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생기업 보호" 도입 취지와 달리 경쟁사 제재수단 전락…무차별 소송전 잇따라

 미 국제무역위원회는 지난해 12월 '나보타'가 불공정 무역관행 제재 규정을 위반한 제품이라 판단해 21개월간 미국 내 수입 금지를 명령하는 최종판결을 내렸다. [사진=연합뉴스]

【뉴스퀘스트=김보민 기자】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서 특허권을 가지고 싸우는 기업들이 반드시 언급하는 단어가 있다. 바로 미국의 '관세법 337조’다.

2년 넘게 ‘배터리 특허권’을 두고 씨름해 온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의 소송에서 ITC는 최근 SK이노가 미국 관세법을 위배했다며 LG에너지의 손을 들어줬다.

'이동통신 특허권' 분쟁에 돌입한 삼성전자와 에릭슨도, '보톡스 전쟁'으로 수년간 신경전을 벌인 대웅제약과 메디톡스도 소송을 진행하며 미국의 '관세법 337조' 언급을 빼놓지 않았다.

때문에 특허분쟁에 있어 '미국의 '관세법 337조'가 마치 '전가의 보도'처럼 모든 기업들이 이를 들이밀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허 괴물'이라 불리는 일부 기업들이 해당 조항을 악용해 승소한 사례들이 늘어나자, 특허소송 제기 기업들이 우위를 점하기 위한 수단으로 관세법 337를 만능키처럼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 신생기업·발명가 보호하던 법...경쟁사 제재 수단으로 전락

미국의 관세법 337조(Section 337 of the Tariff Act of 1930)는 특허권, 상표권, 저작권 등의 침해에 따른 불공정 무역관행을 규제하는 조항으로, 상대의 상품 수입을 금지시키거나 불공정행위를 정지하도록 명령하는 역할을 한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해당 법은 신생 기업 등 특허를 활용 당장 생산 단계에 돌입하기 어려운 기업들을 보호하기 위한 역할을 톡톡히 수행해냈다.

하지만 최근 들어 해당 조항을 앞세워 상대 측의 기업활동을 제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소송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ITC 홈페이지에 따르면 올해 들어 관세법 337을 두고 소송을 진행하고 있거나 마무리된 건수는 약 13개다. 삼성전자-에릭슨 갈등도 올해 소송건으로 등록이 돼 있다.

1990년대에는 연간 10건 안팎에 불과했지만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여러 산업군에서 특허기술 침해를 주장하는 일들이 늘어나며 해당 조항과 관련된 소송은 급증했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 '관세법 337' 정보란에 접속하면 삼성과 에릭슨 간의 소송건이 가장 먼저 검색된다. [사진=ITC 홈페이지 캡처]

◇ '악마의 발톱'이라던 관세법...특허괴물 배 불려줬다

문제는 현재 벌어지고 있는 글로벌 기업들의 특허분쟁이 관세법 337조를 악용하는 특허괴물들의 행보를 답습하는 있다는 것이다.

원천기술과 특허를 대량 보유한 특허괴물 기업들은 해당 특허를 침해했거나 침해했다고 판단되는 글로벌 기업들을 상대로 무차별 소송과 제소를 통해 거액의 사용료를 얻어내고 있다.

이번에 삼성이 허락 없이 특허권을 침해했다고 주장한 에릭슨도 특허괴물로 변질됐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스마트폰 완성제품 경쟁에서 밀려나 사실상 기술 업체로 전환하면서, 시장을 선도하는 다른 업체들을 계속 압박하며 몸값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ITC에서 삼성전자를 대상으로 분쟁을 벌이다 지난해 초 극적인 합의를 맺은 네오드론도 업계에서 유명한 특허괴물 기업이다.

당시 네오드론은 삼성 뿐만 아니라 애플, LG전자 등을 상대로도 ITC에 특허침해 소송을 제기했다.

이밖에도 솔라스OLED, 제로클릭 등도 국내 기업을 상대로 꾸준히 관세법 위반 특허소송을 제기하면서 국내외 기업들에게 거액의 합의금을 받아냈다.

때문에 최근에 일어난 국내 기업들의 행보도 이러한 악행을 답습한 것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들이 소장을 내고 있는 ITC·델라웨어 법원은 관세법 337을 주장한 기업의 손을 들어주는 일명 '친특허권자' 성향이 짙은 곳이란 지적을 받고 있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는 16일(현지시간) 에릭슨이 제기한 삼성전자의 특허 침해 주장과 관련해 조사를 개시한다고 밝혔다. 해당 소송건의 핵심도 '관세법 337조'다. [사진=연합뉴스]

한편, 올해도 ITC에서 조사가 예정된 세법 337 소송건은 50건을 훨씬 상회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기업을 대상으로 한 특허괴물들 소송에 대한 조사가 아직 한창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특히 삼성전자와 에릭슨 간의 소송은 삼성이 '맞불' 소송을 낸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번 조사가 누구의 손을 들어줄 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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