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냉전 후 우리의 대북정책은 1998년과 2008년 두차례 극에서 극으로 이동하는 단절적 양상을 경험했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도 대북 정책을 둘러싼 대논쟁이 있었다. 야당에서는 이명박 정부 5년간 평화는 위협받고 안보는 위태로와졌다고 비판하며 햇볕정책으로 돌아가 북한을 적극 포용할 것으로 주장했다. 야당이 선거에서 이겼다면 또 한번의 극적인 정책변화가 예고된 것이었다.

그러나 정권교체시 마다 극에서 극으로 이동하는 대북 정책의 전면적 수정은 긍정적인 효과보다는 많은 후유증을 가져왔다. 정책의 단절을 흔히 정부보직의 개편과 인적 쇄신으로 이어져 대북정책 인프라의 불안정을 초래해 새로운 정책이 추진되기까지의 시간이 소요되고 또 다시 시행착오를 반복하게 되었다. 정책의 반복적인 단절은 북한으로 하여금 정책변화를 위해 선거에 개입하거나 신정부의 출범 직후 압력을 행사하려는 유혹을 느끼게 만들기도 하였다.

무엇보다도 이전 정부의 정책을 지지하는 국민에 대한 설득이 쉽지 않고 이는 국민적 지지를 바탕으로 한 대북정책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미국이 대외정책에서 만큼은 초당적 외교를 전통적으로 하는 것이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대북 정책의 극단적인 변화는 남북관계에 대한 좌절감에 기인한다. 물론 남북관계 경색의 책임이 우리 탓은 아니며 역대 모든 대북정책은 북한의 태도에 의해서 좌절을 겪었다.

박근혜 정부는 이 같은 문제점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제안한 것이다. 남북관계의 근본 문제는 신뢰의 부족에서 오는 것이며 대결과 불신의 악순환을 단절시키기 위해서 남북간 신뢰를 쌓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에서는 균형정책을 통해 정책의 일관성을 도모하고자 한다.

균형은 반드시 강경과 유화의 중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단호할 때는 단호하게 유연할 때는 유연하게 하면서 한반도 문제에 대한 대립적 요인들을 잘 조율하는 것을 의미한다. 안보와 교류협력, 남북대화와 국제공조, 협상과 억지간 균형이 잘 유지되면 정권이 바뀌거나 예기치 못한 사건이 발생하더라도 기본 틀이 흔들리지 않고 정책의 일관성이 유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장거리 미사일 발사와 3차 핵실험으로 박근혜 정부를 맞이한 북한이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에 호응하기 보다는 위기를 고조시키는 상황에서 박근혜 정부가 정책추진 과정에서 고려할 점을 몇 가지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북한을 어떻게 인식하고 어떻게 다루며 주변국과의 협조는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고 이에 대한 공감대를 확산시켜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에 대해 알고 있다고 하지만, 정확히 그 의미를 파악하는 경우는 드물다. 혹자는 햇볕정책과 혼동하기도 하고, 혹자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과 유사하다고 하기도 한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결코 유화정책이 아니다. 다만 북핵문제와 모든 것을 연계해서 전략적 인내를 하기 보다는 북핵 문제에도 불구하고 인도적 지원과 다양한 대화채널을 확보함으로써 한반도 긴장을 완화하고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겠다는 것이 이명박 정부와의 차이점이다. 한편 남북경협의 증대는 신뢰의 수준에 맞게 이뤄져야 한다고 보고 신뢰수준에 맞지 않는 경협의 확대를 자제함으로써 과속 위험성을 줄이겠다는 것이 햇볕정책과의 차이점이다.

둘째, 북한이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는 상황에서 타이밍상 대화나 지원 보다는 안보와 한미동맹 등에 초점을 맞추어 대응하되, 제재와 안보국면 이후의 상황에 대해서는 미리 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미국은 북한의 벼랑 끝 전술에 밀려 대화에 나서지 않을 것이며 제재와 억지력을 통해 북한의 태도를 변화시킨 후 미국의 프레임에서 북한과 대화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러나 제재국면이 지나고 하반기 대화국면에 재개될 때, 한국이 주도권을 갖고 남북관계를 풀어나간다면 미국은 이에 편승해 미북대화를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대비해 보다 창의적인 방법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비단 남북간 양자 관계 뿐만 아니라 미국과 중국 등 주변국을 통한 북한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최진욱 통일연구원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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