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근의 科技누설(35)
【뉴스퀘스트=김형근 과학전문 기자】 무려 2500년 이상 거슬러 올라가야 만날 수 있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피타고라스와 현재 아주 팔팔한 세계 최고의 테니스 플레이어 노박 조코비치를 비교하는 것은 무리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간의 원초적 본능인 사랑하고 미워하는 애증(愛憎)을 비교해본다면 시간의 차이란 별 의미가 없어 보인다. 현대인이라는 것은 새로운 문명이라는 옷을 걸쳤을 뿐 피타고라스의 시대와 하등 다를 바가 없다.
최근 세르비아 출신의 조코비치가 코로나19 백신 접종 거부로 대회 참가 자격을 잃어 팬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하면서 이 유명 선수의 백신 거부 이유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는 영국 BBC와의 인터뷰에서 “만약 대회에 참여할 수 있는 대안이 예방접종이라면 기꺼이 그랜드슬램 토너먼트를 포기할 용의가 있다”고 강력한 의사를 표시했다.
“접종보다 차라리 그랜드 슬램을 포기하겠다”
그리고 “백신 반대에 대해서는 완전히 반대한다. 그러나 나는 내 몸에 들어오는 것에 대해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항상 소중히 생각해 왔기 때문에 예방접종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대답하면서 “예방접종은 나의 레거시(legacy)에 치명적인 데미지를 입힐 수 있다는 다소 알쏭달쏭한 모호한 답변을 내놨다.
동양에서는 종교와 철학을 하나로 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서양은 그렇지 않다. 유럽을 중심으로 한 서양에서는 언제나 철학과 종교 사이에 엄격한 구분이 있었다.
그러나 동양사상이 중심인 인도와 중국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예를 들어 우리는 종교적인 냄새가 물씬 풍기는 불교철학, 힌두철학 그리고 유교에 대해서는 유교철학이라는 말을 쓰는 데 전혀 어색한 느낌이 없다.
그러나 기독교의 경우, 기독교 철학이라는 말이 그렇게 보편화된 것은 아니다. 로마제국이 동서로 분열된 395년부터 동로마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이 오스만터키에게 함락된 1천 년 동안 중세시대에 나타난 교부철학이나 스콜라철학이 기독교 철학으로 대변되고 있지만 보편적인 철학과는 조금 다른 체계를 가지고 있다.
오히려 원래 철학은 한편으로는 종교에 대한 반동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신화와 마법에 대한 반동으로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서양에서 철학은 이성을 통한 사유의 결과로, 미신이나 신앙 또는 어떤 종류의 신적인 개입과는 별개로 취급됐다. 동양에서는 철학과 종교 간에 현저한 구분이 없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그들 사이에 갈등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동양에서는 철학 자체가 종교인 셈이었다. 그래서 어떤 종교 학자들은 유교를 종교로 보지 않고 단순히 현명한 사람의 가르침 또는 예절이나 규범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 면이라면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역사상 최초의 철학자로 불리는 탈레스는 우주의 본질을 신이 아니라 물리적 개념으로 설명한 최초의 인물이었다. 물이 우주 전체를 생성한 근본물질이라고 주장했다.
탈레스를 비롯해 그리스 철학자들 대부분이 자연현상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탐구를 통한 접근 방식을 택했고 신화와 마법에 의존하는 대신 과학적 관찰과 추론을 중요시했다.
종교와 철학을 접목시킨 유일한 철학자가 혐오한 콩
그러나 예외가 있다. 피타고라스다. 그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 가운데 유일하게 종교와 철학을 접목한 인물이다.
철저한 채식주의자였던 피타고라스는 이상하게도 콩을 혐오했다. “콩을 먹지 말라. 만지지 말라. 콩밭을 지나지도 말라” 철학자 피타고라스가 세운 종교단체의 계명 1호가 바로 콩에 대한 계율이다.
채식을 고집하는 사람들에게 육류에서 취할 수 있는 단백질을 보충할 수 있는 식물은 콩이다. 그러나 피타고라스는 콩 섭취를 반대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접하는 콩(대두, soybean)의 원산지에 대해서는 다소 논란이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자들은 동북아 지역, 다시 말해서 지금의 만주라는 데 의견을 같이 한다. 따라서 이곳에 도읍을 정하고 대륙을 누볐던 고구려가 콩의 원산지라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그러나 피타고라스 시대에 콩은 대두가 아니라 파바 빈(Fava Bean)이었다. 열매가 작두 같이 생겨서 우리나라에서는 작두 콩 또는 잠두 콩이라고 부른다. 외국에서는 파바빈 (Faba bean), 브로드빈(Broad bean), 또는 볼슨빈(Borse bean)이라고도 한다.
그러면 피타고라스는 왜 콩을 먹지 말라고 했을까? 피타고라스가 왜 콩을 싫어했는지에 대해서 정확하게 밝혀진 것이 없다. 그러나 유추해석은 가능하다.
첫 번째 설(說)이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른다. 그러나 불교의 전생(前生)과 윤회(輪廻)를 믿었던 피타고라스는 콩과 인간이 같은 성분으로 이뤄진다고 믿었다. 바로 콩이 갖고 있는 단백질이다. 따라서 그는 콩을 먹는 것은 인육(人肉)을 먹거나 동물을 먹는 것으로 생각했다.
이 설을 뒷받침하는 유명한 학자가 있다. 영국의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버트란트 러셀이다. “그에게 콩을 먹는다는 것은 극악무도한 행위였다. 아마 이러한 판단은 육류에서만 섭취할 수 있는 단백질이 콩에도 있다는 생각에서 출발한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 설이다. 감수성이 강하고 예민했던 피타고라스는 콩에 대한 알레르기가 있었다. 그는 얼마나 알레르기 반응이 심했던지 “콩밭을 지나 가느니 적에게 포로가 돼 죽임을 당하는 것이 차라리 낫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콩 알레르기가 너무 심했던 그는 늘 얼굴과 몸에 수많은 반 점이 있었으며 밖을 나갈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또 다른 주장이 있다. 성적 순결을 고집한 피타고라스에게 콩 파바 빈은 여자의 성기와 비슷했기 때문에 멀리했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그는 제자들에게 이러한 콩을 먹지도 말고, 건드리지도 말라고 경고한 것이다.
강한 설득력을 가진, 과학적 근거가 있는 주장도 있다. 콩이 복부팽만감((flatulence)을 불러 일으킨다는 것이다. 위장에 가스가 차고 배가 불러오면 아름다운 정신과 영혼을 계속 유지할 수 없다고 생각한 피타고라스는 콩을 먹는 것을 반대했다.
콩과 백신 사이에 공통점이 있다. 모두 단백질이라는 점이다. 단백질은 유기화합물로 생명의 원천이다. 또 단백질에서 생명체 만들어졌다 주장이 많다. 또 어떤 학자들 사이에서는 단백질을 생명체로 보는 견해도 많다.
백신 거부운동에는 이런 배경이 자리하고 있다. 백신을 맞는다는 것은 외부의 생명체가 자신의 몸으로 들어온다는 것이다. 그래서 영혼을 망가뜨린다는 것이다.
특히 미국 사회에서 이것이 종교적인 신화와 연결돼 백신 거부 운동이 가장 강하게 나타난다. 아마 최고의 테니스 플레이어 조코비치의 신념 속에도 이런 믿음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스포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페어 플레이’다. 그러나 플레이만 ‘페어’한 것이 아니라 선수 자체도 ‘페어’해야 한다.
종교적인 신념이 무엇이든 간에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인한 세계적인 환란의 시기에 자기만의 틀에만 빠져 백신을 거부하는 이기적인 행동은 결코 ‘페어’하다고 할 수 없다.
실력은 최고 수준일지 모르지만 조코비치는 결코 모범적인 선수는 아니다. 그의 행동은 결코 ‘페어’하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