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인류 역사상 최고의 교역료를 찾다

 
[트루스토리] 필자는 이번 여행 목적지를 ‘차마고도(茶馬古道)’란 지명만 보고 결정했다. 유네스코 세계자연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차마고도’는 2006년 4월부터 2007년 8월까지 KBS에서 전 구간을 3개의 촬영팀이 동시에 HD영상으로 촬영에 성공했다.

그들의 마방과 소금밭 여인, 카라반과 오체투지 순례자들의 이야기를 방영해 이미 널리 알려진 곳이다. 당시 나는 방송을 손꼽아 기다리며 시청했던 감동이 남아 있어 길을 나서게 되었다.

중국은 지구상에서 세 번째로 큰 나라이다. 큰 대륙이 ‘하나의 중국’이란 표어답게 북경 표준시를 사용하고 있다. 중국 표준시로 오전 8시 비행기에 탑승해 상해 푸동 공항에 도착, 다시 운남성 성도인 곤명(昆明)으로 향했다.

일정 첫 날 곤명에서 나평을 향해 버스에 올랐다. 곳곳에 유채밭이 보인다. 오전 10시경 출발해 3시쯤 나평의 ‘십만대산’에 발이 닿았으니 어느 정도 오지인지 짐작할 만 하다. 눈 앞이 온통 유채꽃이다. 나평의 유채밭은 9억평, 산지에 흩어져있는 유채밭까지 합하면 13억9000평(서울의 6배)로 유채꽃의 바다라고 할 정도이다.

다음날 나평 유채밭의 대표격인 ‘진지평’의 ‘금계봉’으로 향했다. 온 세상이 노랗다. 유채밭 사이사이 섬처럼 떠 있는 작은 언덕들은 푸른색으로 더욱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다. 유채밭을 뒤로 하고 ‘구룡폭포’로 향했다. 구룡폭포군에서 제일 높은 구룡 제일폭, 일명 신용폭(新龍瀑)이다.

오후 8시경 여강(麗江=리강)으로 가기 위해 곤명 역으로 향했다. 밤 10시에 출발한 기차는 다음 날 오전 8시40분에 리장 역에 닿았다. 리장 역에서 ‘빵차(6~7인용 작은 봉고차)’를 타고 리장 고성으로 향했다.

첩첩산중에 있는 리장은 아름다운 고성과 세계적인 트레킹코스 후타오샤, 티벳지방의 입구인 뽕티엔 등을 접하고 있어 중국 여행의 백미라 할 수 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오지마을이었는데 1996년 운남을 강타한 대지진으로 이 일대가 거의 다 파괴됐다.

그간 진흙 속 진주와 같던 리장은 참사로 인해 알려졌고, 마을 복구과정에서 정부가 전통적인 모습을 갖춘 한옥들만 고성에 남기고 전통적인 외관에 위배되는 건물들은 철거 혹은 외각으로 옮겨다. 정부의 노력으로 유네스코는 리장 고성과 나시족의 동파문자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고 이후 중국 남서부에서 가장 인기있는 여행지가 되었다.

리상 고성은 사방가를 중심으로 좁은 골목이 뻗어 있으며 바닥은 붉은색의 오화석(五花石)으로 비가 와도 물이 고이지 않고 개인 날도 먼지가 없다. 건물은 기와지붕의 목조건물로 ‘ㄷ’자 모양의 독특한 전통적인 나시족의 가옥구조이다. 골목을 다니다 보면 심상치 않게 벽이나 상점 간판 명에 나시족의 동파 문자를 보게 되는데 이는 살아있는 세계 제일의 상형문자라고 한다.

고성의 상점을 구경하 다니다보니 골목골목이 미로같다. 여기가 어딘가 할 즈음 골목어귀에 안내판이 나무에 새겨져 있다. 고성의 아름다운 전망을 보기 위해 사자산 정상의 목조건물인 만고루(萬古僂)로 향했다.

리상 고성에서 나와 빵차로 수허 고성으로 이동했다. 해발 2000여미터 고지대에 위치한 수허는 리장과 더불어 1997년에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수허 고성은 여행 상품화돼 대형 쇼핑가로 변한 리장에 비해 옛스러운 모습을 많이 간직하고 있는데 왁자지껄한 리장 고성과는 달리 수하 고성은 맑고 조용하다.

다음날 아침 차마고도의 세계 3대 트레킹코스인 호도협으로 출발했다. 중국의 차와 티벳의 말을 교역하던 것에서 시작된 해발고도 4000m 이상 ‘차마고도(茶馬古道)’는 0200여년 앞선 중국 운남, 사천에서 티벳을 거쳐 인도에 이르는 5000km에 이르는 인류 역사상 최고(最古)의 교역료이다. 수백수천 미터 깎아지른 협곡에 ‘Z’자로 난 길은 겨우 말 한 마리가 지나갈 정도로 좁은 길로 조로서도(鳥路鼠道)로 불리운다.

차마고도는 마방들이라 부르는 상인들이 말과 야크에 물품을 싣고 고도 4000m가 넘는 산길을 오갔다. 이들은 차와 말 외 생존 필수식품인 소금과 곡식 등을 공급하고 양측의 문화까지 전파하면서 시시각각 변하는 고산지대의 기후를 이기며 대협곡과 초원을 지났다. 그 행렬은 장관이지만 살아남기 위한 생존의 방식이었을 터다. 차마고도는 교역의 길이기도 하지만 순례의 길이기도 하다. 순례자들은 티벳 라싸에 있는 ‘조캉사원’에 모셔져 있는 불상을 만나기 위해 오체투지로 먼 순례를 떠난다.

오전에 출발해 한 시간여를 달린 후 중간지점인 강 제1만(灣)을 보러 잠시 쉬었다. 여기에서 서쪽으로 약 40km 떨어진 석고진(石鼓鎭)에 위치한 장강 제1만은 티벳에서 발원한 금사강이 운남에 흘러 들어와 석고진에서 첫 번째로 꺾이는 곳이다. 하파설산과 옥룡설산 협곡 사이로 들어가 ‘호도협’이라는 절경으로 이루고 산천과 운남의 경계를 이루는 금사강의 아름다운 풍경은 안개로 보지 못했다. 차창 밖으로 금사강의 푸른 물과 옥룡설산 밑 고산준봉들이 자연의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차우토우에 도착했다. 난 28밴드 입구까지 2시간을 걷고 그 후부터 말을 타고 28밴드를 넘기로 했다. 곳곳에 복사꽃, 배꽃, 청커밭을 보며 산허리를 돌아 걸었다. 점심시간이 다 되어 멀리 나시객잔이 보인다. 힘을 내 객잔에 도착해 등산화와 양말을 벗고 객잔 돌바닥에 놓으니 시원한 감촉이 발바닥의 피로를 풀어준다.

 
객잔 한쪽 한 켠에 마른 옥수수를 잔뜩 매달아 놓았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말린 노란 옥수수더미와 객잔 마당에 피어있는 온갖 예쁜 꽃들의 어우러짐이 무척 평안하고 아름답다. 점심식사 후 다시 출발. 이제부터 나도 28밴드까지 말을 타고 간다. 이미 말을 타본 팀들의 염려와 격려를 받으며 잔뜩 긴장한 채 마방의 우두머리가 지정해 준 말을 타고 이동한다. 평지에서는 안장에 장착된 손잡이를 꽉 잡고 시야를 멀리 두며 편히 가다가 드디어 험한 언덕길인 28밴드에 들어서자 말들도 숨을 고르며 쉬려고 한다.

말 주인이 야단을 치면 알아들었는지 용을 쓰며 언덕을 오르기도 한다. 힘든지 꼼짝 않고 있으면 엉덩이를 회초리로 때리니 더욱 힘껏 움직이니, 언덕에 오를 때는 나도 덩달아 긴장하며 말과 한 마음이 된다.

말을 타고 가는 좁은 길 오른편은 천길 낭떠러지다. 마부는 내 오른쪽에서 말고삐를 잡고 간다. 예전 차마고도를 다니며 교역했던 마방들과 야크, 그리고 말들도 소금과 곡식을 등에 잔뜩 싣고 이 험난한 길을 평생 수백 년 간 다녔을 것이다. 높은 곳에 올라 호도협을 내려다보니 푸른 물이 빠른 물살로 흘러 큰 바위에 부딪히며 하얀 포말을 일으킨다. 멀리 호랑이가 딛고 계곡을 넘었다는 호도석(虎跳石)이 보인다.

다시 걸음을 재촉한다. 내리막길. 오후 7시경 오늘 묵을 차마객잔에 도착했다. 차마객잔 옥상에 올라가서 옥룡설산을 마주했다. 어스름 저녁시간 객잔옥상에서 보는 옥룡설산의 모습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종일 바람을 맞고 따가운 햇살을 이고 걷고 또 걸어 쌓인 피로는 온수 샤워시설과 따뜻한 전기장판이 마련된 잠자리가 말끔히 풀어준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 커튼을 여니 너무 멋지다. 산이 높아 해는 보이지 않지만 햇살이 부채살처럼 고산준봉을 중심으로 퍼져 있다. 이틀째 트래킹. 옥룡설산 봉우리에 해가 올라오는 것을 바라보며 걸었다. 따스하고 부드러운 햇살이 온 누리를 비춘다. 어느 산모퉁이를 돌아도 옥룡설산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다시금 모퉁이를 돌면서 서로 손을 흔들며 꼬리에 꼬리를 물고 우리는 산허리를 걸어간다. 옆은 천길 낭떨어지 이고 다른 한쪽은 하늘로 솟은 암벽이다. 멀리 티나스 객잔이 보인다.

이제부터는 내리막길이다. 스틱을 양손에 쥐고 열심히 걷다보니 하호도협에 거의 내려온 것 같다. 폭이 넓어지면서 가까이는 협곡이, 멀리는 산을 바라볼 수 있다. 우리는 하파촌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 전 다리 위해서 협곡을 내려다보며 탄성을 지른다. 이틀간 바람과 따가운 햇살을 동무삼아 원 없이 걸었던 차마고도 호도협 트레킹 코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며 몇 달, 혹은 몇 년의 목숨을 걸고 이 길을 다녔던 마방들의 삶의 애환이 녹아 있는 고난의 길이자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헤어지는 소통의 길이었다.

하파촌으로 이동했다. ‘합파(哈巴)’는 나시족의 언어로 ‘황금빛 꽃송이’라는 뜻이다. 평원지대에서 우뚝 서있는 하파설산에 석양이 비칠 때면 흰눈이 덮혀 있는 정상부가 황금빛 꽃송이로 물들여 보여 이름이 지어졌다고 한다. 하파촌에 도착해 객잔 식당에 모였다. 호도협 트레킹을 무사히 마쳤다는 안도감과 길벗들과의 여행도 막바지이기에 건배도 했다. 객잔 식당 한 가운데 장작 난로가 있고 난로 위 차 주전자에 차가 끓고 있다. 아침저녁은 쌀쌀하기에 난로가 주는 열기는 무척이나 따뜻했다.

리장으로 향했다. 리장 고성의 야경을 구경하러 갔다. 리장 고성의 낮과 밤은 사뭇 분위기가 달랐다. 상가마다 홍등을 밝히고 음주가무가 요란한 클럽은 젊은이들로 넘쳐나고 예쁜 색감의 진열된 상품들이 시선을 잡아끈다. 사방가 광장에서는 관광객, 주민 모두가 함께 손에 손을 잡고 돌며 춤을 추고 있다. 미로마다 사람들이 어찌 그리 많은지. 우리는 서로 모습을 놓치지 않도록 유의하며 야경을 즐겼다.

8박9일의 여정은 빨리도 지나갔다. 나평의 노란 유채꽃밭, 차마고도 호도협을 걸으며 마음에 담았던 협곡의 웅장함과 설산의 아름다움, 옛 모습을 간직한 리장 고성과 수허 고성의 아름다운 풍경들. 이렇듯 여행의 흔적들이 나를 즐겁게 하며 길벗들과의 시간들은 그리움을 남을 것이다.

김상년 독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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