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력파 여성조사가 올린 제주 대포알 갑오징어.
실력파 여성조사가 올린 제주 대포알 갑오징어.

【뉴스퀘스트=하응백 문화에디터】 갑오징어 배낚시는 여러 배낚시 중에서도 가장 섬세하고 재미있는 낚시다.

특히 가을철 서해 갑오징어 낚시의 매력에 한 번 빠지면 벗어나기 힘들다. 가을이면 출조할 날만 손꼽아 기다리는 마니아들이 의외로 많다.

갑오징어를 잡기 위해서는 갑오징어가 촉수로 에기를 건드리는 것을 알아챌 정도의 감각을 손으로 느껴야 하기 때문에 특히 낚싯대와 라인과 채비에 신경을 많이 쓴다.

최근 경향은 경질대와 0.8호 합사를 많이 사용하는데, 이는 손의 감각을 극대화시키기 위해서다.

한번 출조해서 갑오징어 100마리를 낚는 경우를 백갑이라고 한다. 이 백갑이를 한 번이라도 해본 낚시꾼을 갑오징어 낚시의 고수로 인정한다.

필자는 2019년 가을 딱 한 번 해보았다. 백갑이는 낚시꾼의 실력과 장비와 선장의 실력과 날씨와 물때가 다 받쳐주어야 가능하다.

갑오징어 낚시는 일반적으로 9월 중순 이후 11월 초순 정도까지 약 두 달 동안 군산권에서부터 무창포, 대천, 오천, 안면도, 인천 앞바다 등지에서 이루어진다.

9월에 잡으면 씨알이 잘지만 한 주가 무섭게 부쩍 자라 10월 중순이면 덩치 큰 녀석들도 가끔 올라온다.

갑오징어 낚시가 워낙 재미있는 낚시다 보니 마니아들은 겨울이나 봄철에도 남해로 갑오징어낚시를 다닌다. 남해 여수나 통영 거제권은 12월까지, 4월부터 전남권에서는 봄 갑오징어 낚시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2018년 무렵부터는 제주에서도 갑오징어 낚시를 한다는 소문이 들리더니 1월에서 4월까지 제법 조과도 좋고 무엇보다 씨알이 훌륭하다고 해서 2월 중순 배를 예약했다.

하지만 바람 때문에 출조 불가. 3월 13일, 7물이기는 하지만 날씨가 좋아 제주로 향한다. 제주 갑오징어 낚시에 처음 도전하는 것이다.

6시 5분 김포에서 첫 비행기를 타고 제주 공항 도착. 서부호 선장이 픽업을 나와 있다. 애월을 지나 신창항으로 가는 동안 창밖을 바라본다. 서울은 이제 막 봄이 시작되었다.제주는 이미 완연한 봄이다. 유채꽃 노란빛이 찬란하다.

8시 40분경 출항하여 배는 동북쪽으로 나간다. 바다가 좀 꼴랑거리긴 하지만 낚시하는 데는 지장이 없을 것 같다.

신창 앞바다에는 약 10기 정도의 대형 해상 풍력발전기가 설치되어 있고 육지 쪽에도 10여기가 있다.

그만큼 바람이 많이 부는 바람의 길목일 것이다. 바람의 길목은 물고기의 길목일 수 있다.

제주 신창 앞바다 해상풍력발전기.
제주 신창 앞바다 해상풍력발전기.

30~40분 나가서 배는 풍을 펼친다.

풍은 제주배들이 갈치잡을 때 사용하는 것으로 물닻이라고도 한다. 대형 낙하산을 물속에 펼쳐 놓는다고 생각하면 쉽다.

그러면 배가 조류에 안정적으로 흐르면서 배가 바람과 조류에 급속하게 반응하지 않게 된다.

풍이 펼쳐지면 낚시줄이 비교적 반듯하게 수직으로 내려가는 장점이 생겨 옆 사람과 채비가 덜 엉키게 된다.

수심 깊은 곳에서 낚시를 하니 풍을 사용하는 듯싶다.

채비를 입수하니 수심은 70~80m 정도, 광장히 깊다. 봉돌은 30호를 사용한다. 40호를 사용해야 할 때도 있다. 바닥은 거의 모래와 같이 고운 성질의 뻘이다.

이런 곳에서 갑이가 나온다니 신기하다. 서해의 경우 바닥이 돌과 바위거나 테트라포트와 같은 험한 지형에서 많이 나오는데 제주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봉돌을 30호, 약 120g짜리를 달고 바닥을 찍는다.

채비를 살짝 들어가며 갑이의 입질을 감지해야 하는데, 이건 거의 불가능할 거 같다는 예감이 든다.

보통 서해에서는 6호(24g) 정도, 아주 무겁게 달아도 12호(48g), 특수한 경우에 16호(64g)을 다는데 30호 봉돌을 다니 도무지 느낌이 없다.

가장 감이 잘 전달되는 양면도래에 봉돌과 에기를 직결한 채비를 했지만 감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아주 간간이 ‘히트’라는 소리가 들린다.

씨알은 확실히 크다.

가끔 대포알 사이즈가 올라온다.

선장은 뜰채 바가지로 큰 씨알 갑이의 랜딩을 돕는다.

2시간 낚시를 했지만 감감. 맨 앞에서 낚시를 하는 사무장만 몇 마리를 올린다.

분명 사무장 에기에만 갑이가 반응하는 게 아니라 내가 감을 못 잡아 갑이를 못 잡는 거다. 사무장에게 다가가 우선 채비를 유심히 본다.

3각 도래를 사용한 자작 채비다. 긴 쪽이 30cm쯤 되고 여기에 에기를 단다. 15cm쯤 되는 길이에 봉돌을 단다.

그러니 역단차 15cm의 가짓줄 채비다.

갑이를 잡을 때 일반적으로 서해에서는 봉돌로 바닥을 읽으면서 미세한 입질(촉수를 에기에 뻗는 입질)이 오면 쎄게 채서 잡거나 볼동을 살짝살짝 들어 무게감이 다르면 채서 잡는 건데, 제주에서는 봉돌이 무거우니 이게 거의 불가능하다.

그런데 사무장은 왜 잡는가? 사무장에게 봉돌이 바닥에 닿으면 느낌을 감지해 잡느냐고 물었더니 그렇게 하는 게 아니란다. 자기는 봉돌을 살짝 띄우고 기다린단다.

아! 유레카. 수심이 깊고 조류가 쎄니 봉돌을 무거운 걸 쓴다.

그러니 바닥 확인해서 입질을 파악한 뒤 잡는 건 조과가 떨어진다. 들고 있으면 일종의 무중력이 되고 이때 에기를 잡아당기는 감이 오면 쎄게 채는 거다. 바닥은 확인용으로만 사용한다. 만약 서해에서 이렇게 하면 백발백중 밑걸림이다.

아예 봉돌을 들고 기다리는 건 밑걸림이 없고 수심이 깊은 제주 바다에 특화된 갑이 사냥법이다.

생각해보니 이건 제주 한치잡이 할 때 삼봉(에기 등에 생미끼를 달고 철사로 칭칭 감아 놓은 것) 채비를 달고 거치시켜 놓으면 한치나 오징어 입질이 오고 이때 채서 잡는 거와 같은 원리다. 바닥에서 들어서 하니 단차를 많이 준 거다.

바닥에서 약 10cm 들고 하는 한치낚시와 같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더 쉽다.

사무장과 똑같은 채비를 만들어 낚시를 한다.

그런데 이게 만만치 않다.

왜냐하면 10cm 정도 바닥에서 들고 기다리면 되는 것이지만, 바다가 호수가 아니니 배가 파도를 타서 내 채비가 바닥에 닿기도 하고, 더 올라가기도 한다. 상당한 스킬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그러다가 채비를 조금 들고 있는 데 ‘슉’ 하는 입질이 왔다. 반사적으로 챔질을 하니 묵직하다. 갑이다. 첫 제주 갑이다. 천천히 랜딩을 하면서 선장에게 뜰채 바가지 지원 요청을 한다. 상당히 큰 크기의 갑이가 올라왔다. 꽝은 면했다.

이 한 마리를 잡으려고 잠도 못자고 비행기 타고 왔다.
이 한 마리를 잡으려고 잠도 못자고 비행기 타고 왔다.

요령을 알았건만 오후 2시가 지나자 배 전체에서 조과가 거의 없다.

열심히 하려고 해도 한계가 있다.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낚시를 한다는 설렘 때문에 간밤에 한잠도 못 자고 뜬눈으로 밤을 센 후유증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래도 집중, 마침내 한 마리 입질을 더 받아낸다.

오후 4시 30분 철수. 항구로 돌아온다.

이날 낚시를 정리하면 이렇다.

서부호 선장은 이날 조황이 근래 최악이라고 한다. 사무장이 9마리, 그리고 많이 잡은 사람이 5마리, 못 잡은 사람이 1~2마리 정도다.

1월에는 10여 수 이상, 많이 잡으면 20여 수도 잡았다고 한다. 왜 하필 내가 처음 출조하는 날 몰황이었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다.

사무장이 잡아놓은 갑이 한 마리를 맘씨 좋은 선장이 한 마리 하사해서 총 조과는 세 마리가 되었다.

충분한 조과라고 할 순 없지만 이것만으로도 한 잔 술의 안주와 한 번의 회파티는 충분하다.

어쨌거나 총조과. 휼륭한 안주거리다.
어쨌거나 총조과. 휼륭한 안주거리다.

다음에 출조한다면 훨씬 많은 조과를 올릴 수 있을 것이다.

낚시를 해보면 그렇다. 첫 시도의 낚시에서 대박을 치면, 그 다음에는 잘 잡지 못한다. 처음에 최악을 경험하면 그 다음에는 훨씬 발전한다.

그에 맞게 준비하고 연구하기 때문이다.

서해 갑오징어 낚시의 장점은 심심할 틈이 없다는 너나너나(바다에 채비를 넣으면 고기가 나온다는말)인데, 제주 갑오징어 낚시는 그와는 판이했다(이날 에기는 흰바탕에 레드그린 헤드, 일명 초고추장에 반응이 좋았다).

갑오징어 실력파이면서 대물낚시를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한 번 도전해볼만 하다.

다만 에기는 삼봉 색깔별로 몇 개와 초고추장, 그리고 허리가 튼튼하면서도 끝은 좀 감도가 있는 9대1 정도의 경질대, 라인은 0.6호에서 0.8호 사용할 것을 권장한다.

몰황인 날이 있으면 대박인 날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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