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루스토리] 지난 22일 언론보도에 의하면, 전직 대학 교수 몇 명과 학부모들이 2012년 10월22일 한글전용을 규정한 국어기본법 등에 대하여 헌법소원을 청구했다고 한다.
 
이들은 청구서에서 “우리 헌법이 이미 한글과 한자를 혼용해 쓰고 있는데, 국어기본법에서 한자를 ‘다른 외국 글자’와 동일하게 규정한 것은 하위법이 상위법을 부정한 것”이라며 “이는 전통문화의 계승·발전과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해야 할 국가의 의무를 규정한 헌법 제9조를 위반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우리 헌법이 한국어가 아닌 외국어로 기록되어 있다고 하는 것과 같은 논리여서 서울이 관습헌법상 대한민국의 수도임에도 이를 부정하는 것과 같아 관습헌법을 위반한 것이기도 하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헌법소원 청구인들이 헌법과 법률에서 정한 권리를 행사하는 것은 그들의 자유이겠으나, 이들의 주장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지적하고자 한다.

1948년 7월17일 역사적인 ‘대한민국 헌법’이 제정·시행되었다. 제헌 헌법이 탄생한 것이다.

헌법에 따라 하위법인 법률이 제정되었는데 시급하고도 중요한 순서에 따라 법률이 제정·시행되었다. ①1948. 7. 17. 법률 제1호 정부조직법, ②1948. 8. 30. 법률 제2호 사면법, ③1948. 9. 22. 법률 제3호 반민족행위처벌법, ④1948. 9. 25. 법률 제4호 ‘연호에 관한 법률’, ⑤1948. 10. 2. 법률 제5호 국회법, ⑥1948. 10. 9. 법률 제6호 ‘한글 전용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다.
 
‘한글 전용에 관한 법률’은 법 조문이 매우 간단해 “대한민국의 공용 문서는 한글로 쓴다. 다만, 얼마동안 필요한 때에는 한자를 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후 ‘한글 전용에 관한 법률’의 대체입법으로 2005녀 1월27일 법률 제7368호로 ‘국어기본법’이 제정됐다. 이 국어기본법이 헌법소원청구의 대상이 된 것이다.
 
그동안 많은 공직자들이 ‘한글 전용에 관한 법률’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음은 모두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다만, 법원에서는 그 성과가 비록 미흡하지만 꾸준히 ‘한글 전용에 관한 법률’과 ‘국어기본법’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엄경천 변호사(법무법인 가족)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한글 전용에 관한 법률’이 얼마나 중요했는지는 법률이 제정된 순서만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다”면서 “한글 전용에 관한 법률보다 먼저 제정된 ‘정부조직법’과 ‘국회법’은 새로운 정부를 조직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법률이고, ‘사면법’과 ‘반민족행위자처벌법’은 일제 시대와 미군정 시대를 정리하기 위한 법률이고, ‘연호에 관한 법률’은 새로운 시대를 알리기 위한 법률인 점을 고려하면 법률 제6호로 제정된 ‘한글 전용에 관한 법률’이 얼마나 시급하고도 중요한 법률이었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관습헌법은 ‘신행정수도의 건설을 위한 특별 조치법’에 대한 헌법소원 사건에서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에 대한 위헌의 논거로 삼았다. 이번에 ‘국어기본법’에 대한 헌법소원에서도 관습헌법 주장이 등장했다.
 
대한민국 헌법이 제정되기 전에 이 땅의 형식적인 최고 규범은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일제의 ‘명치헌법(明治헌법, 메이지 헌법)’이었다. 그 전에는 대한제국 시대의 ‘대한국 국제’였고, 그 전에는 ‘경국대전’이었다고 할 수 있다.
 
‘관습헌법’에 ‘대한국 국제’와 ‘경국대전’을 들먹이는 것도 납득하기 쉽지 않은데, ‘명치헌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라고 믿는다.

일본은 ‘히라가나’와 ‘가타가나’라는 문자가 있지만, ‘한자’를 더 많이 사용한다. 배운 사람의 글이나 전문서적일수록 그런 경향이 강한 것 같다. 일본어로 외래어를 표기할 때에 ‘가타가나’를 사용하는데, 1980년대 우리 교과서에서도 이런 일본의 예를 따라 외래어를 ‘이탤릭체’로 표기했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대한민국 법률 제6호 ‘한글 전용에 관한 법률’과 그 대체입법인 ‘국어기본법’은 우리 겨레의 자존심이다. 강제집행을 할 때 판결문에 한자가 없어서 집행이 되지 않았다는 말을 아직까지 들어보지 못했다. ‘국어기본법’에는 위반에 대한 제재로서 형사처벌을 규정하고 있지 않음은 물론이고 과태료나 그 밖에 행정상 제재를 규정하고 있지도 않다. 한자 교육을 금지하고 있지도 않다.
 

 
대한민국 헌법에는 일본어 투의 표현(예컨대, ~에 있어서, ~において)도 많다. 일본어 투의 표현이 헌법에 기재되어 있다고 해서 일본어 투의 표현을 국가가 보호할 의무는 없다.
 
헌법에 한자를 혼용하고 있는 것은 ‘한글 전용에 관한 법률’이 제정된 이후 헌법개정에 관여한 자들이 ‘한글 전용에 관한 법률’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엄경천 변호사(법무법인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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