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루스토리] 문창극 전 국무총리 후보자 사퇴 파동이 남긴 교훈 가운데 가장 큰 것은 일제 식민지배를 아름답게 포장하는 ‘반역사적’ ‘반민족적’ 인물은 책임 있는 자리를 맡아서는 안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사실이다. 문씨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건강한 상식을 가진 사회 구성원은 그를 정부의 ‘수뇌부’로 인정하지 않았다.

박근혜 정권이 KBS를 역사왜곡의 전초기지로 만들겠다는 야욕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지난 1일 방송통신위원회는 뉴라이트 인사인 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를 KBS 이사장 후보로 추천할 것을 의결했다. 지난 주 26일 이길영 전 이사장이 갑작스럽게 사표를 제출한 지 일주일도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공영방송 KBS 경영에 대한 관리·감독의 책임이 있는 이사회의 장을 최소한의 검증 절차나 의견 수렴도 없이 전격적으로 밀어붙이겠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뉴라이트 인사로 정평이 나있을 만큼 극우적 색채가 짙어 공영방송 KBS의 공정성과 독립성을 담보하기에 부적격한 사람이다. 이 교수는 이명박 정권 초기 광복절을 건국일로 제정하기위해 만든 ‘건국60주년기념사업준비위원회’ 공동준비위원장을 맡은 바 있다. 당시 이 교수는 백범 김구를 “대한민국 체제에 반대한 사람”이라고 비난하며 백범의 초상을 화폐에 새기는 데 반대했다. 또한 이 교수는 올 3월 13일 국가 원로급 인사로 초대된 청와대 오찬 자리에서 다큐멘터리 <백년전쟁>에 대해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 때 일을 많이 왜곡해서 다루고 있다”면서 “이런 역사 왜곡도 국가 안보 차원에서 주의 깊게 봐야 할 것 같다”고 박 대통령에게 조언을 했다. 문창극 전 총리 후보자의 교회 발언이 지탄을 받자 종편채널인 TV조선에 출연해 “비기독교인이 보면 오해할 소지가 약간 있다. 하지만 강연 전체를 놓고 봤을 때 문 후보자를 반민족주의자라고 하는 사람들은 제정신이 아닌 사람들”이라고 강력히 비난했다.

이런 언행만으로도 이 교수가 KBS 이사장이 되는 것은 KBS 안에서 편향된 이념과 역사인식을 불러일으키고 밖으로 국민분열을 야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정관이나 KBS이사회의 역할 등 법·제도적으로는 KBS 이사장이 방송프로그램에 관여할 수 없다고 하지만 청와대-이사장-사장으로 이어지는 은밀하고도 조직적인 보도통제의 실상은 길환영 전 사장의 해임 과정에서 적나라하게 밝혀진 바 있다. KBS는 정권으로부터 독립성을 지키고 국민의 알권리를 보장하며 공정한 방송을 책임져야 할 공영방송이다. 그런데 이처럼 비뚤어진 역사인식을 가진 사람이 KBS 이사장으로 선임된다면 KBS가 제 역할을 하는데 걸림돌이 될 것이다. 더 나아가 친일과 독재를 비판하기는커녕 오히려 이를 미화함으로써 한국현대사를 심각하게 왜곡하고 오염시킬 가능성이 농후하다.

일각에서는 이 교수 인선을 두고 박 정권 비호에 미온적인 조대현 사장 체제를 견제하기 위한 시도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이건 더 큰 문제이다. 이 교수의 임명 강행은 길환영 전 사장이 쫓겨난 후 어렵사리 KBS의 신뢰 회복을 위해 애쓰는 구성원들의 노력을 저지하고 또 다시 KBS를 정권의 시녀로 전락시켜 안팎으로 혼란을 야기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또한 이로 인한 모든 피해는 결국 또 다시 국민, 시청자들에게 돌아올 것이다.

문씨가 그랬듯이 이씨는 당장 물러나야 마땅하다. 도대체 이런 인물을 끝까지 안고 가려는 박근혜 정부의 의도는 무엇인가? 그러면서 일본의 역사왜곡을 지적한다는 게 얼마나 창피한 일인지 모른단 얘기인가. 내가 하면 로멘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시대착오적’ 발상을 박근혜 정부는 알아차리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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