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만에 국민 7% 비트코인 이용..."엘살바도르서 빠르게 자리 잡아"
시위 당일 독립 200주년..."민주주의를 수호할 때가 왔다" 독재 반대 외쳐

엘살바도르 독립 200주년인 15일(현지시간) 시위대들이 거리에 나와 비트코인 법정화폐 채택 등에 반대하는 시위에 나섰다. 사진은 불에 탄 비트코인 ATM 모습. [AFP/연합뉴스]

【뉴스퀘스트=이태웅 기자】지난 7일(현지시간) 세계 최초로 비트코인을 법정화폐로 도입한 엘살바도르 정부가 또다시 대규모 반대 시위에 직면했다.

수도 산살바도르에 수천 명의 시민이 `비트코인 반대` 팻말을 들고 거리로 나왔으며, 현금을 비트코인으로 교환해주는 자동입출금기(ATM)가 불에 타는 등 반대 움직임이 거세지고 있다.

다만 이와 같은 대규모 시위가 단순히 비트코인 채택에 대한 불만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15일(현지시간) AP통신, 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이날 엘살바도르의 수도 산살바도르 등에서 수천 명의 시민이 모여 비트코인 법정화폐 채택에 항의하며 대규모 반(反)정부 시위를 벌였다.

앞서 비트코인이 법정화폐로 채택된 당일에도 많은 시민이 거리로 나와 타이어를 불태우는 등 반대 시위에 나섰는데 일주일이 지난 이날 역시 반대 시위가 벌어진 것.

블룸버그 통신은 "수천 명의 사람들이 `우리는 비트코인에 의해 사기당했다`는 신호를 보내면서 산살바도르의 중앙 광장으로 행진했다"며 "한 시위대는 지난달 설치된 비트코인 ATM의 창문을 부수고 불을 질렀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엘살바도르의 `비트코인법`이 이번 시위를 촉발한 주요 배경으로 거론된다.

실제로 AP통신 등에 따르면 일부 행진자들은 비트코인을 법정화폐로 채택한 나이브 부켈레 대통령의 결정에 항의하고자 `비트코인 반대(NO To Bitcoin)`이라고 적힌 티셔츠를 입고 거리에 나왔다.

또한 시위대 관계자들은 엘살바도르에서 비트코인을 사용하는데 필요한 전자지갑인 `치보`앱이 시스템 보수를 위해 자주 다운됐다고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치보는 엘살바도르 정부가 개발한 전자지갑으로, 신분증 번호를 입력하면 이를 이용할 수 있다.

엘살바도르 정부는 치보를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1인당 30달러(약 3만5000원) 상당의 비트코인을 지급하기로 했었는데 이러한 유인 정책 때문에 많은 사람이 몰려 사용이 중단된 것으로 보인다.

시위에 참여한 나탈리아 베요소는 AFP에 "비트코인 법을 원치 않는다"며 "이는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법"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날의 시위가 비트코인 채택에 대한 불만만으로 촉발된 것은 아니다.

유로뉴스에 따르면 엘살바도르에서 지난 일주일 동안 50만명 이상의 시민들이 치보 앱을 사용하며 가상자산 거래에 나서고 있다.

이는 전체 인구(약 650만명) 가운데 약 7.7%가 비트코인을 거래에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엘살바도르에서 비트코인이 빠르게 자리잡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유로뉴스는 평가했다.

15일(현지시간) 복면을 쓴 시위대들이 나이브 부켈레 대통령의 임기를 연장하는 법 개정과 비트코인 법정화폐 통과에 반대하는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외신들에 따르면 이날 시위대는 `독재 타도` `연임 반대` 등의 구호를 외치며, `민주주의는 팔리지 않는다(democracy is not for sale)`이라고 적힌 팻말을 들었다.

즉, 최근 권력을 강화하고 있는 부켈레 대통령의 움직임에 항의하기 위해 시민들이 거리로 나왔다는 것이다.

실제로 일부 엘살바도르 시민들은 "그가 독재자가 되고 있다"며 "이날 시위는 정부에 대한 첫 번째 대규모 항의"라고 설명했다.

2019년에 선출된 부켈레 대통령은 기존 정당에 만연한 부패를 근절하겠다는 공약으로 높은 인기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여당의 총선 압승으로 의회를 장악한 그는 지난 5월 삼권분립 원칙을 무시하고 야권 성향의 대법관을 무더기로 해고했다. 

그들이 자신의 의견에 반대한다는 이유에서다.

이어 지난주에는 엘살바도르 대법원은 헌법에 명시된 대통령 재선 금지 조항을 폐기해 부켈레 대통령이 오는 2024년 대선에 재출마할 수 있도록 발판을 마련했다.

이러한 결정이 부켈레 대통령의 독재 전조로 읽힌다는 것이 안팎의 평가다.

시위가 벌어진 이 날이 엘살바도르의 독립 200주년이라는 점에서도 이번 시위의 상징성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시위에 참여한 시드니 블랑코 전 대법원장은 AP통신에 "민주주의를 수호할 때가 왔다"면서 "이번 행진은 상징적이다"고 말했다.

에슬리 카리요 판사 또한 AFP과의 인터뷰에서 "엘살바도르가 독재로 향해 가고 있어 거리로 나왔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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