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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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퀘스트=정태성 행동경제학연구소 대표】 지난번에 이어 얘기하자면 농구를 좋아하는 우리 아들들은 몸무게가 너무 안 나가서 걱정이다.

특히, 누군가가 몸으로 힘으로 밀고 들어와서 슛을 할라치면 여지없이 골밑까지 밀리게 되어 몸무게를 늘리는 게 지상과제 중 하나이다.

반면 나는 늘어나는 몸무게 때문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아이들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공통점이 하나 있다.

몸무게가 앞의 숫자가 바뀔 때 감정의 변화가 크게 온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우리 둘째는 키가 170cm인데 몸무게가 50kg 내외이다.

48kg에서 49kg으로 갈 때 좋아했던 것보다 49kg에서 50kg을 찍었을 때 드디어 50kg이라고 너무나 좋아했었다.

한편 나는 부끄럽게도 거의 세자릿수에 달하는 몸무게를 얼마 전에 찍은 적이 있다.

그 전에 90kg 대에서는 1~2kg의 변화가 그리 크게 느껴지지 않았는데 막상 세 자리를 찍으니까 인생 다 산듯한 허탈감과 후회감이 밀물처럼 몰려왔다.

도대체 왜 그럴까?

일전에도 말했듯이 닻내림 효과의 일종이다.

닻내림 효과에 대해서는 이미 자주 설명했기 때문에 오늘은 앞자리의 변화만 자세히 설명하도록 하겠다.

사람들은 대체로 가장 앞자리, 혹은 왼쪽 자리의 숫자에 더욱 신경을 쓰게 된다.

따라서 마케팅을 할 때, 1000원이 아니라 990원에 팔게 되며 2만원이 아니라 1만9900원에 팔게 된다. 여러분들이 당장 홈쇼핑 채널만 돌려도 이런 예는 수도 없이 많다.

가격도 그렇게 책정하지만 할부도 그렇게 책정한다.

120만원짜리 상품을 홈쇼핑에서 2년 할부, 24개월로 나누어 지불하는 무이자 할부정책을 고객에게 제공한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1개월 당 내는 금액은 5만원이다.

홈쇼핑 왼쪽 하단부에 그렇게 표시할까?

그렇게 하기보다는 아마도 매월 4만9900원씩 24개월 지불하라고 표시하면서 쇼호스트 또한 매월 5만원도 안 되는 금액을 내면 된다고 매우 싼 것처럼 소개할 것이다.

이렇듯 대부분 마케팅하는 상품에는 앞자리를 내리고자 하는 노력들이 시도되고 있는데 대부분 닻내림 효과 (Anchoring)를 노리는 것이라 보면 된다.

내가 만약 다이어트 제품을 마케팅한다고 가정하고, 우리 회사의 메인 모델이 15kg을 감량했다고 하자.

그러면 같은 감량이라 하더라도 80kg에서 65kg으로 내려간 것이 79kg에서 64kg 내려 간 것보다 훨씬 더 소비자에게 효과적으로 보일 수 있어서 나는 전자의 내용으로 홍보를 할 것이다.

물론 허리사이즈 많이 줄었다는 내용을 보여 줄 때도 역시 인치보다는 cm로 표시하는 편이 훨씬 더 효과적이므로 15cm 줄었다고 하지 6인치 줄었다고는 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cm에서 제시하는 숫자가 더 크기 때문이다.

대니얼 카너먼과 아모스 트보스키가 1974년에 발표한 논문 “Judgment under Uncertainty: Heuristics and Biases”에는 닻내림 효과에 대한 다양한 사례가 나오는데, 그들은 이런 닻내림효과가 주어진 최초 숫자가 주제에 영향을 주는 것만 아니라, 연산을 할 때도 나타난다고 했다.

그들이 논문에서 제시한 사례는 두 개의 그룹으로 나누어 5초 안에 연산을 시키는 실험으로 첫 번째 그룹은 8 X 7 X 6 X 5 X 4 X 3 X 2 X 1에 대한 답을 구해야 했고, 두 번째 그룹은 1 X 2 X 3 X 4 X 5 X 6 X 7 X 8에 대한 답을 구해야 했다.

암산의 천재가 아닌 이상 위 계산을 5초 안에 끝내긴 매우 어렵다.

따라서, 사람들은 앞에 오는 몇 개의 숫자를 기준으로 답을 어림짐작하게 되는데 첫 번째 내림차순 그룹은 앞에 숫자를 기준으로 곱한 결과를 바탕으로 계산한 결과 그룹 평균 답은 2250으로 나왔다.

두 번째 오름차순 그룹 역시 앞 숫자를 기준으로 계산한 결과 그룹 평균 답은 512로 나왔다.

두 학자가 지속적으로 주장한 바와 같이 닻내림 효과는 실제 다양하게 나타났고 있음을 알 수 있으며 정답과 차이나는 오차를 보면 휴리스틱 (어림짐작)이 작용했다는 점 또한 알 수 있다.

위에서 살펴본 내용, 즉 제일 앞에 나오는 숫자에 따라 사람들의 생각에 현저한 변화가 오는 현상을 왼쪽 자릿수 효과 (또는 왼쪽 자리 효과, Left Digit Effect)라 한다.

호모 이코노미쿠스라고 한다면 1만9900원이나 2만원이나 큰 차이가 없다는 점을 인식할 수 있어야 하는데, 실제로는 둘 사이의 가격이 차이가 그 이상으로 난다고 느끼게 되는데 이러한 현상을 일컫는다.

실제 우리는 앞자리라고 부르고 있는 부분이 위치상 왼쪽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왼쪽 자릿수 효과가 공식 용어라고 생각하면 된다.

만약 우리의 모든 문화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는 문화였으면 용어는 오른쪽 자릿수 효과라고 달려졌을 것이다.

조지아대학 (University of Georgia) 심리학과 매킬로프 (James MacKillop) 교수가 2012년에 발표한 자료에서 왼쪽 자릿수 효과 (Left Digit Effect)에 대한 매우 재미있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이 연구는 우리 연구소에서 금연연구를 자주 하다보니, 검색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내용인데 후에 너무나 유명한 연구임을 알고 깜짝 놀라기도 하였다.)

연구의 주된 주제는 담배가격을 올렸을 때 어떤 효과가 나타났는지에 관한 것이었다.

결론은 조지아 주에서 담배 한 팩당 1달러 가격인상을 하게 되면 세수는 197% 증가하여 연간 6억달러의 세수가 발생하게 되고 건강관리비용과 생산성 손실을 줄이게 되어 9억 7600만 달러를 절약할 수 있게 된다. 이에 따라 총 13억 7000만 달러 가량의 순 효과를 가져오게 된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이 연구의 또 하나의 주제는 바로 왼쪽 자릿수 효과에 관한 것이었다.

담배가격을 인상할 때, 왼쪽 자릿수가 변화하게 되면 실제로 흡연자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에 관하여 연구하였으며 그 결과, 가격을 5.80달러에서 6.00달러로 인상하였을 때가 5.60달러에서 5.80달러로 인상하였을 때 보다 담배소비 감소효과가 4배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둘 다 가격을 20센트 인상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앞자리가 5에서 6으로 바뀜에 따라 흡연자가 느끼는 가격 변동 폭은 훨씬 더 크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사족이지만 우리나라에서도 담뱃값 인상으로 한창 설왕설래할 때 가격인상으로 인한 경제적 효과를 논하면서도 '매킬로프 교수와 같은 실험을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정태성 행동경제학연구소 대표
정태성 행동경제학연구소 대표

※ 필자소개 : 정태성 한국행동경제연구소 대표

2000년대 초반부터 기업의 전략, 마케팅과 스포츠 마케팅, 공공부문의 정책입안 등 다양한 컨설팅 업무를 진행해 왔다.

하지만 컨설팅 결과가 인간의 심리나 행동을 잘 반영하지 못할 수 있다는 고민을 하던 중, 행동경제학자인 서울대 최승주교수와 빅데이터분석 권위자인 한양대 강형구 교수와 의기투합하여 한국행동경제학연구소를 설립하였다.

이후 정부와 기업 대상 행동경제학 컨설팅을 진행하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강연 및 행동경제학 관련 칼럼과 영상을 통해 행동경제학을 보다 알기 쉽게 전파하는 데 매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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