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지원금 끊기면 막막...현대차 등 국내기업은 플랫폼·산업협력으로 장기전 대비

지난해 4월 독일 츠비카우의 폭스바겐 공장에서 한 직원이 차량 내부를 검사하고 있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뉴스퀘스트=김보민 기자】 바야흐로 전기차 전성시대다.

전세계가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전기자동차에 주력하면서 배터리·반도체 산업까지 모두 반사이익을 보고 있다.

그 중심엔 현재 유럽이 있다. 지난해 유럽은 폭스바겐·BMW 등 글로벌 기업의 호조세에 힘 입어 세계 전기차 판매 시장 점유율 43%를 기록했다. 예년보다 2배 늘어난 숫자다.

하지만 이러한 유럽의 굴기를 조만간 한국 기업들이 꺾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유럽 전기차 시장은 각국의 보조금 정책에 크게 의존해 단기적 이익을 보고 있는 반면, 한국 기업들은 기술 차별화에 주력하며 장기전에 대비하고 있는 것이다.

◇ "보조금으로 전기차 사세요"...수십억 투입해 구매량 늘렸다

현재 유럽 국가들은 막대한 정부 보조금을 투입해 소비자들의 구매를 끌어올리고 있다.

먼저 전기차 강국 독일은 지난해 6월부터 정부 보조금을 기존의 2배로 늘렸다. 4만유로(약5400만원) 이하 신규 순수전기차를 구매할 때 지급하던 정부 보조금을 기존 3000유로에서 6000유로(809만원)로 2배로 늘렸다.

프랑스도 보조금으로 전기차 구매를 늘리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해 "프랑스를 유럽 최대의 친환경차 생산국으로 만들겠다"며 전기차 대당 구매 보조금을 6000유로에서 7000유로(약 950만원)으로 상향했다. 

최근 무서운 성장세를 보인 스웨덴 전기차 시장도 정부의 지원정책의 효과를 톡톡히 봤다. 2020년 스웨덴 정부의 전기차 보조금은 1억3000만 크로나(약 173억원), 충전 설비 등 인프라 투자 규모는 5000만 크로나(약66억5000만원) 수준이다. 

코로나19 사태와 함께 경제 상황이 급격하게 나빠지자 유럽 각국이 인센티브를 앞세우며 곳간을 풀고 있는 모양새다. 

이에 화답하듯 유럽의 전기차 구매율은 크게 늘었다.

WSJ에 따르면 작년 유럽 전기차 전체 판매량은 139대 수준으로 전년(226만대) 대비 137% 급증했다. 전세계 연간 판매량이 같은 기간 324만대란 점을 감안했을 때 무시할 수 없는 규모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해 1월 시민기후협의회를 출범시켜 차량중량세와 전기차 보조금 등 기후변화 로드맵을 구상해 추진하고 있다. [사진=AFP/연합뉴스]

◇ 몇 년 후면 끝날 유럽의 '유도 전략'

다만 전문가들은 유럽 전기차 시장이 겉으로 보여지는 것과 달리 위태로운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인용한 업계 전문가들은 "유럽 전기차 시장의 성장세는 각국 정부의 인센티브 정책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며 "정부 보조금이 사라지면 성장 모멘텀은 언제든 뒤집힐 수 있다"고 보도했다.

파이낸셜타임즈(FT)도 독일 빅3의 지난해 역대급 실적을 보도하며 "독일 정부의 든든한 지원 덕이었다"고 평가했다.

유럽 각국에서 운영하고 있는 전기차 보조금 정책은 대부분 올해 말 만료될 예정이다.

아론트 엘링호스트 번스타인리서치 애널리스트는 "시장은 정부와 기업이 제공하는 할인에 극도로 민감하다"며 "보조금이 사라지면 전기차 판매는 못해도 1~2분기 동안 30~40% 정도 붕괴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전기차 보조금이 사라지거나 액수가 적어질 경우, 내연기관 차량과 가격 차이가 별로 없기 때문에 소비자들이 쉽게 등을 돌리게 될 것이란 지적이다.

실제로 중국에선 이와 비슷한 사례가 일어난 적이 있다.

중국은 2010년부터 신에너지 차량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전기차 구매자들에게 보조금을 지급하며 세계 최대 친환경차를 만드는 국가로 급부상했지만, 2020년 말 보조금 전면폐지를 예고하면서 시장이 쪼그라들었다. 

이에 중국 당국은 발등에 불이 떨어지듯 전기차 보조금을 되살려내 기한을 2022년까지 연장했다. 하지만 이 기간이 끝난 이후에도 비슷한 악재가 반복될 것으로 예상된다.

2일 현대차에 따르면 자사 주력 전기차 넥쏘는 유럽의 독립기구 '그린앤캡(Green NCAP)'으로부터 최고등급인 별 5개를 획득했다. [사진=현대차 유럽판매법인 제공]

◇ 차별화 전략·자매산업 강화로 우뚝 선 한국 기업

때문에 일각에선 단기적인 보조금에서 그치는 것이 아닌 장기 생존 전략을 꾀하는 한국 완성차 기업들이 전기차 시장의 판을 뒤집을 수 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자체 전기차 생산 플랫폼을 만들고, 배터리 등 국내 연계 산업과의 협력도 모색하며 단순 '보조금'에만 의존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국내 완성차 기업 현대차그룹은 이미 글로벌 시장에서 '강자'로 꼽히고 있다. 그 비결은 현대차만의 차별화 전략에 있다.

현대차는 자체적인 전기차 생산 플랫폼 E-GMP를 만들어 기존 전기차와 달리 1회 충전시 430km에 이르는 주행을 가능케 하는 등 기술 경쟁력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이번에 출시된 아이오닉5도 해당 플랫폼에서 생산됐다.

여기에 SK그룹과 포스코 등 국내 대기업과 함께 삼각 동맹을 구축해 미래 산업에 대한 협력 로드맵도 구상하고 있다.

일례로 현대차와 SK그룹은 수소 전기차 사업을 기반으로 한 양해각서를 체결해 시너지 효과를 낼 것이라고 밝혔다. 

국내 배터리 산업도 최강자로 떠오르고 있어 완성차 기업과의 협력도 기대되는 요소다.

에너지전문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올 1월 LG에너지솔루션은 18.5%로 2위의 자리를 공고히 했다. 삼성SDI도 4.8%로 5위를 차지했다.

유럽에는 아직 그렇다 할 전기차 배터리 시장이 없어 해외 공장에서 자국 전기차를 만들기 위해 부품을 모두 사들이는 실정이다. 올해 배터리 점유율 상위권은 한국을 비롯해 중국과 일본 등 아시아 기업들이 차지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이 지난해 7월 7일 충남 서산 SK이노베이션 배터리 공장에서 SK이노베이션 배터리가 탑재된 '니로EV' 앞에서 악수하고 있다. [사진=SK·현대차 제공]

때문에 WSJ는 앞으로 전기차 시장에서 앞장 서기 위해선 당근이 아닌 '채찍'을 선택하는 기업이 승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보조금 등이 단기적인 효과를 내는 데 도움이 되지만, 이에 안주하면 자급자족 할 수 없는 시장으로 도태될 것이란 지적이다.

WSJ는 자동차 제조업체 관계자들의 의견을 수렴해 "보조금은 자립적인 시장을 만들지 않을 것"이라며 "충전소와 같은 인프라 개발, 배터리 공장 건설 등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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