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건물 넘어 전력망에도 배터리 연결...에너지 저장·운반체 역할 확대

미국 텍사스주에서 한파로 대규모 정전 사태가 발생한 가운데 지난 2월 17일(현지시간) 주민들을 태운 차량이 갤버스턴 지역에 마련된 한파대피소로 들어가기 위해 줄지어 서 있다. [사진=갤버스턴 로이터/연합뉴스]

【뉴스퀘스트=김보민 기자】 미국이 기록적인 한파를 겪으면서 여실히 드러난 문제가 있다. 바로 '라이프라인망' 없이 생활해야 한다는 점이다.

라이프라인망은 전기·가스 등 도시생활의 필수적 자원을 뜻한다. 지난달 한파가 몰아닥친 미국 텍사스주 400만 가구는 정전 사태로 난방설비 등을 전부 이용할 수 없었다.

이에 '전기차'가 이러한 문제를 해소해 줄 새로운 '해결책'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정전이 일어나더라도 전기차를 에너지저장시스템(ESS)과 에너지 운반체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 스마트폰 충전 뿐이라고? '집·건물·전력망'에도 연결한다

15일 한국자동차연구원은 산업동향 보고서에서 전기차 배터리를 외부 전력 공급용으로 활용하는 전기차의 새로운 역할에 주목했다.

텍사스주 주민들이 정전 사태가 발생했을 때 자동차 공조장치와 소형발전기 등을 이용해 응급 상황에 대응했던 것처럼, 앞으로 전기차 배터리가 재해 상황에 사용되는 등 활용처가 많아질 것이란 전망이다.

연구원에 따르면 전기차에 탑재되는 고용량 배터리의 경우 가정에서 약 10일간 사용하는 전력을 저장할 수 있다. 응급상황 시 주요 전력공급원 역할을 할 수 있다.

일례로 현대차가 최근 출시한 아이오닉5의 배터리 용량은 72.6kWh(킬로와트시)로, 지난해 말 서울시 가구당 일일 전력 평균사용량 7.3kWh의 10배 수준이다.

특히 전기차 배터리를 외부 전자기기에 연결하거나, 더 나아가 건물과 전력망 등에 연결하는 다양한 시도가 진행 중에 있다.

먼저 가장 쉽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은 V2L(Vehicle-to-Load)이다. 이는 현대차 아이오닉5에 탑재된 기능이기도 하다.

해당 차량은 2열 시트 하단에 실내 V2L 포트를 설치해 운행 중 전기를 이용할 수 있고, 외부 충전구를 통해서는 주차 중에 최대 3.6kW의 전력을 공급받을 수 있다.

V2H(Vehicle-to-Home)와 V2B(Vehicle-to-Building)처럼 집과 건물로 전력을 공급하는 기술도 개발됐다.

일본의 완성차기업 닛산은 2012년 전기차에 저장된 전기 에너지를 가정용 전기로 활용하는 V2H 기술을 도입했고, 2013년에는 오피스 빌딩에 전기를 공급하는 V2B 시스템을 선보였다.

캐나다 스타트업 '오시아코'도 정전 시에 전기차 배터리를 응급 전원으로 사용할 수 있는 배터리를 개발했다.

한편 전력망에 전기를 공급하는 V2G(Vehicle-to-Grid)는 아직 양산 단계까지 도달하지는 못했다. 다만 닛산과 현대차를 중심으로 개발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닛산은 지난 2018년 전력수요에 따라 전기차에 저장된 전력을 유동적으로 활용해 전력망을 안정화하는 등의 내용을 포함한 '닛산 에너지' 계획을 발표하고 추진 중이다.

현대차도 전기요금이 비교적 저렴한 심야시간대에 배터리를 충전하고 이를 전기 사용량이 많은 낮 시간대에 다시 전기회사에 판매하는 V2G 모델을 개발하고 있다.

이를 통해 비상 대비 뿐만 아니라 전기차 소유주들이 수익도 창출할 수 있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현대차 아이오닉5에 연결된 런닝머신에서 훈련하는 선수들. [사진=현대차 유럽법인 제공]

일각에선 외부 전력 공급 기능이 주행거리를 단축시키고, 반복된 충전으로 배터리 수명이 저하될 수 있다고 지적했지만, 차세대 배터리가 등장한 이후에는 상황이 나아질 것으로 보인다.

한국자동차연구원 측은 "전기차 배터리 성능이 향상되고 배터리 구독 서비스 등 새로운 모델이 늘어나면 ESS와 에너지 운반체로서 전기차의 활용도가 더 높아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어 "배터리 밀도와 전기차 에너지 효율성이 향상되면 외부 전력 공급으로 인한 주행거리 단축을 우려하지 않아도 될 뿐 아니라 충전 시간도 단축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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