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퀘스트=허태임(국립백두대간수목원 연구원)】 묻혀 있던 모차르트의 미발표곡이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손끝에서 처음으로 공개되었다.지난 1월 27일 모차르트의 생일을 기념하여 그의 고향에 있는 모차르테움(잘츠부르크 모차르트 연구기관)에서 일어난 일이다.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는 내게는 더없이 반가운 소식이었다.모차르트는 35년의 짧은 생애를 사는 동안 여행을 하면서 유럽 곳곳에 600여 곡 이상의 많은 작품을 남겼다.그중 생전에 발표되어 정확하게 기록된 작품은 아주 일부분이다.그가 세상을 떠난 후 여행지에 흩어져 있던 그의 악보를 찾아서 모으고 연대순으로 정리한 인물은 음악연구가 쾨헬(Ludwig von Kochel, 1800-1871)이다.그래서 모차르트의 작품번호 앞에는 반드시 쾨헬번호(K 또는 KV)라는 것이 붙는다.19세기가 시작되던 해에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나 70여 년을 살다간 쾨헬은 젊은 시절에는 자연 탐사에 몰두했던 식물학자이자 광물학자였다.탐사에서 거둔 자신의 채집품에 정확
【뉴스퀘스트=허태임(국립백두대간수목원 연구원)】 영화 의 해외 반응이 심상치 않다.미국영화연구소(AFI)가 선정한 10대 영화에 이미 이름을 올렸고 올해 오스카 작품상 수상이 거론되고 있다는 외신 보도도 눈에 띈다.미국으로 이주한 한인 가정의 굴곡진 삶을 다룬 이 영화는 감독 정이삭의 자전적 이야기다.감독은 말했다. 미나리의 질긴 생명력과 적응력이 낯선 타국에서 희망을 더듬던 자신의 가족과 닮았다고.심은 지 1년이 지나야 잘 자라는 미나리처럼 닥친 역경 속에서도 내 자식을 지켜 다음 세대의 안녕을 희망으로 삼는다는 영화의 원천을 감독은 식물 미나리에서 길어 올렸다.미나리, 하면 돌아가신 할머니가 생각난다.어릴 적에 나는 그이가 마당에 가꾼 화초류, 산과 들에서 모아온 산채, 수확한 농작물에서 식물의 생김새와 쓰임과 이름을 익혔다.나에게 식물의 면면을 처음 알려준 선생님이 우리 할머니다.미나리를 심어 기르는 장소를 가리켜 할머니는 미나리꽝이라고 불렀다.‘꽝’이란 땅이 걸고 물
【뉴스퀘스트=허태임(국립백두대간수목원 연구원)】 식물은 혹독한 겨울을 나기 위해 만반의 채비를 한다.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물과 햇볕을 어떻게 확보할지 궁리하고 봄이 올 때까지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계산한다.모든 잎을 떨어뜨리고 마치 생존을 멈춘 것처럼 보이지만 식물은 겨울에도 바쁘다.산솜방망이는 이른 봄에 틔울 새싹을 보호하기 위해 털을 잔뜩 뒤집어쓰고 겨울을 난다.솜털 차림은 추위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한 전략이다.이 작은 솜털은 눈에서 얻은 수분을 한 올 한 올 저장하는 기능도 마다하지 않는다.그렇게 봄에 틔울 새싹을 염두에 두면서 자신을 지키는 것이다.산솜방망이는 백두산을 비롯하여 몽골과 러시아의 추운 고산지대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적응한 식물이다.수목원에서 북방계식물을 보전하기 위해 만들어진 실험정원에는 요즘 산솜방망이가 별처럼 땅에 박혀 있다. 우리나라의 노지에서 겨울을 나는 식물은 대부분 뿌리에 에너지를 비축하느라 잎도 줄기도 다 시드는 편이다.이 계절에 돋보이는
【뉴스퀘스트=허태임(국립백두대간수목원 연구원)】 저는 강원도 강릉과 정선에 걸쳐 있는 해발 1055미터의 석병산입니다.백두대간의 높고 수려한 산들 사이에서 저는 비교적 작은 산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국내에서 희귀한 카르스트 지형을 품고 있습니다.남한의 몇 안 되는 산악 카르스트 지형을 대표하여 저는 백두대간에서 숲의 권리를 지키는 활동을 하고 있지요.카르스트는 동유럽 슬로베니아의 크라스(Kras) 지방을 말하는 독일식 발음입니다.그 동네에는 중생대부터 켜켜이 쌓인 석회암이 만들어 낸 특이한 지형이 많습니다.덕분에 카르스트는 석회암으로 형성된 진귀한 지형을 나타내는 고유명사가 되었지요.남한에서는 저 석병산과 제 바로 옆의 이웃 자병산을 비롯하여 삼척, 영월, 평창, 단양, 제천, 문경 등에 카르스트 지형이 드물게 분포합니다.카르스트 지형 주변에 어김없이 시멘트 공장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제 몸을 허물어 깎아내 시멘트를 만드는 것이지요.그 역사는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일본인에
【뉴스퀘스트=허태임(국립백두대간수목원 연구원)】 초등학교 4학년 때였던가.수업 준비물이 ‘솔이끼’와 ‘우산이끼’였던 적이 있다. 당시 내가 자란 시골 마을에는 여느 집 없이 마당에서 쉽게 그 이끼들을 구할 수 있었다.친구들과 나는 집에서 가져온 이끼를 돋보기로 관찰하고 하얀 종이 위에 색연필로 그려보았다.두 이끼의 닮은 점과 다른 점을 적어보는 일도 빠뜨리지 않았다. 누구도 관심 두지 않던 마당 구석의 그늘진 자리에 소복하게 자라던 이끼가 특별한 존재가 되어 내게 다가온 날이었다.그 준비물을 집에서 구할 수 있었다는 게 참으로 새삼스럽다.초등학교 교사인 언니에게 물으니 요즘에는 동영상 자료를 활용하거나 과학 교육 재료를 판매하는 업체에서 이끼를 구할 수 있다고 한다.식물을 공부하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이끼와도 가까워졌다. 지구상의 식물은 크게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꽃식물(종자식물)과 그렇지 않은 민꽃식물(무종자식물)로 나뉜다.전자에 해당하는 것이 흔히 우리가 초본과 목본으로 구분하여
【뉴스퀘스트=허태임(국립백두대간수목원 연구원)】 ‘베트남 엄마’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박후기 시인의 시 「가족도감 1」은 고향을 두고 온 모든 생물이 마주한 타향살이의 먹먹함을 대변한다.수업시간에 귀화식물을 자세히 알려주고 싶을 때 나는 이 시를 읽어주곤 한다.엄마는 귀화식물,주로 시골에 사는 여러해살이풀이다 원산지는 베트남,겁이 많고 키가 작다 한국 전역의산과 들에 피어나지만엄마는 한국말이 서투르다 꽃말은 안녕하세요,몸은 질기고 열매는 검붉다 가슴속 씨방에는원산지에서 따라온그리움이 멍울처럼뭉쳐 있다식물을 분류할 때 그 종의 출생지를 따져서 우리 땅에서 나고 자란 ‘자생식물’과 다른 나라에서 들어온 ‘외래식물’ 또는 ‘귀화식물’로 구분한다.학자에 따라서는 도입 시기와 방법에 따라 외래식물(귀화식물)을 조금 더 자세히 구분하기도 하지만 여기서는 통칭해서 귀화식물이라 칭한다.불교와 함께 들어온 것으로 추정하는 은행나무, 『향약구급방(1236년)』에 기록된 것으로 보아 그 이전에 들어온
【뉴스퀘스트=허태임(국립백두대간수목원 연구원)】 나는 애써 정원을 가꾸지 않는다.내게 마당은 그곳에 잠입하여 스스로 자라는 식물을 관찰하는 공간일 뿐이다. 나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그 친구들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왜 찾아왔는지를 곰곰 생각하면서 말이다.원예학을 전공한 후배 J는 나와 달리 마당과 정원을 살뜰히 가꾼다. 그에게 마당은 다양한 재배식물을 기르는 실험실이다.아끼는 구근(球根)이라며 후배는 지난봄에 내 마당에 ‘글로리오사’라는 식물의 뿌리를 잔뜩 심어두고 갔다.글로리오사는 백합과와 유사한 콜키쿰과에 속하는 글로리오사속 원예재배식물을 통칭해서 부르는 이름이다.이들을 과거에는 백합과로 구분하였으나 최근 식물 DNA 해독법은 콜키쿰과로 구분한다. 글로리오사라는 이름은 두 단어로 이루어진 학명의 첫 번째 단어를 딴 것이다. '우리 인간을 말하는 학명은 호모사피엔스(Homo sapiens)이다. 그중 첫 번째 단어 ‘Homo’는 유인원류를 통칭하는 명사다.이 호모 가운데 다른 종
【뉴스퀘스트=허태임(국립백두대간수목원 연구원)】 흔히들 가을을 들국화의 계절이라고 한다.하지만 우리나라 산천에 들국화라는 이름을 가진 꽃은 없다.감국, 산국, 구절초, 쑥부쟁이는 있지만 들국화라는 이름을 가진 식물은 지구상에 없다. 왕대, 솜대, 이대는 있지만 대나무라는 이름을 가진 나무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갈참나무, 졸참나무, 떡갈나무는 오늘도 열심히 도토리를 만들고 있지만 참나무라는 이름을 가진 나무는 역시 없다.2017년 초에 경북 봉화군 서벽리에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이 들어서며 나도 그때부터 봉화군민으로 살고 있다.북쪽에서 내려온 백두대간의 주 능선이 구룡산을 기점으로 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소백산으로 이어지는 길목이 바로 서벽이다.시골의 작은 마을에 창이 많고 마당이 넓은 집을 얻어 셋방을 산다. 덕분에 창밖으로 보이는 백두대간 마루금 풍경을 집에 앉아서 감상하는 호사를 누린다.내가 애써 가꾸지 않아도 요즘엔 ‘들국화 무리’가 내 마당을 찾아와서 가을을 실감케 해준다. 노란
【뉴스퀘스트=허태임(국립백두대간수목원 연구원)】 식물과 관련된 강연을 하게 되면 수강생들로부터 주로 받는 질문 가운데 하나가 ‘식물학자는 어떤 식물을 가장 좋아하냐’는 거다.예쁘고 귀한 식물들이 여럿 떠오르지만 그들 모두를 뒤로한 채 나의 답변은 언제나‘팽나무’다.내가 자란 시골 마을 어귀에는 팽나무 고목 한 그루가 마을을 지키고 있었다.그 큰 나무가 유년의 내게는 마치 『어린왕자』에 등장하는 바오밥나무 같았다. 또래가 귀했던 작은 마을에서 그는 내 유일한 친구였다.그의 덩치가 몇 아름이나 되는지 두 팔을 벌려 한참을 재보거나, 꾸덕꾸덕 떨어진 고목의 나무껍질로 탑을 쌓기도 하고, 제법 달콤한 열매를 따 먹어도 보고, 자잘한 씨앗을 하나둘 헤아리다 보면 금세 저녁이 찾아왔다.기쁜 마음을 나누는 것도 속상한 마음을 달래는 것도 팽나무 앞에서였다.내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주던 팽나무가 누구보다 좋았고 팽나무 곁에서 나는 못 할 말이 없었다. 친구였던 팽나무가 조금 무서워지는 날도 있었다.
뉴스퀘스트에서는 국립백두대간수목원 허태임 연구원이 백두대간의 식물을 찾아 일하고 살며 꿈꾸는 이야기를 연재한다. 이 연재는 우리 땅의 풀과 나무의 푸르른 이야기, 풀의 기록(草錄)이고 나무의 기록(木錄)이다. 독자 여러분의 응원을 기대한다. /편집자주 【뉴스퀘스트=허태임(국립백두대간수목원 연구원)】 화사하게 핀 진달래 앞에 머물렀던 봄의 기억이 생생한데 벌써 가을이다.가을이 오면 진달래는 미련 없이 초록 잎을 다 떨어뜨리고 겨울을 날 채비를 야무지게 한다. 이 무렵 깊은 숲에서 나의 눈에 단연 돋보이는 나무는 꼬리진달래다.꼬리진달래는 겨울이 다가오는 게 두렵지도 않은 지 가을 숲속에서도 푸른 잎을 싱싱하게 달고 있는 상록수다. 꼬리진달래는 정선과 영월, 단양과 제천, 봉화와 울진 등의 석회암 지대에서 자라는 늘푸른 키작은나무이다.진달래와 같은 혈통의 진달래속(Rhododendron) 식물이지만 진달래와 달리 상록수이고 한여름에 하얀색 작은 꽃이 촘촘히 모여 피어 전체적으로 꼬리 모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