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루스토리]

김형준 본지 편집위원
 
우리나라의 재벌 총수, 대기업 간부들이 국제 조세회피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해 자금을 외국으로 빼돌렸다는 사실이 하나씩 들통나면서 국민에게 적잖은 충격을 주고 있다. 인터넷 독립언론 뉴스타파에 따르면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와 쿡 아일랜드 등 조세회피처에 페이퍼 컴퍼니 설립을 대행해 주는 ‘포트컬리스 트러스트 넷(PTN)’과  ‘커먼웰스 트러스트(CTL)’의 내부 자료에 담긴 13만여 명의 고객 명단과 12만 2천여 개의 페이퍼 컴퍼니에 대한 정보를 분석한 결과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한 한국인들은 모두 245명이라고 한다. 뉴스타파는 이들 가운데 일부를 1차(20일), 2차(27일) 3차(30일)로 나눠 공개했는데, 그 면면을 보면 전 경제인 총연합회 회장과 그 부인, 재벌 계열사 사장, 재벌 부회장, 대기업 임원, 유명 연예인 등 이른바 사회지도층 인사였다.

삼척동자도 알다시피 조세회피처에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하는 이유는 불법 자금을 은닉하거나 조세를 회피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들의 자금 빼돌리기는 법적, 도덕적인 비난을 피하기가 어렵다. 더욱이 이들이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하고 자금을 빼돌린 시기는 주로 금융위기 직후였다. 금융위기로 온 국민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국가가 외화를 가장 필요로 할 때, 이들은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외화를 외국으로 빼돌려서 숨기거나 그 돈으로 부동산을 사들였다. 그런 점에서 이들의 외화 빼돌리기는 국민을 배반하는 행위임이 분명하다. 사회지도층이 헌법에 규정된 국민 4대 의무 가운데 하나인 납세의무마저 회피한 것이다. 뉴스타파의 보도 내용은 향후 한국 사회에 커다란 파장을 불러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자금을 빼돌린 당사자들에 대한 국민의 비난은 높아갈 것이다. 국세청은 대규모 세무조사를 벌여 해외로 빼돌린 돈은 국고로 환수하고 검찰은 이들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진행해야 한다. 국회 차원에서도 자금 빼돌리기를 방지하기 위한 대책들 또한 논의되어야 한다.

조세회피처 보도 내용과 그 파장에 못지않게 우리가 주목해야 할 대목은 그 보도의 주체가 연합뉴스도, 조중동도, 공중파 방송도 아닌 소규모 독립 언론 단체라는 점이다. 처음 자료를 손에 넣은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는 ‘조세회피처 프로젝트’의 파트너로 다른 기성언론이 아닌 아주 작은 매체인 ‘뉴스타파’를 선정했다. ICIJ는 그 이유에 대해 “뉴스타파를 제작하는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가 영리를 추구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장기간 탐사보도에 전념할 수 있는 언론이기 때문에 한국의 취재 파트너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물론 우리나라의 대형 언론사들도 관련 자료를 구하기 위해 ICIJ와 접촉했지만 거절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인터넷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수많은 독립 언론들이 있다. 트루스토리도 마찬가지다. 이들 매체들은 대기업 광고 유혹에 시달리지 않으면서 주류 언론들이 외면하는 내용들을 보도해 국민의 ‘또다른’ 알권리를 충족시켜주고 있다. 그러나 이런 매체들은 ‘신생지’라는 이유로, ‘규모가 작다는 이유로’ ‘역사가 짧다는 이유로’ 네이버와 다음 등 포털 사이트에서 받아주지 않는다. 더 많은 독자들이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차단시켜 버리는 것이다. ‘알아서 생존하라’는 약육강식의 원리를 적용하는 셈이다. 매일같이 주요 포털 상단 하단 검색어를 위주로 인터넷 가십 기사를 쓰는 매체들은 대형 매체라는 이유로 받아주지만, 영세한 언론들은 포털로부터도 버림을 받고 있다.

알려진 바와 같이 한겨레와 경향 등을 제외하곤, 우리나라의 주류 언론은 보수 쪽으로 크게 기울어 있다. 그러다 보니 보도의 내용도 지나치게 보수적이다. 또한 주류 언론들은 광고주의 입김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위치에 있다. 이 때뭉네 주류 언론들은 자본 편향적인 보도를 할 수밖에 없는 구조 속에 놓여 있다. 이 때문에 왜곡된 언론 현실이 우리 사회의 큰 모순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대안 언론이 생겨나서 안정적으로 활동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나라 대안 언론의 현실은 매우 열악하다. 대안 언론 활동가들은 최소한의 생계수단을 확보하는 데조차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트루스토리도 마찬가지다. 소속된 기자들의 월급을 주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래서 글을 마음껏 쓸 수 있는 구조도 아니다. 당장 생계부터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투잡 쓰리잡을 뛸 수밖에 없다. 소속 기자들이 좀 더 안정적으로 취재활동에 집중하기 위해선 기업 광고주를 확보해야 하지만 그렇게 되면 광고주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서 독립 언론 본연의 가치를 지키기가 힘들게 된다. 결국 독립 언론이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정부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 대안 언론이 민주주의 가치를 지키는 데서나 언론의 다양성을 확보해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킨다는 데에서 충분한 존립 가치가 인정된다면 정부 지원은 당연하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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