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퀘스트=허태임(국립백두대간수목원 연구원)】 장미의 오월이 가고 수국의 유월이다. 지금은 수국의 시간. 곳곳에서 수국 꽃소식이 안부처럼 오고 간다. 

우리 선조들은 수국을 수구(绣球) 또는 수구(繡球)라고 기록했었다.

자수를 놓은 것처럼 아름다운 꽃이 둥글게 핀다는 뜻이다.

정약용의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와 박지원의 '열하일기(熱河日記)'에도, 조선 후기의 사물을 기록한 유희의 '물명고(物名攷)'에도 수국이 아니라 수구라고 적혀 있다.

일제강점기를 통과하며 식물명을 정리하던 시기에 일본 이름을 따라 수국(水菊)으로 부르게 되었다.

그 이름처럼 물을 좋아하는 꽃이다. 

수국은 우리 땅에서 저절로 자라는 자생식물이 아니다.

원산지는 일본. 일찍이 일본에서는 다양한 수국 품종이 개발되어 우리나라 남부지방을 비롯하여 북반구 전역에 정착하게 되었다. 

자신이 자라는 환경을 깐깐하게 따지지 않고 무던하게 뿌리를 내어 금세 몸집을 불리기 때문에 수국은 예부터 정원 식물로 신뢰를 얻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꽃이 풍성하고 변색의 묘술을 부려 보는 이로 하여금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이게 다 그들 몸에 알알이 농축된 생존 전략 덕분이다.

수국은 꽃의 역할을 안배할 줄 안다.

생식에 관여하는 참꽃과 곤충을 유인하는 장식꽃으로 임무를 분담해 놓은 것이다.

둥근 꽃차례의 가장자리에 핀 큰 꽃은 꽃받침으로 치장한 장식꽃으로 꽃가루받이를 유인하는 임무를 맡았다.

씨앗을 맺는 진짜 꽃은 가운데에 꾸밈없이 다글다글 모여있다.

생명을 잉태하기 위하여 선택한 지혜로운 전략인 것이다.

이로써 비단에 수를 놓은 듯한 그 둥글고 고운 꽃이 전체적으로 완성된다.

하지만 인간은 그들의 생식 기능을 아예 없애고 장식화만 달리는 원예 품종을 만들기도 한다.

자연의 뜻을 거스른 채 더욱 화려한 꽃을 보기 위함이다.

수국의 원산지는 일본이다. 일찍이 다양한 품종이 개발되어 북반구 전역에 즐겨 심는다. 둥근 꽃차례의 가장자리에 화려하게 핀 큰 꽃은 꽃받침으로 치장한 장식꽃이다. 본래 씨앗을 맺는 진짜 꽃은 꾸밈없이 가운데에 다글다글 모여있다. 장식화만 달리는 원예 품종이 우리에게 익숙한 수국이다. [사진=일본 미토시 공식사이트]
수국은 토양의 산도에 따라 꽃 색깔이 변하기 때문에 꽃을 보면 그 땅을 알 수 있다. 푸른 꽃이 피면 산성 토양, 붉은 꽃이 피면 염기성 토양이다. 토양에 대한 수국의 반응은 그 땅에 사는 곤충과 연결된다. 산성의 땅에 사는 곤충이 좋아하는 푸른색을, 염기성의 땅에 사는 곤충이 좋아하는 붉은색을 몸에 입혀서 수국은 꽃가루받이에 성공하기 위한 치밀한 전략을 세운다. [사진=일본 미토시 공식사이트]

수국은 흙과 소통하며 스스로 꽃 색깔을 바꿀 줄 안다.

이것이 그들이 자연에 순응하며 선택한 두 번째 전략이다.

수국은 토양의 산도에 따라 꽃 색깔이 변하기 때문에 꽃을 보면 그 땅을 알 수 있다.

푸른 꽃이 피면 산성 토양, 붉은 꽃이 피면 염기성 토양.

산도를 측정하는 리트머스 용지는 산성에 붉은색, 염기성에 푸른색, 중성에 보라색으로 반응한다고 과학 시간에 배우는데 수국은 정반대다.

그 표식의 역할을 식물체 내에서 ‘안토시아닌’이 담당하기 때문이다.

안토시아닌은 본래 식물체의 붉은색을 결정하는 역할을 한다.

산성의 땅에는 수국이 흡수할 수 있는 알루미늄 성분이 많다.

그 땅에서 양분을 흡수한 수국의 체내에 알루미늄이 둥둥 떠다니다가 안토시아닌을 만나 결합하게 되면 안토시아닌 본래의 붉은색이 변형되어 푸른색이 꽃에 발현된다.

반대로 염기성의 땅에는 흡수하고 남을만한 알루미늄 성분이 없어서 체내의 안토시아닌이 별도의 결합 없이 본연의 붉은색을 꽃에 드러내게 된다.

가을에 드는 붉은 단풍도 같은 원리다.

양분의 흡수가 차단되어 더는 초록의 엽록소를 생산하지 않으므로 안토시아닌 본래의 붉은 색이 잎에 드러나는 것. 

토양에 대한 수국의 반응은 그 땅에 사는 곤충과 연결된다.

산성의 땅에 사는 곤충이 좋아하는 푸른색을, 염기성의 땅에 사는 곤충이 좋아하는 붉은색을 몸에 입혀서 꽃가루받이에 성공하겠다는 수국의 치밀한 전략이기도 하다. 

토양에 따라 꽃의 색깔이 다채로워서 수국은 팔선화(八仙花) 또는 팔색조의 꽃으로도 불린다.

원산지인 일본에서는 진분홍 꽃이 보편적이라 자양화(紫陽花)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러한 수국의 특성을 이용해서 정원에서는 원하는 꽃의 색깔을 얻을 수 있다.

푸른 수국을 보고 싶다면 피트모스나 이끼 거름을 덮어주어 흙의 산도를 높이면 된다.

거기다가 물을 충분히 주면 알루미늄 성분이 더 많이 녹아서 수국의 알루미늄 섭취를 도울 수 있다.

붉은 꽃을 보고 싶다면 반대로 흙의 염기성을 높이고 수국의 알루미늄 섭취를 낮추면 된다.

석회질이 섞인 알칼리성 토양을 덮어주어 염기성 흙을 만들거나, 인산의 비율이 높은 비료를 주어 수국이 흡수할 수 있는 알루미늄을 인산에게 넘기는 방법 등이 있다.

흙을 배합하는 요령에 따라서 하늘색, 보라색, 그레이도브, 코발트블루 등의 다양한 색을 기대할 수 있다는 점이 수국 기르는 일의 묘미일 것이다.

흰 꽃을 피우는 나무수국은 중국과 일본이 원산이다. 7월에서 9월 사이에 꽃이 핀다. 자잘한 꽃들이 원뿔 모양으로 모여 피어 둥근꽃차례의 수국과 다른 매력이 있다. 건조와 추위를 견디는 힘이 강해서 도로변의 가로수나 공원의 조경수로 전국에서 애용된다. [사진=허태임(국립백두대간수목원 연구원)]

변색의 기술 없이 내내 흰 꽃을 피우는 나무수국을 요즘 공원과 정원에 즐겨 심는다.

나무수국은 중국과 일본이 원산이다.

수국의 시간이 다 가고 그들의 시간이 온다.

7월에서 9월 사이에 피고 지는 한여름의 꽃.

수국의 둥근꽃차례와 달리 나무수국은 자잘한 꽃들이 원뿔 모양으로 모여 핀다.

수국에 비해 건조와 추위를 견디는 힘이 강해서 도로변의 가로수나 공원의 조경수로 전국에서 애용된다.

색도 모양도 이름도 화려한 다양한 재배 수국을 알면 알수록 내게는 모름지기 산수국이 최고다.

일본에서 개량한 수국의 원예 가치에 밀린 채 산속에서 조용히 살아가는 우리 땅의 산수국.

그들 꽃이 요즘 한창이다.

산과 숲을 누비는 나에게 이 무렵은 산수국의 시간이다.

수국에 비해 장식꽃이 많이 달리지 않아서 산수국은 다소 차분한 모양새다.

무더기로 심어서 기르는 수국과 달리 있어야 할 자리에 띄엄띄엄 뿌리내리고 사는 편이다.

그 청초한 자태와 품위 있는 산수국의 모습을 나는 아주 좋아한다. 

산수국은 우리 땅에서 나고 자라는 자생식물이다. 화려한 재배 수국에 뭇 관심이 집중될 때 산수국은 깊은 숲에서 조용히 피고 진다. 수국에 비해 장식꽃이 많이 달리지 않아서 산수국은 다소 차분한 모양새다. 무더기로 심어서 기르는 수국과 달리 있어야 할 자리에 띄엄띄엄 뿌리내리고 사는 편이다. 그 자태가 청초하고 품격있어 보인다. [사진=허태임(국립백두대간수목원 연구원)]

산수국의 잎과 꽃은 차로 우려 마실 수 있다.

물에 우러나는 특유의 단맛과 박하향이 매력이다. 특히 어린잎을 발효하면 단맛이 강해져서 다원에서 산수국은‘감로차’로 통하기도 한다.

이를 서양에서는 ‘천국의 차’로 소개한다.

국내의 일부 다원에서는 일본 원산의 툰베리산수국(var. thunbergii)을 개량한 산수국 차나무 품종을 재배하여 발효차를 만든다. 

꽃도 차도 일본의 원종에 의존하는 수국의 현실이 내심 아쉬웠는데 최근에는 자생하는 우리 산수국의 가치가 밝혀지고 있다.

산수국 잎 추출물이 인체의 면역력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을 안동대학교 정진부 교수팀이 확인했다.

묵묵히 우리 자생식물의 가치를 밝히는 연구에 매진하는 그 연구실을 나는 따뜻한 마음으로 응원하고 있었는데, 최근 반가운 소식을 국제학술지에서 보게 되어 크게 기뻤다.

하동군이 국내의 화장품 연구개발 회사와 협력하여 산수국에서 피부의 개선과 체지방 감소에 효능이 있는 추출 성분을 밝혔다는 소식도 들었다.

우리 자생식물의 가치가 널리 알려지는 일은 언제 들어도 꽃소식처럼 설렌다. 

산수국 말고도 한반도에는 바위수국과 등수국이 울릉도와 제주도의 숲과 계곡에서 자란다.

그리고 제주의 성널오름 근처 계곡에는 몇 그루 안 남은 성널수국이 그들의 서식지를 간신히 지키고 있다.

등수국은 울릉도와 제주도의 숲에 사는 덩굴나무다. 등나무처럼 거목과 암석을 감고 오르는 힘이 대단하다. 꽃은 흰색이고 장식꽃에 비해 참꽃이 많이 핀다. [사진=허태임(국립백두대간수목원 연구원)]
바위수국은 등수국처럼 울릉도와 제주도의 숲에 사는 덩굴나무다. 장식꽃의 꽃받침이 갈라지지 않고 달랑 1장만 달리기 때문에 등수국과 뚜렷하게 구분된다. [사진=김진석]
성널수국은 2004년에 성널오름에서 처음 발견되었다. 그전에는 일본의 고유식물로 알려졌던 식물이다. 다른 수국류에 비해 가녀린 몸체에 커다란 꽃받침 잎이 인상적이다. [사진=김진석]

이맘때 일본에서는 오랜 전통과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는 수국 축제가 지역의 자랑처럼 곳곳에서 개최된다.

일본을 베껴 쓰듯이 최근 들어 국내에서도 수국 축제가 호화롭게 열린다.

수국이 탐스럽게 피어 있는 사진과 축제의 초대 문구를 보고 있자면 나는 자꾸만 서운한 마음이 앞선다.

이 땅에서 나고 자란 수국들과 함께하는 우리의 축제가 열렸으면 하는 마음 때문이다.

지금은 수국의 시간.

한반도의 숲과 계곡에서 가만히 피고 지는 우리의 산수국과 바위수국과 등수국과 성널수국을 나는 만나러 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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