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술한 경력검증에 허위경력 알고도 조치 안해...공연예술계 신뢰도 추락

성남문화재단 전경. [사진=성남문화재단]
성남문화재단 전경. [사진=성남문화재단]

【뉴스퀘스트=박준석 문화칼럼니스트】 성남시(시장 은수미) 산하 성남문화재단(대표 노재천)이 경력을 다르게 표기한 지휘자를 사실 확인 절차도 없이 채용하는 등 허술한 행정으로 비판받고 있다.

또 일부 직원의 경우 대외적으로 착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직함 사용에도 이를 묵인해 공연예술계의 질서를 흐리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성남문화재단은 최근 대표 프로그램의 지휘자 H씨의 경력이 사실과 다른 것으로 드러났지만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아 빈축을 사고 있다.

또 큐레이터 A씨의 경우 문화재단의 전문위원임에도 대외적으로는 ‘예술감독’이라는 허위 직함을 사용하고 있지만 이를 수수방관하고 있다.

4일 성남문화재단에 따르면 지난 2020년 8월 ‘오페라의 정원’ 시리즈의 두 번 째 작품 ‘세비야의 이발사’ 공연에 H씨를 지휘자로 발탁했다.

당시 성남문화재단은 H씨를 ‘한국인 최초 유럽 오페라하우스 수석지휘자로 활동 중’이라고 소개했지만 올 초 H씨가 주장한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 티롤주립극장 수석지휘자’라는 경력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티롤주립극장에서 활동했던 H씨의 직책은 ‘카펠마이스터(Kapellmeister)’.

카펠마이스터는 우리말로 번역하면 수석지휘자가 아니라 부지휘자 정도로 유럽 공연예술계에서 수석지휘자는 세프디리겐트(Chefdirigent)로 불리고 있다.

H씨는 카펠마이스터로 활동했으면서도 국내에서 수석지휘자로 본인을 소개했고 이에 성남문화재단도 H씨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여 수석지휘자로 대우했고 대외적으로도 발표했던 것이다.

인스부르크는 인구 30만명 정도로 성남시에 비해 훨씬 더 작은 도시지만 극장에는 많은 예술가들이 활동하고 있고 직제표는 홈페이지에도 자세히 나타나 있다.

문제는 티롤주립극장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확인만 했어도 H씨가 수석지휘자가 아니라 부지휘자였다는 사실을 파악할 수 있었지만 성남문화재단은 이를 소홀히 한 것이다.

H씨가 사실과 다른 직책을 지원서에 표기했다는 의혹이 한참 뒤에 제기되자 성남문화재단은 그제서야 티롤주립극장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이를 확인했다.

그러나 성남문화재단은 H씨의 경력 표시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확인하고서도 H씨에 대해 다음 프로그램에서 경력을 바꿔 표시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이에 대해 성남문화재단측은 "티롤주립극장 홈페이지와 지휘가 H씨가 제출한 원문경력확인서를 통해 Erster Kapellmeister und Stellvertreter des Chefdirigenten(1카펠마이스터 및 상임지휘자(최고지휘자)의 대리인)' 으로 기재된 직함을 확인했고 영문경력사 상에도 'Principal Conductor 로 기재된 직함을 확인한 바 있다"고 밝혔다.

이어 '국내 클래식계에서는 일반적으로 'Chief Conductor'는 상임지휘자,  'Principal Conductor'는  수석지휘자로 표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H씨가 제출한 경력확인서의 직함을 토대로 공연당시 H씨를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 티롤 주립극장 수석지휘자로 표현해 소개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같은 허위 경력이나 직함의 과장 표현이 비단 H씨 뿐만 아니라 성남문화재단의 다른 지휘자들도 수석지휘자라는 경력을 공공연하게 내세우고 있다는 점이다.

국내 공연예술계의 P씨는 “유럽 무대에서 수석지휘자로 활동했던 사람은 정명훈씨가 유일하다”며 “국내에서 수석지휘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경력을 부풀려 대중들을 호도하고 있을 뿐 아니라 국내 공연예술계의 질서를 혼탁하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정부나 지자체 예술기관들이 이에 대한 확인절차와 후속 조치가 안일해 국내 공연예술계에서 많은 인사들이 허위경력을 내세워 활동하는 일이 비일비재 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도 성남문화재단측은 "현재 국내 클래식계에서 해외 출신 지휘자들의 직함체계와 명칭표현의 기준이 정립되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재단 또한 통상적인 수준에서 지휘자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며 "앞으로 재단에서는 객원 지휘자의 명칭 사용에 있어 보다 객관적인 이해를 위해 원어 직함을 병행해 표현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성남문화재단의 허술한 인사관리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성남문화재단의 큐레이터로 활동하는 A씨는 외부적으로  ‘예술감독’ 직함으로 인터뷰 등 대외활동을 하고 있지만 정작 성남문화재단에는 예술감독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와 관련 성남문화재단은 예술감독이라는 직제 도입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을 뿐 A씨의 예술감독 직함 활동에 아무런 제재도 가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성남문화재단측은 "지난해 급변하는 문화예술계의 트랜드에 적응하고 새로운 시각에서의 사업기획 및 진행을 위해 주요 4개 분야를 선정, 분야별 전문가를 자문위원 또는 예술감독으로 위촉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이어 "A씨를 미술관 특화사업을 위해 지난 2020년 4월부터 12월까지 비상근 무보수로 전시분야 예술감독으로 위촉, 협업을 진행한 바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공연예술계 관계자들은 “공연 예술기관의 예술감독은 명함만 들고 다니는 자리가 아니며 또 있는 듯 없는 듯 하는 자리가 아니다”며 “감독할 위치에 있는 사람이 직제에도 없는 예술감독이라는 직함으로 활동하는 것은 허위경력을 조장할 뿐 아니라 공연예술계의 신뢰도에도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준석 문화칼럼니스트

또 “성남시와 성남문화재단은 국내 공연예술계의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한줄 명예를 위해 일생을 갈아 넣고 골방에서 연습하면서 명예하나로 버티고 있는 많은 예술가들의 경력문제를 소홀히 대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전 국립예술단 관계자는 “사실과 다른 경력으로 국내 공연예술계에서 걸맞지 않는 대접을 받는 것은 정의롭지 않을 뿐 아니라 많은 공연예술가들의 사기를 꺾는 일”이라며 “지자체와 공공예술기관들이 이를 알면서도 방관한다면 대한민국이 과연 문화국가인지 반문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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