋아하는 습성, 꽃의 생김새, 질긴 생명력 등 그와 비슷한 구석이 많은 편이다.

그런데 왜 남한에서는 멸종위기 식물이 되었을까.

자라는 환경 때문일 거다.

미나리는 경제적 가치가 인정되어 먼 옛날부터 인간의 삶 안에서 보호받을 수 있었다.

사람들은 땅을 구하고 물을 가두어 미나리를 살리기 위한 터전을 인공적으로 만들었다.

반대로 인간의 경제 논리에서 외면당한 식물은 최소한의 생존 공간조차 얻지 못했던 것.

독이 있어서 먹지 못한 독미나리처럼 말이다.

그들이 살던 습지의 많은 면적이 인간에게 필요한 도로와 건물을 짓기 위해 사라졌다.

다행히 그 위기를 간신히 면한 적도 있다.

군산전 북대병원 건립부지로 낙점되었던 백석제는 개발보다는 보전의 가치가 더욱 크다는 것이 인정되어 훼손을 피할 수 있었던 경우다.

독미나리, 가시연꽃 등을 비롯한 멸종위기 습지식물이 백석제를 지켜낸 파수꾼이었다.

덕분에 그곳을 찾는 멸종위기 철새 물수리와 붉은배새매의 터전도, 백석제가 고려 말 이전에 축조된 저수지라는 역사적 가치도 보전되었다. 

습지식물 독미나리는 우리나라에서 아주 드물게 자라는 멸종위기식물이다. 미나리와 같은 ‘산형과’식물로 물을 좋아하는 습성, 꽃의 생김새, 질긴 생명력 등 미나리와 비슷한 구석이 많은 편이다. 경제적 가치가 인정되어 먼 옛날부터 인간의 삶 안에서 보호받았던 미나리와 달리 독미나리는 인간의 경제 논리에서 외면당한 식물이기도 하다. [사진=허태임(국립백두대간수목원 연구원)]

미처 알지 못했던 독미나리의 경제적 가치에 대한 연구가 최근 국제학술지에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렇게 밝혀진 인류의 항염, 항암에 대한 독미나리의 효능은 신약 개발의 기초 자료로 쓰일 것이다.

공포의 외래 해충으로 구분되어 살인개미라고도 불리는 붉은불개미를 방제할 수 있는 생물학적 방법으로 독미나리에서 추출한 독성이 효과적이라는 연구 결과도 돋보인다.

이제는 그들도 인간의 삶 안에서 보호받을 수 있을까.

배후습지라는 곳이 있다. 말 그대로 하천의 배후에 있는 습지다.

하천에 물이 넘쳤다 빠지기를 반복하다 보니 하천의 가장자리에 흙이 쌓여 자연제방이 만들어지고 그 바깥에 저절로 생긴 늪을 말한다.

한강과 낙동강을 비롯하여 우리나라의 큰 하천 주변에 으레 생긴다.

람사르습지보호지역에 등재된 우포늪도 이에 해당한다. 자연이 만든 것이기에 배후습지는 지금보다 과거에 더 많았다.

그러니까 4대강 정비사업을 비롯하여 인위적인 하천 개발 행위가 있기 전에 말이다.

자연을 무시한 채 개발의 측면에서 보면 그곳은 더없이 편리하고 경제적인 공간이다. 그래서 배후습지는 순식간에 사라질 수 있다.

높은 산을 애써 깎지 않아도 되고 깊은 하천을 어렵게 메우지 않아도 된다.

자연이 만들어준 제방을 등에 업고 저지대의 늪을 적당한 수준의 흙으로 채우면 되기 때문이다. 

‘서울개발나물’의 등장은 식물학계에 배후습지에 대한 중요한 화두를 던졌다.

미나리처럼 ‘산형과’에 속하는 습지식물인 서울개발나물은 극동아시아의 희귀식물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902년 서울에서 처음 발견된 이후 하천 주변의 습지에 드물게 출현하다가 1967년 서울 구로의 습지에서 마지막 모습을 남긴 채 돌연 사라져 남한에서는 멸종한 것으로 여겼었다.

십 년 전 낙동강 어느 습지에서 그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서울개발나물이 새롭게 발견된 낙동강 습지의 환경과 과거 그가 채집된 서울과 전주의 습지에 대한 기록을 맞추어 보니 해답은 배후습지에 있었다.

서울개발나물은 배후습지에 뿌리를 내리는 식물이고 그가 사라진 것은 배후습지의 소멸에서 기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

환경부는 서둘러 서울개발나물을 멸종위기종으로 새롭게 지정하고 배후습지를 추적하여 서울개발나물의 복원 사업을 계획했다. 

서울개발나물. 미나리처럼 산형과에 속하는 습지식물로 극동아시아의 희귀식물이다. 1902년 서울에서 처음 발견된 이후 하천 주변의 습지에 드물게 출현하다가 1967년 서울 구로의 습지에서 마지막 모습을 남긴 채 돌연 사라져 남한에서는 멸종한 것으로 여겼었다. [사진=김진석]
멸종된 것으로 추정했던 서울개발나물이 44년 만에 낙동강 배후습지에서 발견되었다. 이는 식물학계에서 배후습지의 특수성과 중요성을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사진=김진석]

해마다 2월 2일은 세계 습지의 날이다.

지구에서 습지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리기 위해 국제습지조약은 1997년부터 습지의 날을 기념하고 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며칠 후면 할머니의 기일이다.

그 날을 셈하며 미나리 몇 뿌리를 구해서 화병에 꽂았다.

할머니가 알려주신 미나리의 생활사를 내가 제대로 기억하는 게 맞는다면 때맞춰 하얀 꽃이 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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