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극동의 예루살렘’으로 불리며 기독교 번성

알렉산드르 마체고라 북한 주재 러시아 대사가 지난 8월 평양 낙랑구역의 러시아정교회 정백사원을 방문해 북측 관계자와 만나는 모습. [사진=주북 러시아 대사관 페이스북]

【뉴스퀘스트=이영종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북한연구센터장 】 “코로나 사태 이후 북한 지역의 성경책 밀반입이 늘고 있다.”

지난 9월 말 대북매체인 미 자유아시아방송(RFA)의 보도는 눈길을 끌었다. 기독교 선교단체인 한국순교자의소리(Voice of the Martyrs Korea) 대표인 에릭 폴리(Eric Foley)의 말을 인용한 기사는 “코로나 이후 북한 내 성경의 수요가 매년 2배씩 증가하고 있다”고 전했다.

폴리 대표는 “코로나로 이동이 제한돼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 북한 주민들이 매일 중·단파 라디오에서 방송하는 기독교 선교 방송을 접할 기회가 많아졌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북한 체제의 현실에 비춰볼 때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이야기다. 종교를 철저히 탄압하고 특히 기독교의 경우 서방 제국주의의 앞잡이 역할을 한다면서 극도의 거부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온 게 북한 당국이다.

중국 등지의 탈북민이 강제 북송됐을 경우에도 선교사를 만났거나 성경책을 접한 적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 단순 탈북에 비해 가혹한 처벌을 받게 된다는 게 대북 선교 관계자들의 귀띔이다.

그런데 성경책 반입에 선교방송 청취라니... 결론부터 말하면 북한에도 기독교 신도가 있고 가정교회 형태의 비밀예배가 이뤄진다. 필자가 최근 만난 한 30대 여성 탈북민은 실제 북한에 기독교 지하교회가 있고 어렵게나마 예배가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나무를 깎아 만든 십자가에 필사성경 등으로 임하지만 목숨을 건 상황에서 이뤄지는 예배인 만큼 신앙심은 더없이 독실하다는 것이다.

이 탈북민은 북한 내 지하교회가 가능한 이유를 북한 정권 수립 이전 평양이 한반도 기독교 신앙의 중심지 역할을 했던 점을 꼽았다. ‘극동의 예루살렘’으로 불렸을 정도란 얘기다. 의사였던 자신의 부친도 할아버지 때부터 내려온 기독교 신앙에 바탕해 김일성 집권 초기부터 가정예배 형태로 신앙생활을 이어왔다는 것이다.

북한 당국의 단속이나 예배에 참여했던 사람의 고발로 큰 화를 당한 경우도 있지만, 부친의 경우 가족과 가까운 친지 중심의 철저한 관리로 독재정권 하에서 신앙생활을 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북한도 형식적으로는 종교의 자유를 내세운다. 1972년 개정 헌법은 ‘신앙의 자유’를 명시하고 있다. 또 평양에는 칠골교회와 장충성당을 비롯한 종교시설도 있고, 방북인사들에게 신도들이 예배를 보는 장면이 공개되기도 했다.

이런저런 종교 인사들이 나서 한국의 종교단체들과 교류나 공동행사를 벌여왔다. 홍수나 기근사태가 생겼을 때 인도적 차원의 대북지원 물품을 받아들이는 통로 역할을 했다.

하지만 종교문제와 관련한 북한의 인식이나 대처는 이중적이다. 헌법에서 여느 자유국가와 마찬가지로 종교의 자유를 허용하는 듯 밝히고 있지만 함정이 있다. “공민은 신앙의 자유와 반종교선전의 자유를 가진다”고 강조한 대목이 바로 그것이다. 종교의 자유를 언급하면서도 뒤로는 종교 활동을 억압하고 법률적 제재의 근거로 삼을 수 있는 ‘반종교 선전의 자유’에 힘을 싣는 것이다.

92년 개정된 헌법에서도 “공민은 신앙의 자유를 가진다. 이 권리는 종교건물을 짓거나 종교의식 같은 것을 허용하는 것으로 보장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누구든지 종교를 이용해 외세를 끌어들이거나 국가사회질서를 해치는데 이용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종교관련 움직임을 체제전복이나 사회 안녕을 해치는 행위 간주해 중범죄로 처벌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고 여기에 집중하고 있다.

이영종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북한연구센터장

국제사회가 북한의 종교 탄압에 대해 우려를 보내고, 미 국무부가 2001년 이후 매년 '국제종교자유 보고서(International Religious Freedom Report)'를 통해 북한을 종교자유 특별우려국으로 지정해 온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최근들어 북한 지역에 성경책 반입이 늘고 있다고 하지만 당국의 단속은 느슨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한다. 과거엔 불시에 가택수색을 하거나 수상한 모임 조짐이 있으면 들이닥치곤 했는데 코로나 이후 공안당국도 몸을 사리고 있다는 것이다.

또 블라디보스토크 등지에서 일하던 북한 근로자가 코로나로 인해 귀환하지 못하고 장기 체류하는 경우가 늘면서 기독교에 접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선교 단체들은 이들이 북한에 돌아간 뒤 복음을 전하는 불쏘시개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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