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선 수혜 예상되지만 EU에선 입지 쪼그라들 듯...중장기대책 필요

미국과 유럽연합(EU)을 중심으로 반도체 패러다임이 '자국 생산'으로 바뀌고 있다. 반도체 공급 대란 문제를 예방하기 위해선 자국 시장의 힘을 기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사진은 지난달 24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반도체 공급망 구축에 관한 행정명령 서명에 앞서 반도체 칩을 들고 있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사진=EPA/연합뉴스]
전세계 반도체 패러다임이 '자국 생산'으로 바뀌고 있다. 반도체 공급 대란 문제를 예방하기 위해선 자국 시장의 힘을 기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사진은 지난달 24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반도체 공급망 구축에 관한 행정명령 서명에 앞서 반도체 칩을 들고 있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모습. [사진=EPA/연합뉴스]

【뉴스퀘스트=김보민 기자】 미국과 유럽연합(EU)이 반도체 공급난 대책을 위해 발 벗고 나섰지만 한국 기업에 대해선 동상이몽에 빠졌다.

자국 생산을 증대하는 방식으로 패러다임을 바꿔 공급난 문제를 예방하겠다는 목표는 같지만, 한국 기업들과의 '상생'에 대해서는 입장 차를 보인 것이다.

미국은 중국을 제외한 해외 기업이 자국 공급망에서 더 활발히 활동하는 계획을 구상하고 있는 반면, 유럽연합은 완벽하게 아시아 국가 의존도를 줄이는 '자립 전략'을 모색하고 있다.

◇ 미국·EU "공급난 문제 해결 하려면 '자국의 힘' 필요하다"

먼저 미국은 수백달러를 들여 반도체 산업을 증진시키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4일(현지시간) 의회 소식통을 인용해 "미 상원이 자국 내 반도체 시장의 생산 확대를 위해 300억달러 재정을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중"이라고 보도했다.

미국 기업 뿐만 아니라 자국에서 파운드리 공장을 운용하는 해외 기업도 대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조 바이든 대통령이 중국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최근 서명한 '공급망 검토 행정명령'의 연장선으로 해석된다. 

바이든은 지난달 24일(현지시간) 행정명령을 통해 반도체, 전기차용 대용량 배터리, 희토류, 의약품 등 4대 핵심 품목의 공급망에 대해 검토를 진행하도록 했다.

EU도 이번 공급난을 반면교사 삼아 자국 내 최첨단(cutting-edge) 반도체 생산을 증대한다는 방침이다. 

블룸버그통신이 입수한 관련 문서 초안에 따르면 EU는 2030년까지 전세계 반도체 생산량 중 20%가 자국에서 나올 수 있는 로드맵을 구상하고 있다. 

미국, 그리고 특히 아시아에 대한 의존도를 10년 안에 크게 줄여, 이후 공급대란이 일어나더라도 자급자족할 수 있는 형태로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EU 집행위원회는 이와 관련된 공식 입장을 다음주에 발표할 예정이다.

유럽연합은 지난달에도 반도체 산업의 아시아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최대 500억유로(약 67조5000억원)를 투자하는 방안을 발표하기도 했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 '300억달러 공존' 꾀한 미국, '아시아 OUT' 원하는 유럽

이들의 구상은 언뜻 보면 '자국의 반도체 생산력을 키우겠다'는 점에서 같지만 한국 기업을 향한 속내는 다르다. 

미국 내부에선 바이든 대통령의 정책에 힘 입어 한국 기업이 수혜를 볼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파이낸셜타임즈(FT)는 행정명령 서명이 나온 직후 "바이든이 중국 기술에 대응해 다자연합을 구축할 계획"이라며 "대만, 일본, 한국의 협력이 중대해졌다(crucial)"고 보도했다.

워싱턴포스트가 인용한 마리오 모랄레스 IDC 반도체 분석가도 "한국과 같은 국가에선 수십년간 칩 제조에 대한 막대한 투자를 단행해왔다"며 한국의 반도체 역사가 비교적 길다고 평가했다.

이에 화답하듯 국내 반도체 강자들은 잇따라 미국 내 사업 확장을 계획하고 있다.

일례로 삼성전자는 텍사스주 오스틴시 이외에도 애리조나, 뉴욕주 등 파운드리(위탁생산)를 신설할 후보지를 검토하고 있다. 투자 금액만 170억달러(약19조원)이다.

반면 유럽 내 우리 기업의 입지는 쪼그라들 것으로 보인다.

아시아 국가에 대한 의존도를 없앤다는 것 자체가 한국 강자들의 제품도 공급받지 않겠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국가들의 반도체 생산 규모는 거대하다.

미국반도체산업협회(SIA)와 보스턴 컨설팅그룹(BCG) 등이 최근 내놓은 분석 자료에 따르면 전세계 반도체 생산량에서 아시아 국가가 차지하는 비중은 80%다.

외신에 따르면 현재 EU는 최대 500억유로(67조2700억원) 규모로 첨단 반도체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삼성전자와 대만 TSMC를 최우선 참여기업으로 꼽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유럽 국가들이 자급자족 형태로 반도체 생태계를 구축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사진은 삼성 화성사업장 반도체 클린룸 내부 모습. [사진=삼성전자 제공]

업계에선 유럽의 적극적인 태세에 국내 기업들도 중장기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보고 있다.

이에 대해 이창한 반도체산업협회 상근부회장은 5일 열린 대한상공회의소 회의에서 "글로벌 시장은 급변하는 대변혁기 속에 있다"며 "국내 반도체 산업이 미래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디지털 전환과 탄소중립, 규제 개혁 등 3대 이슈에 대한 대응이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디지털 전환 및 디지털 주권은 유럽 주요국에서도 강조하고 있는 개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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