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 읍내리 왕버들

대한민국에는 약 1만5000그루의 보호수가 있습니다.

마을에 오래 살아 마을 사람들의 삶과 함께 한 나무입니다. 느티나무, 은행나무, 소나무 등 여러 수종의 나무입니다. 이 나무에는 각자 스토리가 있습니다.

나무와 관련된 역사와 인물, 전설과 문화가 있습니다. 이게 바로 문화콘텐츠입니다.

나무라는 자연유산을 문화유산으로 승화시킨 예입니다.

뉴스퀘스트는 경상북도와 협의하여 경상북도의 보호수 중 대표적인 300그루에 대한 스토리텔링을 연재합니다. 5월 3일부터 매주 5회 연재를 시작합니다. 많은 구독 부탁드립니다.

<편집자주>

영주 읍내리 왕버들은 역사의 아픔을 간직한 소중한 나무다. [사진=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뉴스퀘스트=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영주 읍내리 왕버들은 한눈에도 엄청난 규모의 위용을 갖추고 서 있다.

높이가 20m나 되고, 가슴높이 둘레는 6m를 훨씬 넘는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왕버들 가운데 하나다. 읍내리 왕버들은 지역의 아픈 역사를 담고 있는 나무다.

나무줄기 껍질에 켜켜이 쌓인 세월의 흔적은 역사의 아픔을 그대로 간직한 듯하다.

역사적으로 큰 의미를 지닌 영주에서는 역사의 흔적을 지닌 노거수를 적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봉도각 연못 앞의 왕버들은 그중 첫 손에 꼽히는 노거수다. 

읍내리 왕버들이 서 있는 순흥면사무소 뒤뜰에는 오래전에 순흥도호부 관아(順興都護府 官衙)가 있었다.

순흥은 크게 부침(浮沈)을 겪었던 역사를 가진 고장이다.

고려시대에 순흥부였던 이 지역은 조선 태종 13년인 1413년에 도호부로 승격되었다.

그러나 1457년 단종복위운동 사건 때 순흥도호부가 혁파됐다.

이후 200여 년이 흐른 숙종 때에야 단종이 복권되면서 숙종 9년인 1683년 이곳 주민들이 상소를 올려 다시 순흥도호부가 설치되었다.

그 뒤 영조 29년인 1754년에 순흥도호부 부사 조덕상이 관아 뒤뜰에 승운루(勝雲樓)라는 누각을 지었다.

이때 누각 서쪽에 연못을 만들어 그 가운데 섬을 쌓고, 그 위에 봉도각(鳳島閣)이라는 이름의 정자를 세웠다.

왕버들이 서 있는 자리가 바로 봉도각이 있는 연못 가장자리다.

수령이 400년 정도 되는 나무이니, 1754년 조덕상이 관아 뒤뜰에 정원을 조성할 때, 왕버들은 이미 130년 이상 된 위풍당당한 모습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왕버들을 풍경의 움직일 수 없는 조건으로 놓고 누각과 연못과 정자의 위치, 방향, 모양을 결정해 정원을 만든 것으로 볼 수 있다.

왕버들 한 그루가 건축의 중심이 된 것이고, 순흥 지역 재건의 상징이 된 것이다.

순흥도호부 승격과 혁파, 재설치의 곡절을 겪었던 지금의 영주 지역은 역사적 아픔을 간직한 지역이다.

조선 초 수양대군이 폐위한 단종을 복위시키려는 이른바 ‘단종복위운동’이 이 지역을 중심으로 일어났다.

세조가 왕에 오른 지 3년째인 1457년, 순흥도호부에 유배되어있던 세종의 아들이자 세조의 친동생인 금성대군(錦城大君)과 순흥도호부사 이보흠(李甫欽)이 향민들과 함께 단종의 복위를 계획하였으나 관노의 고발로 실패했다.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금성대군, 이보흠, 단종이 모두 죽음을 맞이했다.

바로 이때 단종복위운동의 주 무대였던 순흥도호부가 혁파되고 순흥 주민들이 무차별 학살됐으며, 순흥도호부의 영역은 갈가리 찢겨 인근 영천, 봉화, 풍기에 속해지게 되었다.

순흥도호부가 다시 설치될 때까지는 무려 200년이 넘게 걸렸다. 

[사진=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사진=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왕버들이 서 있는 자리에서 연못을 돌아 순흥면사무소 쪽으로 돌아가면 커다란 느티나무 한 그루를 만나게 되는데, 왕버들과 비슷하게 수령이 400년쯤 되는 느티나무 노거수다.

왕버들처럼 이 느티나무 역시 1754년 정원을 조성할 때 중요한 고려사항이었을 것이다.

이 느티나무는 높이가 18m쯤이고 가슴높이 둘레도 6m를 넘는 큰 나무다.

줄기 안쪽이 텅 비었을 정도로 나이가 많은 나무지만, 여전히 푸른 잎을 싱그럽게 틔우는 강인한 생명력을 보여준다.

면사무소 앞 유적공원의 도호부관아 출토 석물, 석불입상, 선정비 등 역사의 흔적들을 내려다보며 서 있는 느티나무의 품새는 옛 선비의 단정한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 

느티나무 곁으로 울창하게 자란 나무들을 지나 순흥면사무소 앞으로 가면 다시 큰 느티나무 두 그루를 볼 수 있다.

느티나무 두 그루 역시 보호수로 지정된 나무다.

수령이 각각 200년, 150년쯤 되고, 높이는 두 그루 모두 14m 정도 된다.

혁파된 후 재설치된 순흥도호부의 역사를 간직한 나무이고, 순흥면사무소의 풍광을 싱그럽게 하는 나무다.

400년 된 느티나무를 비롯한 세 그루의 느티나무를 삼각형으로 연결했을 때 그 한가운데 특별하고 신비로운 소나무 한 그루가 있다.

수령이 100년쯤 된 나무이고 ‘영주 읍내리 연리지송’이라고 불린다.

연리지는 나무의 가지가 서로 만나서 하나로 합쳐지는 현상을 말하는데, 서로 다른 나무의 가지가 가까이 붙어서 자랄 때 나타나는 게 대부분이다.

그러나 영주 읍내리 연리지송은 한 그루의 나무에서 연리지가 형성됐다.

둘로 나뉜 줄기가 배배 꼬이듯 솟아오르다가 10m쯤 높이에서 아예 하나로 완전히 붙어버렸다.

연리지도 보기 드문 현상인데 이런 형태의 연리지는 더욱 드물다.

경상북도 기념물 제159호로 지정됐고, 이 지역 사람들은 두 가지의 금실이 좋다 해서 ‘금슬송(琴瑟松)’이라고도 부른다. 

읍내리 왕버들과 주변의 노거수들은 아픔의 역사를 간직한 옛 순흥도호부 관아 터에 서서, 이 지역 옛사람들의 꺾이지 않는 기상과 정신을 전해주고 있는 유서 깊은 나무들이다.

<영주 읍내리 왕버들>

·보호수 지정 번호 11-28-8-16
·보호수 지정 일자 1982. 10. 26.
·나무 종류 왕버들
·나이 400년
·나무 높이 20m
·둘레 5.8m
·소재지 영주시 순흥면 읍내리 307
·위도 36.916559, 경도 128.575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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